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양자역학 관련 물리학자들의 헛소리들

양자역학 관련 물리학자들의 헛소리들
사실은 내가 물리학자가 아니지만 물리학자들의 헛소리는 잘 판단한다. 일반적으로 양자역학에서 어떤 실험적 사실이 나왔을 때 그것을 해석하는 것과 구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해석에서는 고도의 우주론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적 영역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결국 해석과 사실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심해야 한다. 특히 현대물리학과 생물학이 그렇다. 도킨스처럼 엉터리 해설자를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사이비 통섭론자 윌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자들의 잘못된 해석들>

양자얽힘 : 시공간적 국지성, 즉 공간은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가? 빛 보다 빠른 정보전달이 가능한가?

물리학자들이 양자얽힘을 곡해하고 있군요.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으나 업/다운 얽힘이 있는 전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업/다운 상태라면 업을 관찰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다운인 것이니 이것은 정보의 주고 받음이 아니라 상태의 확인에 의해 그 댓구된 전자의 상태는 자동으로 그 반대인 것에 불과합니다. 상호 얽힘 상태란 쌍 전자의 업/다운 상보성을 확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번 실험의 결과는 상보성 자체가 아니라 빛보다 더 빠른 유령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뇨 빛보다 빠른 것이 아니라 상보적 상태의 쌍전자의 각기 행보가 어떻더라도 반드시 업/다운으로 존재할 뿐이고 양자얽힘은 업/다운 상보적 쌍전자 상태를 마치 서로 연결된 무엇인 것처럼 양자역학과학자들이 곡해를 하는 것이지요. 과학자들은 상보성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실험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인쉬타인도 상보성을 이해 못하고 "숨은 변수"론을 들고 나와 양자역학의.상보성 개념에 혼란을 가중시킨 것입니다. 코펜하겐해석처럼요.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이 엉터리인 것처럼 아인쉬타인의 숨은 변수론도 엉터리인 것이지요

"위에 달린 모든 기사와 동영상은 양자얽힘에 대한 기존의 문제가 많았던 벨 테스트를 입증한 것"이라고 하는데(https://en.m.wikipedia.org/wiki/Bel...)

그러니까 그 입증은 전자 쌍의 업/다운 상보성이 그 상보적 전자간의 거리에 상관 없이 그 한 전자의 상태를 알면 다른 전자의 상태도 안다는 것이지 "양자얽힘"이니 정보의 빛보다 빠른 상호전달이니 하는 것은 개념 혼란에서 온 헛소리라는 것이 재해석입니다.

아인쉬타인 보어 논쟁이래로 엘리펀트우주론이니 다차원 우주론이니 수퍼스트링 이론이니 하는 사이비 과학이 난무하게 된 것도 양자얽힘으로 곡해한 퀀텀의 입자-파동 상보성, 속도 위치 상보성, 쌍전자의 업/다운 상보성을 곡해해서 일어난 헛소리 사이비 과학이지요

과학자들의 주장 , 특히 양자역학의 실험적 결과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해석 중 수퍼스트링 이론에서 나온 다차원 우주론은 전형적인 사이비과학이고 믿어서도 입증되지도 않습니다.
개념적 혼란 상태에서 철학적 우주관을 수학만으로 풀려고 하다가 빠진 사이비의 길이지요.

수학작으로는 어거지로 맞춘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수학으로는 우주의 통일성과 하나됨을 파괴하고 차원이 다른 세계의 중첩을 인정해야 하지요

