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1일 일요일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현대영어영문학󰡕 제54권 4호(2010. 11)
한국현대영어영문학회 109-132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신 두 호
(강원대학교)
Shin, Doo-ho. “The Politics of Nature: John Muir’s Literary Environmentalism.”
Modern Studies in English Language & Literature 54.4 (2010): 109-132.
With the evolutionary shift of ecocritical perspective from deep ecological one to
social constructionist one in the recent years, ecocriticism’s treatment of
traditional nature writing has also changed from preoccupation to negligence. The
position of the social constructionists tends to reject mainstream ecocriticism’s
focus on the genres of nature writing, because they doubt that these genres are
capable of representing the complex interactions between environmentalism and
political choices, socioeconomic structures. Literary environmentalism that is the
textual manifestation of a larger cultural practice and of an ensemble of such
interactions exposes such complex socio-political elements in the 19th century
nature writings, landscape paintings, and landscape photographs. Literary
environmentalism reveals not only ‘Nature’s Nation’ ideology but also intentional
exclusion of Native Americans in the works of John Muir, one of the iconic 19th
century nature writers. (Kangwon National University)
Key words: ecocriticism, social constructionist, literary environmentalism, nature
writing, ‘Nature’s Nation,’ John Muir, My First Summer in the
Sierra
1. 생태비평의 진화와 자연문학의 위상
자연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고 어떻게 기술할지의 문제는 인문학, 특히
예술, 철학, 문학의 오랜 관심 주제가 되어 왔으며, 이 주제는 20세기 후반
환경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인문학의 관심이 자연과 환경문제로 이동
함에 따라 더욱 관심과 논쟁의 중심이 되어 왔다. 논쟁의 핵심은 자연을
110 신 두 호
보는 두 관점, 즉, 자연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본질주의적 관점과
자연이라는 개념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문화와 시대,
사회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는 사회구성주의 관점으로 모아진다. 특히, 이
두 입장은 환경문제 접근에 대한 방식을 두고 대립관계를 유지하며 상호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본질주의 입장에서 사회구성주의 관점은 실질
적인 환경파괴와 사회 불평등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실체로서의
자연이란 존재에 대해서는 정작 무관심하다는 지적이고, 반면 사회구성주
의 입장에서 본질주의 관점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자연 개
념에 담겨있는 사회불평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
적이다.
문학연구의 한 방법으로 현재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비평의 하나인 생태
비평의 본격적인 등장이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는 점은 자연과 환경문
제를 보는 생태비평의 관점이 당시의 이러한 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점
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인문학 중에서 문학이 환경문제에 대해
가장 늦은 관심을 가지게 된 원인이 문학은 자연 자체 보다는 인간의 문제
를 주된 주제로 다뤄온 전통에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문학연구의 자
연에 대한 관심은 사회문제의 관점에서 보다는 인간과 자연의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생태비평은 1990년대 중반 문학 연구의 한 방법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초기부터 생태중심적 관점에서 자연의 실체를 주된 연구와 분석 대
상으로 삼고 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개인적이고 철학적인 관계에 대해 관심
을 집중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생태비평은 기존의 생태중심적 자
연관의 집착에서 벗어나 우리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인간사회의 제반 환
경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생태비평의 현실사회에 대한 관
심은 현실적으로 70% 이상의 사람들이 도회지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들
이 매일 같이 현실적인 환경문제와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자
연에 대한 이해 및 인간-자연관계에 대한 이해 와 환경문제에 대한 현실적
인 인식을 위해서는 사회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에 근거한
다. 마이클 베네트(Michael Bennett)와 같은 생태비평가들은 심층생태주의
자연관에 기대어 야생자연을 선호해온 기존의 생태비평 태도를 비판하고,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11
생태비평이 ‘상아탑의 골방’으로부터 주류 문화비평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사회의 제반 문제를 환경문제와 연계하여 다루는 ‘사회 생태비평’
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후기구조주의 통찰에 근거한 이들의 주장
에는 야생자연 역시 도시환경만큼이나 복잡한 사회정치적 및 경제적, 철학
적 담론에 의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생태비평가들이 기
대는 심층생태주의 관점은 사회생태론적 통찰을 배제할 경우 그 자체만으
로는 항상 “불완전”하여 대부분 도회지에 거주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설득
력이 부족하고” “쓸모없으며” 비도시거주민에게도 역시 적합하지 않다
(Bennett 301)고 판단한다.