http://media.daum.net/digital/other... <영자역학자들의 잘못된 해석들> 2
"최근 양자얽힘 상태의 벨 실험에 대한 포스팅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질문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1. 대체 뭘 했다는 건가?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이용하여 EPR 상태라 불리는 이상한 상태를 만듭니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벨이 만든 부등식을 위배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죠? 간단히 말해서 이 부등식을 위배하면 양자 상태가 실재적(reality)이지 않거나 국소성이 깨집니다(빛보다 빠른 통신 가능). 그래서 아이슈타인은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고 주장했죠. 세상은 실재적이니까요. ^^ 하지만 막상 실험을 해보니 부등식이 깨졌죠. 이게 그런 실험입니다. 즉, 아인슈타인이 "우주가 실재적이지 않거나 빛보다 빠른 통신이 가능하다구? 거봐, 양자역학이 틀린 거야!"라고 했지만, 답은 "네. 우주는 실재적이 않거나 빛보다 빠른 통신이 가능해요. 양자역학이 맞다구요."라는 거죠.
2. 이게 처음으로 보인 것인가? 아닙니다. 첫번째 실험 결과는 1982년에 얻어졌습니다. 하지만, 실험이 완벽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 있어 왔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추가 실험이 있었지만, 논란이 전혀 없는 (loophole-free) 실험은 없었습니다. 이번 실험은 그동안 존재하던 가장 중요한 loophole 두 가지를 모두 막은 것이죠. 이제 더이상 시비 걸 사람은 없을 듯. 양자얽힘은 실재합니다."(김상욱 물리학과 교구)
선배 왈 "사실 2주 전 제가 네덜란드 델프트 대학을 방문했을 때, 바로 이 실험을 수행한 실험 그룹의 발표를 듣고 실험장비를 둘러봤죠. 제가 올린 사진 기억하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 지하에 있는 실험실였는데, 퀴퀴한 냄새에, 텅텅텅텅 기계소음, 햇빛도 없고... 화려한 결과 뒤에는 햇빛도 못보고 밤낮으로 실험한 연구자의 노력이 있습니다. 부산대 김상욱박사. 요즘 양자역학 대중강연 스타입니다"
참 원 개념혼란이라니깐요. 양자역학 과학자 자신들이 양자얽힘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사용해서 전자의 쌍이 업/다운 이중적 배치를 한 것이고 그 쌍이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업/다운 이중 상태인 것이지요.
제 이야기는 상식적이고 물리학적이고 김상욱 박사는 어거지를 쓰는 것이지요. 요사이양자역학자들 중에 거의 90%가 사기 학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진
선배 왈 "이강영,김상욱,이종필 요즘 양자역학 대중강연과 각종 대담에 나오는 서울대 물리학과 3인방 찾아가서 토론하세요"
물리학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소통이나 되겠어요?^^ 물리학과 그 실험 결과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지요. 특히 양자역학에서는 워낙에 사기 학문이 판을 치기때문에 더욱 그렇고요
선배 왈 "내가 배우는 경북대 이형철교수는 독일 하이젠베르크의 손자제자되는 양반인데 양자얽힘은 진리로 봄. 이게 정상과학이라네"
양자얽힘은 진리라고 해도 그 진리는 업/다운 쌍전자의 상태가 항상 하나가 업이면 다른 것은 다운이다. 그것은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쌍동이 전자면 그렇다는 언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양자얽힘이라는 잘못된 용어로 설명하고 있어서 소위 아인쉬타인-보어 불황정성 논쟁처럼 거짓 논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지요.

2015년 5월 22일 금요일

Virtual Knowledge Experimenting in the Humanities and the Social Sciences (2012) MIT Press

Table of Contents

Chapter 1
Introduction – Virtual Knowledge
– Sally Wyatt, Andrea Scharnhorst, Anne Beaulieu and Paul Wouters
Chapter 2 
Authority and Expertise in New Sites of Knowledge Production
– Anne Beaulieu, Sarah de Rijcke and Bas van Heur
Chapter 3
Working in Virtual Knowledge: Affective Labor in Scholarly Collaboration
– Smiljana Antonijevic, Stefan Dormans and Sally Wyatt
Chapter 4
Exploring Uncertainty in Knowledge Representations: Classifications, Simulations and Models of the World
– Matthijs Kouw, Charles van den Heuvel and Andrea Scharnhorst
Chapter 5 
Virtually Visual: The Visual Rhetoric of GIS in Policy Making

– Rebecca Moody, Matthijs Kouw and Victor Bekkers

Computerization Movements and Technology Diffusion: From Mainframes to Ubiquitous Computing.

Computerization Movements and Technology Diffusion

: From Mainframes to Ubiquitous Computing


By Margaret S. Elliott and Kenneth L. Kraemer, Information Today, 2008,


Table of Contents 
  1. Part I: Introduction
  2. Part II: Productivity
  3. Part III: Democratization
  4. Part IV: Death of Distance
  5. Part V: Freedom and Information Rights
  6. Part VI: Ubiquitous Computing
  7. Part VII Conclusion
  8. References
  9. Author Details


pt. I. Introduction --

1. Computerization movements and the diffusion of technological innovations / Margaret S. Elliott and Kenneth L. Kraemer --
2. Reprints of seminal research papers on computerization movements --
Paper 1. Computerization movements and the mobilization of support for computerization / Rob Kling and Suzanne Iacono --
Paper 2. Computerization movements : the rise of the Internet and distant forms of work / Suzanne Iacono and Rob Kling --

pt. II. Productivity --

3. The computerization movement in the U.S. home mortgage industry : automated underwriting from 1980 to 2004 / M. Lynne Markus ... [et al.] --
4. Visions of the next big thing : computerization movements and the mobilization of support for new technologies / Jonathan P. Allen --
5. Framing the photographs : understanding digital photography as a computerization movement / Eric T. Meyer --

pt. III. Democratization --

6. From the computerization movement to computerization : communication networks in a high-tech organization / Anabel Quan-Haase and Barry Wellman --
7. Internetworking in the small / John M. Carroll --
8. Online communities : infrastructure, relational cohesion, and sustainability / Mary J. Culnan --

pt. IV. Death of distance --

9. Virtual teams : high-tech rhetoric and low-tech experience / Sara Kiesler ... [et al.] --
10. Large-scale distributed collaboration : tension in a new interaction order / Gloria Mark --
11. Examining the proliferation of intranets / Roberta Lamb and Mark Poster --

pt. V. Freedom and information rights --

12. Information/communication rights as a new environmentalism? : core environmental concepts for linking rights-oriented computerization movements / Andrew Clement and Christie Hurrell --
13. Examining the success of computerization movements in the ubiquitous computing era : free and open source software movements / Margaret S. Elliott --
14. Emerging patterns of intersection and segmentation when computerization movements interact / Walt Scacchi --
15. Seeking reliability in freedom : the case of F/OSS / Hamid R. Ekbia and Les Gasser --
16. Movement ideology vs. user pragmatism in the organizational adoption of open source software / Jason Dedrick and Joel West --

pt. VI. Ubiquitous computing --

17. The professional's everyday struggle with ubiquitous computing / Carsten Sørensen and David Gibson --
18. Politics of design : next-generation computational environments / Mark S. Ackerman --
19. Social movements shaping the Internet : the outcome of an ecology of games / William Dutton --

pt. VII. Conclusion --

20. Comparative perspective on computerization movements : implications for ubiquitous computing / Margaret S. Elliott and Kenneth L. Kraemer.

Critical Environments Postmodern Theory and the Pragmatics of the “Outside”

Critical Environments

Postmodern Theory and the Pragmatics of the “Outside”

1998
 • 
Author: 
Cary Wolfe
 Content
Acknowledgments
Introduction. Nothing Fails like Success: The Postmodern Moment and the Problem of the “Outside”
1 Pragmatism: Rorty, Cavell, and Others
The Island of Belief: Walter Benn Michaels and the Uses of William James
Making Contingency Safe for Liberalism: Richard Rorty’s Evasion of Philosophy
Coming to Terms: Stanley Cavell and the Ethics of Skepticism
2 Systems Theory: Maturana and Varela with Luhmann
Feminist Philosophy of Science and the Detour of “Objectivity”
When Loops Turn Strange: From First- to Second-Order Cybernetics
Between the Scylla of Realism and the Charybdis of Idealism: Autopoiesis and Beyond
Necessary Blind Spots: Niklas Luhmann and the Observation of Observation
Politics, Ethics, and Systems Theory
3 Poststructuralism: Foucault with Deleuze
Rorty and Foucault
A Pragmatics of the Multiple: Foucault with Deleuze
Folded but Not Twisted: Deleuze and Systems Theory
Conclusion: Post-Marxism, Critical Politics, and the Environment of Theory
Notes
Index 

The Nonhuman Turn 2015 • Richard Grusin, Editor

The Nonhuman Turn

2015
 • 
Richard Grusin, Editor

Contents
Introduction
Richard Grusin
1. The Supernormal Animal
Brian Massumi
2. Consequences of Panpsychism
Steven Shaviro
3. Artfulness
Erin Manning
4.The Aesthetics of Philosophical Carpentry
Ian Bogost
5. Our Predictive Condition; or, Prediction in the Wild
Mark B. N. Hansen
6. Crisis, Crisis, Crisis; or, the Temporality of Networks
Wendy Hui Kyong Chun
7. They Are Here
Timothy Morton
8. Form / Matter / Chora: Object-Oriented Ontology and Feminist New Materialism
Rebekah Sheldon
9. Systems and Things: On Vital Materialism and Object-Oriented Philosophy
Jane Bennett
Acknowledgments
Contributors
Index 