로렌스 뷰얼(Lawrence Buell)은 󰡔환경비평의 미래󰡕(The Future of
Environmental Criticism, 2005)에서 실질적인 환경문제는 인간사회의 불
평등 문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환경정의 운동
(environmental justice movements)이 생태비평으로 대표되는 문학 환경론
에 끼친 영향에 주목하면서 자연환경 및 인공환경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생태비평은 자연의 영역에 인공자연
까지도 포함시킬 것을 강조하고, 사회생태론적 관점은 생태비평이라는 용
어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비평”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태비평이 에머슨, 소로우, 뮤어로 이어지는 전
통자연문학과 자연보호보전 사상 중심의 환경론에 관심을 가진 시기를 생
태비평 “제1 물결,” 전통적인 환경운동 및 자연연구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환경문제 및 환경과 제반 사회문제의 연관에 관심을 가진 시기를 “제2 물
결”로 구분한다(112). 아담슨(Joni Adamson)과 슬로빅(Scott Slovic)은 「우
리가 딛고 서는 어깨--민족성과 생태비평에 대한 입문」(“The Shoulders
We Stand On: An Introduction to Ethnicity and Ecocriticism," 2009)에서
2005년 이후에 생태비평에서 전개된 가장 최근의 경향에 주목한다. 즉, “최
근까지 생태비평계는 상대적으로 다양하지 못했고 민족주체를 주로 “백인”
과 “유색인”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분류함으로써 편협성을 드러냈
다.”(6)면서, 이제는 새로운 생태비평적 경향, 즉,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특
수성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6) 경향이 진
행되고 있으며 이 새로운 경향은 “제3 물결”로 인식할 것을 주문한다.1) 뷰
112 신 두 호
얼은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에코글로벌”(ecoglobal)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다. 「에코글로벌리스트 애착」(“Ecoglobalist Affect,” 2007)에서 그는 상품의
제조와 유통, 소비, 부의 창출과 분배, 환경파괴 문제 등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지구적 단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론적’으로
혹은 ‘생태론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으며,” “단지 ‘문화에 기대서 막연히
사고하기 보다는 보다 자명하게 국가에 ‘대항해서’ 그리고 ‘초월해서’ 사고
할 필요가 있다”(227)고 지적한다.
생태비평이 야생자연으로부터 생활터전에서의 인간-자연 관계 및 도시
환경의 현실적인 환경문제로 관심을 이동시킴에 따라, 생태비평의 선호 장
르의 위치를 누려왔던 자연문학 및 자연문학의 대표적 작가들에 대한 관심
은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왜냐하면, “정치적 선택과 사회경제적 구조, 도
시환경을 결정하는 과밀 생태계 사이의 복잡한 상호 연관성을 자연문학 장
르로서는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Bennett 296). 특히 생태비평이 다문화
적이고 타민족적 관점을 수용함으로써 환경정의가 생태비평의 주된 주제가
되었고 이에 따라 백인남성의 관점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기존의 자
연문학은 배제된다. 생태비평이 환경정의 주제를 다루면서 기존의 자연문
학에서 환경정의 관점을 찾기보다는 주로 소설장르에서 찾고 있다. 즉, 환
경정의를 중심주제로 다루는 생태비평의 관심이 장르 속성상 인간사회를
다루는 소설로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예를 들어, 생태비평에 환경정의 문
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저서인 󰡔미국 인디언 문학, 환경정의, 생
태비평󰡕(American Indian Literature, Environmental Justice, and
Ecocriticism, 2001)에서 아담슨(Joni Adamson)은 기존의 생태비평에서 주
로 사용해온 생태문학, 환경문학, 생태시학 등의 용어 대신 “환경정의 문
학”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환경정의 문제를 주된 주제로
삼고 있는 문학작품 중 주로 소설을 예로 들고 있으며 기존의 자연문학 장
1) 슬로빅은 2010년 3월 26일 University of Nevada at Reno의 ‘문학과 환경’프로그
램 콜로퀴엄 발표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제3물결”의 경향을 소개한다. “제3물결”
은 ‘신-생물지역주의와 접목된 장소에 대한 글로벌 개념,’ ‘탈국가주의 정신에서
비교문학,’ ‘유물론적 생태여성주의와 다양한 성적 접근,’ ‘동물성,’ ‘내부 자성과
비판,’ ‘다양한 형태의 운동가’ 등을 포함한다.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13
르는 논의에서 전적으로 제외시키고 있다.