Critical Digital Studies

CRITICAL DIGITAL STUDIES: A READER, SECOND EDITION

Edited by Arthur Kroker and Marilouise Kroker
Digital Futures
University of Toronto Press, Scholarly Publishing Division © 2013

Acknowledgments
Introduction
ARTHUR AND MARILOUISE KROKER
CODE BREAKERS
  1. Traumas of Code
    N. KATHERINE HAYLES
  2. A Game of Cat?s Cradle: Science Studies, Feminist Theory, Cultural Studies
    DONNA J. HARAWAY
  3. Reframing the Cathedral: Opening the Sources of Technologies and Cultural Assumptions
    SARA DIAMOND
  4. Romancing the Anti-body: Lust and Longing in (Cyber)space
    LYNN HERSHMAN LEESON
NEW DIGITAL MEDIA
  1. All Bugs Are Shallow: Digital Biopower, Hacker Resistance, and Technological Error in Open-Source Software
    MATTHEW KELLY
  2. Contagion Theory: Beyond the Microbe
    TONY D. SAMPSON
  3. A Conversation with Spirits inside the Simulation of a Coast Salish Longhouse
    JACKSON 2BEARS
  4. Empire@Play: Virtual Games and Global Capitalism
    NICK DYER-WITHEFORD AND GREIG DE PEUTER
  5. Archaeologies of Media Art
    JUSSI PARIKKA IN CONVERSATION WITH GARNET HERTZ
TECHNOLOGY, IDENTITY, AND SURVEILLANCE
  1. Precision + Guided + Seeing
    JORDAN CRANDALL
  2. Understanding Meta-media
    LEV MANOVICH
  3. Black Box, Black Bloc
    ALEXANDER R. GALLOWAY
  4. Biophilosophy for the 21st Century
    EUGENE THACKER
  5. Algebra of Identity: Skin of Wind, Skin of Streams, Skin of Shadows, Skin of Vapour
    D. FOX HARRELL
POLITICS, GENDER, AND RELIGION
INFORMATION AND POWER
  1. Communication and Imperialism
    JAMES TULLY
  2. Occupology, Swarmology, Whateverology: The City of (Dis)order versus the People?s Archive
    GREGORY SHOLETTE
  3. Tell Us What?s Going to Happen: Information Feeds to the War on Terror
    SAMUEL NUNN
  4. Grammar of Terrorism: Captivity, Media, and a Critique of Biopolitics
    MICHAEL DARTNELL
  5. Virilio?s Apocalypticism
    MARK FEATHERSTONE
GENDER AND SEXUALITY
  1. The Cyborg Mother: A Breached Boundary
    JAIMIE SMITH-WINDSOR
  2. Haptics, Mobile Handhelds, and Other ?Novel? Devices: The Tactile Unconscious of Reading across Old and New Media
    RACHEL C. LEE
  3. Becoming Dragon: A Transversal Technology Study
    MICHA CÁRDENAS
RELIGION AND SOCIETY
  1. Circuits, Death, and Sacred fiction: The City of Banaras
    MAHESH DAAS
  2. Digital Cosmologies: Religion, Technology, and Ideology
    ARTHUR KROKER
  3. Technologies of the Apocalypse: The Left Behind Novels and Flight from the Flesh
    STEPHEN PFOHL
CULTURE, ART, AND COMMUNICATION
PERCEPTION
  1. The Aura of the Digital
    MICHAEL BETANCOURT
  2. When Taste Politics Meets Terror: The Critical Art Ensemble on Trial
    JOAN HAWKINS
  3. Distraction and Digital Culture
    WILLIAM BOGARD
PERFORMANCE
  1. Metal Performance: humanizing Robots, Returning to Nature, and Camping About
    STEVE DIXON
  2. Prosthetic Head: Intelligence, Awareness, and Agency
    STELARC
  3. Simulated Talking Machines: Stelarc?s Prosthetic Head
    JULIE CLARKE
  4. Slipstreaming the Cyborg
    FRANCESCA DE NICOLÒ IN CONVERSATION WITH CHRISTINA MCPHEE
SOUND
  1. Black Secret Technology (The Whitey on the Moon Dub)
    JULIAN JONKER
  2. Material Memories: Time and the Cinematic Image
    PAUL D. MILLER (DJ SPOOKY)
  3. The Turntable
    CHARLES MUDEDE
Bibliography
Contributors