생태비평은 자연작가들의 작품에 기술된 내용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존의 텍스트 내용중심 의존에서 벗어나, 이들의 전기적 사실과 역할 및
인간-자연관계에 대한 통찰을 통해 현대 환경문제를 조명해 볼 수 있을 것
이다. 2000년대에 환경운동에서는 실질적인 환경문제를 단편적이고 개별적
인 사안으로 다루는 경향에 대한 반발로 뮤어와 애비(Edward Abbey)와
같은 전통자연작가들의 생태중심적 자연관 및 이들의 환경실천운동에서 작
금의 환경운동의 환경론의 단점을 보완하고 동시에 이들에게서 현대 환경
운동의 뿌리를 찾음으로써 현대 환경론의 입장에서 이들의 자연관 및 활동
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쉘렌버거(Michael
Shellenberg)와 노드하우스(Ted Nordhaus)가 「환경주의의 사망」(“The
Death of Environmentalism,” 2004)이라는 글에서 현대 환경운동은 지구온
난화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환경운동 후대들은
우리 보다 앞서 했던 선배 환경운동가들의 어깨 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을 잊어서는 안된다”(6)고 강조한다. 이들은 대표적인 선배환경운동가로 뮤
어를 들면서, “환경”이라는 대상의 보호에만 관심을 갖는 실패한 현대 환
경론은 “어떤 자연물이건 우리가 개별적인 것으로 골라내지만, 그것은 우
주의 모든 것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서 벌써 100여년
전에 통찰했던 시에라 클럽의 창시자인 존 뮤어의 세계관을 배워야 한다
(8)고 지적한다.
하지만 환경정의 문제를 중심주제로 다루는 현재의 환경담론에서는 뮤
어와 같은 자연문학작가들이 오직 자연에만 경도되어 자연속에서 개인적인
이상만을 추구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적인 사회문제에 전혀 무관심했다는 점
에서 환경정의 담론에서 배제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쉘렌버거와 노드하우
스가 현대 환경운동은 뮤어에게 큰 빚을 지고 있고 작금의 환경문제를 다
루는데 뮤어의 전기적 사실과 통찰에 근거하여 그를 모델로 삼을 것을 주
장하자, 게롭터(Michael Gelobter)와 같은 환경정의운동의 실천가들은 「환
경주의의 혼」(“The Soul of Environmentalism,” 2005)이라는 대응 글을 통
해 환경운동이 지구온난화의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점에는 동
의하지만, 대부분의 유색인종 환경운동가들은 뮤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114 신 두 호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뮤어가 환경보호윤리를 만들 당시 남부에서는 노
예폐지운동이 진행되고 있었고 서부에서는 인디언의 거주지역을 강제로 국
립공원으로 편입하는 과정에 있었지만,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그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19).
게롭터와 같은 환경정의 생태담론의 이와 같은 인식은 진화된 생태비평
이 기존 전통자연작가 및 작품을 논의에서 배제시키지 않고 어떻게 생태비
평의 논의 속에 끌어들여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지 한 방편을 보여준다.
즉, 뮤어와 같은 전통자연작가들이 인디언과 흑인들의 운명이 걸렸던 당시
의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연만을 다뤄왔다는 점 때문에 환경정의
담론에서 배제되고 있지만, 오히려 환경정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자연작가
들의 자연 인식과 기술에서 당시의 사회문제가 어떻게 배제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들의 자연관 및 인식을 통해 당시 사회와 문화의 이데올로
기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자연문학작품에 대한 이와 같은 후
기구조의 접근은 그동안 텍스트 비평에 갇혀 드러나지 않았던 전통자연작
가들의 인식과 당시 사회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낼 수 있다.
이점에서 푸코의 작가론은 유용하다. 푸코는 1969년 발표한 「작가란 무
엇인가」(“What Is an Author?”)에서 자율성을 가진 독립된 개체로서의 작
가 및 작품이란 기존의 개념을 거부하고, 대신 작가란 사회적으로 구성된
존재로서 “작품보다 앞서 존재하지 않으며, 이데올로기적 인물로, 우리가
의미의 확산을 염려하는 그의 태도가 이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된
다”(159).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모든 문학작품은 창작이라기보다는 전용
(appropriation)의 행위로서 텍스트는 통일된 의식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
적으로 결정된 여러 역할들로 구성된 것이다. 푸코의 이러한 작가론을 초
기 자연문학 연구에 적용시켜 표현하자면, 자연문학 작품에 나타난 자연관
은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반
영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문학연구에서 이데올로기 질문은 당연한 것이
며, 기존의 생태비평의 자연문학 접근에 대한 마이클 코헨(Michael Cohen)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적절하다. “자연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히
작품이 제시하는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문학 비평가는 자연문학 장르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15
범주 내에서 뿐만 아니라 범주 밖에서도 말해야 한다”(1105).
2. 자연의 정치학, 문학적 환경론, 야생자연 개념
생태비평에서 자연에 대한 본질주의적 관점으로부터 사회구성주의 관점
으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해 왔지만, 자연환경과 야생자연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한편으로는 환경담론과 생태비평은 여전히 논쟁을 지속
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자연이 인간의 인식과는 무관하게 고유한 속성
을 가진 본질론적으로 고정되고 기본적인 실체로 존재하느냐, 아니면, 자연
이란 독립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문화사회적이고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서 의미가 부여된 개념으로 볼 것인가이다. 처음에는 본질론이 대세
를 이뤄왔지만, 곧 문화비평적 관점에서 본질론은 구성론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고 이에 본질론자들은 엄연히 부인할 수 없는 자연의 실체를 근거
로 다시 구성론에 반박한다.
이 두 상이한 관점은 1995년 두 관점을 대표하는 비평서가 동시에 출간
됨으로써 표면에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우선 사회구성주의 입장을 대변하
는 책인 크로논(William Cronon)이 엮은 󰡔비상한 토대―자연을 재구성하기󰡕
(Uncommon Ground: Toward Reinventing Nature)에서 사회구성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들은 한결같이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능력, 개념화, 표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신, 자연이란 “자의식적인 문화적 구성물”(39)
로 이러한 자연에 대한 재인식은 지금까지 당연시 해온 자연관 및 환경주
의 개념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이러한 문제제기는 나치즘의 타고난
민족적 우월성에 근거한 유태인 학살과 같은 본질론적 “자연성에 의존한
이데올로기적 남용”을 막아 주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환경주의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 대한 대응서로 소울
(Michael Soule)과 리즈(Gary Lease)는 자연에 대한 본질주의 견해를 지지
하는 학자들의 글을 모아 󰡔자연 재구성?--포스트모던 해체에 대한 반응󰡕
(Reinventing Nature?: Responses to Postmodern Deconstruction)을 발
116 신 두 호
간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소울의 “자연에 대한 사회적 인질”이라는 표
현에 잘 드러나듯, 사회구성주의자들이 상아탑에 갇혀 “정치적 마비” 상태
에서 현학적인 휴부리스를 지니고 자연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
써 결국은 환경문제 해결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자연의 실체와 자
발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실재 자연환경” 없이 환경론은 있을 수 없으며,
해체주의의 “허무주의와 상대주의”는 자연이란 실체를 부인함으로써 자연
을 자본주의자들의 손아귀에 넘겨주는 꼴이 되어 이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
는 “불도저와 전기톱만큼이나 자연에 파괴적이다”(xv-xvi)라고 비판한다.