2015년 3월 25일 수요일

베르나르 스티글러 인터뷰, '상징적 빈곤'이라는 포퓰리즘의 토양


‘상징적 빈곤’이라는 포퓰리즘의 토양
― ‘의식의 시장화’로부터 벗어나기
베르나르 스티글러(Bemard Stiegler)
1952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 연구개발 디렉터. 콩피엔느 대학의 지식․조직․기술시스템 연구부 부장 및 교수, 국립 시청각 연구소 부소장, 음향/음악 연구 소장을 역임하고 있음. ‘자본주의의 변혁’을 목표로 한 운동단체인 Ars Industrialis를 주관하고 있다.
― ‘상징적 빈곤’ 개념을 설명해 주십시오.  
‘상징적 빈곤’을 저는 기술철학의 관점에서, ‘생산에서의 빈곤’과의 대비에서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9세기의 산업혁명을 겪은 자본주의에는 두 가지 큰 결과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이른바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했습니다. 기술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미 자신의 ‘제작 지식’에 의해 생산을 하지 않고 기계의 부속품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산과 관련된 지식이 기계로 옮겨가 버렸습니다. 생산자의 신체적 행동은 기계의 자동운동으로 변형되었고 그리하여 개별 생산자의 ‘제작 지식’은 빼앗기게 됩니다.
맑스가 프롤레타리아화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것으로, 내가 자주 참조하는 기술철학자인 시몽동이 ‘비개체화 과정’이라고 불렀던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생산에 있어서의 빈곤’입니다. 두 번째 귀결로서, 19세기의 말이 되자 자본주의는 기계화 때문에 생산성이 확대되었고, 맑스가 ‘이윤율 저하’라는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사회가 생산물을 모두 다 소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맑스가 이미 1865년부터 1870년 무렵에 예고했듯이,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졌고, 그것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는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전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자본주의의 제1기의 특징입니다만,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미국형 자본주의, 문화산업, 마케팅
그런데 20세기에는 자본주의의 중심이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로 이동합니다. 20세기 초반, 미국형 자본주의는 이윤율 저하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차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포드주의의 등장입니다. 생산자란 동시에 소비자이며,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이 소비자로서의 생산자의 수입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모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소비자가 됩니다. 유명한 포드의 T형 자동차는, 바로 이것을 생산한 노동자를 겨냥한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으로, 유럽형 자본주의에 대한 미국형 자본주의의 혁명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20세기의 미국형 자본주의는 목표로 했던 생산성의 향상과는 다른 과제에 임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보증하는 것은 시장의 확대이기에 미국형 자본주의는 광대한 시장의 획득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국내 시장을, 이어서 세계시장을, 20세기 초반 이래 미국형 자본주의는 세계 규모의 시장 확대의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제국주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과 연동된, 두 번째의 아주 중요한 차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영화의 등장이자, 미국형 ‘문화산업’의 탄생입니다. 1905년부터 1907년에, 미국 영화는 산업 모델에 근거하여 발달을 시작하게 되었고 1912년에는 영화의 전략적 중요성이 정치에서 이미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영화로 이익을 올리는 것과도 관련됩니다만, 특히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마음이 대중 소비에 의해 조건지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영화산업의 발달을 통해 1930년대에는 ‘미국적 생활방식’이라 불리게 된 행동양식이 미국 내부와 세계적 규모로 촉진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이 점이 극히 중요한 것은, 이것이 포드주의를 보완했기 때문입니다. 포드가 T형을 생산함으로써 목표로 했던 광대한 시장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산업 제품을 사람들이 차지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양식을 동시에 발달시켜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산업 제품을 스스로 발전시켜 채택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조건을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조건 부여의 주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영화의 영상입니다.
영화는 문학, 음악 등의 전통적인 상징표현보다 훨씬 큰 모방 환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코드라는 음악적 산업제품과 더불어 더욱 발전하였고, 이어서 라디오가,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전후에는 드디어 텔레비전이 등장함으로써 구현되기에 이릅니다. 이것은 내가 ‘산업적 시간 대상’[그 자체 속에 시간성을 구비한 산업 제품, ‘시간의 패키지 제품’]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한 사회의 통제입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휴대 전화 등에 의해 사람들의 생활의 틈새 시간까지도 이러한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차원은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Bernays)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마케팅의 등장이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의 조카인 이 사람은 당시에는 ‘PR(Public Relation)’이라고 불렸고 나중에는 ‘마케팅’으로 불리게 된 것을 발명한 사람입니다만, 그는 1917년 이후 자본주의의 문제란 여론(opinion)을 조작하는 것에 있다고, 미국의 또는 세계의 소비자 개인 및 집단 수준에서의 리비도(무의식의 욕망)를 제어하여 방향을 부여하여 포착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진정한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팜애에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판매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욕망, 즉 리비도 에너지를 부모나 연인, 종교나 정치라는 이상적인 ‘승화’의 대상으로부터 소비의 대상으로 되돌려 고정시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욕망은, 맑스의 말을 빌리자면(원래 맑스와는 다른 의미입니다만), 상품의 물신주의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 프로이트는 주식시장에서 배운 원리를 “무의식의 욕망 에너지(리비도 에너지)”의 작동으로 진단하고 ‘리비도 경제’라는 획기적인 이론을 수립했다.]