사실 자연에 대한 이 두 관점은 나름의 정당성을 담보하고 있다. 특히
구성론자들의 공헌은 자연의 실체를 사회문화적 맥락에 의해 구성된 개념
으로 대치시킨 점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서 기존의 본질론적인 자연의 의미가 사실은 “불필요한 요소”의
배제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찾을 필요
가 있다. 즉, 자연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순수한 물질적 실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의해 구성된 개념으로 이와 같이
자연의 정치성이 구성론자들의 자연 개념에 의해 드러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구성론적 접근은 페미니즘의 성(sex)에 대한 사회구성론적
접근과 상당히 닮아 있다. 󰡔몸의 의미체현--성의 담론적 한계에 대해󰡕
(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ursive Limits of Sex, 1993)에서 쥬디
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구성주의 입장에서 여성은 남성과 애초부터 근
본적으로 구별되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다는 본질주의를
비판한다. 하지만, 버틀러는 여성성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하에
서 여성을 지속적인 남성의 영향하에 두기 위해 남성문화에 의해 사회문
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구성주의의 일반적인 전제 역시 그대로 수용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이 담론이라면, 몸에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것이 텍스트라면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신체적 손상은 어떻
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페미니즘의 구성주의 기본
관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버틀러는 페미니즘이 비평이론으로 존재하기 위
해서는 여성 몸의 구체적인 성적 특징에 기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지
적한다. “성 카테고리가 젠더로 재구성되기 때문에 성에 내포된 다양한 문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17
화구성의 출발점으로 성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성의 신체적 필
연성에 대한 전제에 페미니즘의 의미론과 윤리는 근거하고 있으며 그 타당
성이 이 전제에 의해 부여된다”(28). 버틀러에 따르면, 따라서 페미니즘의
본질주의/구성주의 간의 논쟁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며, 중요한 것은 성
을 둘러싼 모든 것이 구성물인지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이라
는 성과 젠더구조에서 “배제, 삭제, 폭력적인 선행폐쇄, 경멸과 분열적 반
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인 힘”을 명백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다. 왜냐하면, 성 담론 내에서 이러한 배제, 삭제, 선행폐쇄, 경멸의 과정을
통해 담론의 대상인 “성” 보다 구체적으로 “남자,” “여자”라는 젠더화된 대
상이 당연시되기 때문이다(8).
버틀러의 이와 같은 성의 개념에 내포된 배제와 삭제의 작동원리 분석
은 자연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앞에서 성을 둘
러싼 페미니즘의 논쟁처럼 자연은 본질적인 실체를 가진 것이라는 본질주
의와 자연은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구조주의간의 논쟁이 환경담론과 생
태비평에서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구조주의적 관점이 세를 얻고 있다
는 점은 앞에서 지적했다. 구조주의 입장의 페미니즘처럼 환경구조주의자
들 역시 자연을 사회문화적 구성물로 삼고 있지만, 버틀러의 주장을 빗대
본다면, 우리가 이해하는 문화구성물로서의 자연의 개념 역시 자연이라는
그 물질적 실체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이 사회문화적 구성물인지
의 여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는 자
연의 개념 형성에 작동한 원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러한 작동에 의해
배제되고 삭제된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자연, 특히 야생자연에 대한 개념
에는 이와 같은 배제와 삭제의 논리가 강하게 작동되고 있다. 특히 19세기
미국의 자연에 대한 논의에는 “자연의 나라”(Nature’s Nation)로서의 신생
국인 미국의 국가 정체성 형성과 이의 연장선상에서 야생자연에 대한 집착
및 국립공원 지정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에서 배제와 삭제의 작동원리가
강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신생국 미국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문
화에 대적할 수 있는 대상을 자연, 특히 경의의 대상이 될 만한 광경과 독
특한 자연 식생이 잘 나타나는 서부의 대자연에서 국가적 정체성을 찾는다.
118 신 두 호
‘자연의 국가’로서의 미국의 정체성을 문화적 구성주의 측면에서 다룬 대
표적인 예는 페리 밀러(Perry Miller)의 「자연과 국가적 자존심」(“Nature
and the National Ego")에서 찾아진다.2) 1953년 예일대학 강연 원고인 이
글에서 밀러는 19세기에 국가적 정체성을 탐색하던 과정에서 미국은 두 가
지 상호 연관된 난처한 문제를 정리해야 했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문제는
미국이 고상한 청교도 정신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세속적인 계몽시대의
물질주의 근거한 것인지의 문제이다. 이 두 상호모순적인 세계관은 처음부
터 미국의 기본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두 번째 문제는 미국은 미국인
들이 그렇게 믿고 싶었던 대로 근본적으로 유럽과 다르며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의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작가와 화가, 사상가와 같은 미국
의 지식인들은 다름 아닌 자연의 개념에서 찾게 된다. 미국이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인들이 그럼에도 타락하지 않도록 지탱시
켜주는 것은 바로 미국에는 신성이 깃든 야생자연이 있기 때문이며, 바로
이점이 유럽과 차별되는 것으로 지식인들은 내세운다.
이와 같은 “문화적 국가주의”로서의 자연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야
생자연과 국립공원을 둘러싼 담론이다. 19세기 미국 역사에서 야생자연은
대자연 국가로서의 미국의 정체성 형성에 가장 중요한 국가적 상징으로 작
동했으며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야생자연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된 것이
국립공원이며, 실질적인 세계최초의 국립공원인 요세미티는 야생자연지로
자연국가로서의 미국을 상징하게 된다. 알프레드 룬트(Alfred Runte)는 국
립공원에 구현된 야생자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미국의 국립공
원에 대한 집착 배후에는 미국에는 없는 유구한 전통에 대한 마음 아픈 지
속적인 갈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내세울만한 문화적
업적의 부재로 인해 당혹감을 견뎌야 했었다.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의 유럽 나라들과는 달리, 미국은 장구의 예술과 문학적 유산을 갖지
못했으며, 성과 고대 유적, 자연풍경에 싸인 성당과 같은 인간의 과거를 상
기시켜주는 흔적의 부재로 인해 미국의 지식인들은 문화적 정체성으로부터
2) Errant into the Wilderness.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P, 1956), 204-16.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19
더욱 고립감을 겼어야만 했다. 유럽의 비평가들로부터 이러한 문화적 결핍
에 대해 끊임없이 받아온 힐난에 대한 반응으로 1860년대에 오면 많은 미
국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인공적 성취와 인공물에 맞설 수 있는 대상으로
서부의 경이로운 자연을 내세웠다”(1987, 11-12).