‘상징적 빈곤’ ―‘삶의 지혜’의 상실
이러한 과정은 미국에서는 이미 192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만,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텔레비전의 보급에 의해 급속히 발전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의 텔레비전 보급률은 1950년에는 0.1%였으나 1960년에는 13%, 1970년에는 70%, 그리고 현재에는 98%에 이르렀습니다. 즉 50년 사이에 모든 개인이 텔레비전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또 평균 시청 시간도 3시간 반에 이르러, 일하고 출퇴근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적 빈곤’이라고 제가 부른 사태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시간’을 텔레비전과 같은 문화 산업이 유통시킨 ‘산업적 시간 대상’을 통해 구성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레코드 음악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상상하거나 추억을 마음 속에서 떠올리거나 자기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낳기도 하는 ‘삶의 에너지’, 즉 프로이트의 용어로 하면 ‘리비도’가 문화산업에 빨려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리비도를 고유한 ‘욕망’으로서 표현하고 구성해 나가기 위한 상징적 자원을 사람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상징적 빈곤’의 진행입니다.
19세기의 산업자본주의에 의한 프롤레타리아화가 생산수단의 기계화에 의해 ‘생산자’에게서 ‘제작 지식’을 상실하게 만들었던 것에 비해, 20세기의 소비자본주의에서의 전반적인 프롤레타리아화는 소비자에게서 ‘삶의 지혜’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식을 파악하고 행동을 표준화함으로써 20세기의 소비자는 ‘삶의 지혜’를 잃는 것입니다. 소비자에게 있어서의 ‘삶의 지혜’는 이제 자신의 삶의 현장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리 결정된 매뉴얼이나 취해야 할 행동을 미리 정한 마케팅에 의해 결정되어 버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하며,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개인 및 집단 차원에서의 상징적 괴로움, ‘살기 힘들다’는 것을 산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괴로움이야말로 여러 가지 사건이나 흉측한 사건으로 나타나는 ‘결행(acting out)’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동에는 ‘살아 있다’는 존재 감각의 상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나 네트워크도 덧붙여야 합니다만) 텔레비전을 필두로 한 문화산업이 보급한 문화 콘텐츠에 의한 대중의 리비도 포착은 궁극적으로 리비도 자체의 파괴로까지 나아갑니다. 리비도를 포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그것을 위해서 기능해야만 하는 것이 오히려 리비도를 파괴해 버립니다. 이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리비도의 담지자가 개체로서의 단독성을 가진 개인이며, 자신의 유일한 존재로서의 단독성을 투영할 수 있는 대상만을 ‘욕망의 대상’으로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개체의 단독성에 의거한 욕망의 투영 구조는 프로이트가 ‘원-나르시시즘’(원-자기애)라고 부르고, 또 라캉이 ‘거울상 단계’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이퍼 산업사회에서 개체는 문화산업이 유통시키는 이미지를 손에 넣어 내면화합니다만, 내면화된 이미지는 더욱 더 표준화되며, 개인의 과거는 모든 사람에게서 같은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한 사람의 개인에게는 고유의 ‘과거’ 따위란 이미 없으며, 산업적인 ‘한철’(즉 유행)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개인의 단독성의 의지처는 그의 개인으로서의 경험에 있습니다만, ‘개인이다’는 것은 근처에 있는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포드주의에서 보여졌듯이, 생산의 경우 개인은 노동에서는 완전히 과학적인 조직화와 관리를 받아들이고 완전히 표준화된 작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소비에 있어서도 문화산업이 유통시킨 ‘산업적 시간 대상’을 통해 통제를 받고 표준화된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개인적 경험을 갖는다고 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조르조 아감벤이 ‘경험의 상실’이라고 부른 사태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문화산업에 의한 ‘과거 파악’[‘산업적 시간 대상’에 의해서 ‘시간’을 산출하여, 공통의 ‘과거’를 사람들의 의식에 의해서 구성하는 것], 즉 ‘기억의 통제’입니다. 오늘날에는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휴대 전화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장치의 보급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상시적으로 통제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질 들뢰즈가 ‘통제 사회’라고 부른 사태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화산업에 의해서 리비도가 포착되고, 상징적 빈곤이 진행됨에 따라서 리비도 자체가 붕괴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리비도는 단 하나 밖에 없는 단독적인 욕망의 대상이 주어질 때에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비도가 요구하는 대상의 단독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리비도 자체가 단 하나 밖에 없는 개인의 단독성에 근거해야만 합니다. 또한 타자를 욕망할 수 있는 것도 이 개인의 과거의 단독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이 표준화된 것을 소비하기 시작하고 표준화된 과거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단독성을 잃게 되면 이것과 동시에 대상의 단독성에 대한 감성도 잃어버립니다. 리비도가 리비도인 것은 둘 도 없는 단독성을 요구하는 한에서이기 때문에, 이리하여 리비도 자체가 파괴됩니다. 그리하여 제가 ‘리비도 에너지의 체감[감소]’이라고 부른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만, 이것은 자본주의의 두 번째 위기에 다름 아닙니다.

산업 포퓰리즘이 산출한 정치 포퓰리즘
저는 근래 프랑스에서 특이한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의 행동에 관심을 쏟아 왔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극단적이거나 원리주의적이거나 일본의 옴 진리교에서 보았듯이 종교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폭력적이고 범죄적인 행위나 흉측한 행동 하에는 자신이 살아 있다고 하는, 존재 감각의 상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마케팅의 표적이 되면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게 됩니다. 이러한 실감의 상실 때문에 자신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존재의 증명을 위해서 흉측한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이번에는 여론이 패닉상태에 빠지며, 이것이 사회의 퇴행적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정치의 수준에서는 ‘질서’나 ‘권위’ 등이 소리 높이 요구되며, 결국 ‘정치 포퓰리즘’의 기초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치 포퓰리즘’ 자체가 ‘산업 포퓰리즘’에 의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현상을 낳는 것은 ‘산업 포퓰리즘’으로서의 마케팅입니다.
소비자로서의 삶의 단독성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의 의식의 시간은 산업 포퓰리즘에 의해 장악되게 됩니다. 리비도가 자꾸 파괴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이제 ‘욕망’이 아니라 ‘충동’에 호소하게 됩니다.
실제로 15년 정도 전부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헐리우드 영화는 정의, 이상, 영웅 같은 ‘욕망’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표현이나 폭력, 게다가 리얼리티 쇼와 같은 모방 행동을 야기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직접적인 ‘충동’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정치에서는 죽음의 충동이든 파괴 충동이든, 어쨌든 충동에 호소하는 극우세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산업 포퓰리즘과 정치 포퓰리즘은 똑같은 마케팅 논리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가들의 행동은 점점 더 문화산업의 마케팅과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미디어 정치가들이 태어나는 메커니즘

― 사르코지, 베를루스코니, 고이즈미 같은 정치적 인물이 미디어화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합니까?사르코지는 기묘할 정도로 고이즈미와 닮아 있으며, 이것은 부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르코지는 부시처럼 연설이나 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과정이 일반화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심리적 구조가 어디서든 같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금 전에 말한, 산업 포퓰리즘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죠. 또 테크놀로지 환경도 같습니다. 텔레비전, 휴대전화, 컴퓨터를 통해 미디어가 리비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정신의 산업 에콜로지’라고 제가 부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디에서든 동일한 정치적 오작동(malfunction), 정치 포퓰리즘이 산출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리비도의 문제가 지구화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유럽이든 미국, 아시아든 선진 산업 국가들의 공통의 문제이며, 똑같은 메커니즘이 똑같은 결과를 무서운 형태로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오모테산도의 거리를 걸으면 막스 마라의 부띠끄를 볼 수 있습니다. 막스 마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브랜드를 개입시켜서 리비도의 집단적 개별화를 행합니다. 리비도의 개별화는 이미 국가, 문명, 종교라는 수준이 아니라 산업적 논리를 개입시켜 행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각 지역에 특유한 언어, 이념이라는 승화의 대상을 통해서 개별화를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와 더불어 지구화된 브랜드, 제품의 논리에 의한 사람들의 동일화, 개체화입니다. 작금의 자본주의는 영토화된 자본주의가 아니라 완전히 탈영토화된 자본주의입니다. 이 자본의 탈영토화가 지역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정치가는 자본주의의 탈영토화 논리와 영토적인 지역적 현실 사이의 조정 역할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라는 정치 포퓰리즘의 의미입니다.

― 지난해 프랑스에서 일어난 폭동을 어떻게 봅니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겠죠. 말하자면 프랑스에서 ‘바보 바보’라는 것이 소리 높여 외쳐졌기 때문입니다. 이 폭발은 미디어가 전하는 영상에 의해서, 마치 프랑스가 완전한 혁명상태에 들어갔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파리에 살고 있습니다만, 불에 탄 자동차는 1대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지극히 중대한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확실히 상징적 빈곤, 정신적 빈곤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단순히 이슬람계 이민자뿐만 아니라 특정 계층의 프랑스인도 살고 있는 지극히 빈곤한 외곽에서 일어났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그저 텔레비전뿐입니다. 즉 텔레비전이 사회와 맺는 유일한 관계입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은 사회관계를 파괴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거주하는 단지의 구조는 너무도 심각해서 사람이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아무 것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로, 소비하는 것 외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소비자가 되는 것뿐인데, 소비하기 위한 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역설적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의 모순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소비하는 것 외에는 살아 있다는 존재를 실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도둑질을 함으로써만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처지에 빠져듭니다. 존재상실을 모순 속에서 강렬하게 체험하고, 그들 자신의 분명히 말하듯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도둑질을 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지난 해 말 라디오에서는 파리의 감옥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가 나와서 말했습니다만, 이번 폭동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소년들에게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다루어지고 사회에서 일정하게 대접을 받기 위해서라고, 정치체제를 전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불을 붙이는 자신들의 모습을 휴대 전화로 촬영해서 영상을 방송국에 팔았습니다.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행동입니다만, 정치적인 수준에서 리얼리티 쇼를 재현해 보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상징적 빈곤’으로부터의 탈출
― 소비사회에 편입되어 단독성을 잃게 되는 상황에 우리들은 어떻게 대결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어떻게 하면 ‘상징적 빈곤’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습니까?우리 사회가 ‘상징적 빈곤’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죠. 말하자면 이대로는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저는 몇 명의 철학자, 지식인, 그리고 산업가들과 함께 ≪Ars Industrialis≫(산업의 방법)이라는 국제적인 운동 조직을 세웠습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해결이 될 새로운 산업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포드가 이윤율의 체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던 것처럼,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리비도의 체감’에 대해 새로운 산업모델을 발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식인, 예술가의 역할이란 오늘날에서는 ‘정신의 테크놀로지’로 된 테크놀로지의 문제에 골몰함으로서, 테크놀로지가 새로운 사회화 모델을 자본주의에 대해 제안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새로운 산업모델은 ‘소비’와 ‘생산’의 대립이 아니라 지식 테크놀로지, 정신의 테크놀로지에 의한 새로운 개체화 과정에 의거한 것이 될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휴대 전화 등의 기술은 현재 상태로서는 개인의 개성을 잃게 하는 과정을 낳고 있습니다만, 완전히 새로운 개인의 개별화를 산출할 수도 있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마케팅에 의한 사회적 조직화를 의문에 부치고, 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입니다. 원래 마케팅 자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이대로는 소비자는 막스 마라에 코트를 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러 가게 되겠지요. 자본주의는 소비자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프랑스에서는 반소비 운동이 있습니다만, 반소비 운동이 공격하는 것은 부띠끄가 아니라 광고입니다. 그것은 자발적인 대중운동으로, 지하철에 있는 광고를 폐기하자는 인터넷에서의 요청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광고 공간을 판매함으로써 수입을 얻고 있는 파리지하철공사에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또 SUV 자동차에 대한 습격이라는 현상도 있습니다. SUV의 타이어를 펑크내는 것입니다만, 이것도 결국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차의 소유자가 엽총을 꺼내게 되는 폭력이 일어나겠지요. 또는 ‘반소비 운동’이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소비를 바라지 않는 소비자들의 운동인 것이죠.
물론 소비를 안할 수는 없습니다만, 소비가 마음을 괴롭게 하고 중독을 일으키기 때문에 소비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들에 의한 운동입니다. 소비는 헤로인 중독과 같아서 괴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소비하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소비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마케팅 회사는 재작년에, 이대로라면 프랑스가 소비의 붕괴에 휩쓸려 버릴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소비의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소비와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