자연, 특히 야생자연을 국가정체성으로 내세우는 야생자연에 대한 이데
올로기는 신생국 미국이 당면했던 정체성 확립이란 과제를 해결해주었지
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의 국가’라는 이미지 때문에 자연을 둘러싸고 실
제로 벌어지고 있던 환경파괴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자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
로 미국이 인공적인 유럽에 비해 우월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으면
서, 동시에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자연 파괴를 어떻게 편안함 마
음으로 대면할 수 있겠는가?” (204)라는 밀러의 의문제기는 ‘자연의 국가’
로서의 미국의 정체성 확립과정에서 순수상태의 자연경관 이미지 속에 실
제로 자행되던 자연 파괴의 실상은 가려졌으며, 순수한 야생자연과 사람들
의 자연 파괴적인 삶 사이에는 인위적인 굳건한 장막이 세워져 국가 정체
성 확립 추구과정에서 전자만이 강조되기 후자의 현실문제는 가려져왔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환경파괴란 현실문제에 고의로 눈감고 ‘자연의 국
가’라는 국가정체성 확립을 위한 이러한 야생자연 이데올로기에 일조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자연작가와 예술가들로, 자연 파괴의 문제가 심각해질
수록 이들은 전자의 이미지에만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원시적 숲이 더욱 빨리, 더욱 가혹하게 쓰러질수록, 화가들과 시인들, 목사들
은 태고의 손상되지 않은 ‘낭만적’ 자연의 덕목을 이 공화국의 특별한 성품으
로 삼는데 그 만큼 더욱 애썼다. (210)
이와 같이 19세기 미국의 자연관은 자연파괴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자연
보호 관점 보다는 국가 정체성 형성 관점과 더욱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미국 자연관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야생자연은 자연의 구체적인 실체라기
보다는 당시의 이데올로기와 작가, 화가에 의해 정립된 개념에 가깝다. 따
라서 야생자연이란 어떤 특별한 구체적인 조건을 갖춘 통일되고 객관적으
로 정의될 수 있는 자연지역이라기 보다는 보는 사람에게 특별한 정서를
120 신 두 호
일으키는 주관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로데릭 내쉬(Roderick Nash)는 󰡔야생
자연과 미국정신󰡕(Wilderness and American Mind, 1967)에서 야생자연이
라는 용어는 “개인적이고 상징적이며 늘 변하는 의미로 가득 차있기” 때문
에 단순히 구성요소들을 나열함으로써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이 용어는 “한 개인에게 특정 분위기와 느낌을 자아내는 그럼으로
써 그 개인에 의해 특정 장소에 고유한 것으로 삼는 특성을 의미”(1)한다.
내쉬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경관으로 부터 특별한 감흥과 느낌을 받지만,
동시에 인간의 의도적인 목적에 의해 자연경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도 한다. 특정자연에서 야생성을 발견하는 것은 결국 달리 표현하자면 특
정 자연경관에 야생성을 부여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내쉬 역시 야생성
을 부여하는 주체로 작가 및 화가, 사진가들을 들고 있다.
19세기에는 교통수단 미발달로 인해 미국이 ‘자연의 국가’로 내세우는 요
세미티나 옐로우스톤, 로키산맥 등을 일반인들이 직접 방문할 기회가 제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이러한 자연을 접하는 것은 문학작품과 풍경
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였다. 따라서 ‘자연의 국가’라는 이데올로기에
충실했던 19세기 당시의 자연문학 및 풍경화, 사진은 일반인의 자연 인식
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와 같이 당시의 정치, 사회문화적 이데올
로기에 의해 현실이 배제된 채 야생자연의 의미가 자연문학과 예술매체를
통해 형성되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은 담론과정을 마젤(David
Mazel)은 “문학적 환경론”(literary environmentalism)이라 부른다.
문학적 환경론이란 단순히 정치적 운동의 문자기록이 아니며, 그 운동의 영감
을 주는 그래서 이제는 정전이 된 텍스트의 결과만도 아니다. 문학적 환경론
이란 오히려 보다 큰 문화적 실천을 텍스트로 담아내는 결과물이며, 아이디어
와 사람들, 기관을 함께 엮는 앙상블을 텍스트로 담아내는 결과물이다. 또한
이것은 환경론적 담론이 그 안에서 지적이고 보편적이며 법적 권위를 획득하
는 오늘날 사방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성--그래서 자연환경이 만들어지고 당
연시 되어지는 구성--을 의미한다. (21-22)
문학적 환경론이 드러내주는 점은 문학 및 예술작품에 기술된 자연관은
당시의 실제 자연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기 보다는 이들 작품이 국가 이데올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21
로기 형성의 도구였다는 점에서 실제 자연실태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스캇 헤링(Scott Herring)은 󰡔땅에 그어진 선--작가, 예술, 국립공원󰡕
(Lines on the Land: Writers, Art, and the National Parks, 2004)에서
“공원제도의 초창기부터 작가와 예술가들은 공원을 사실과는 차이가 있는
이상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며 공원을 최상의 특질을 가진 책, 그림, 조각으
로 이상화 시켰다. 오늘날 공원을 찾게 되면, 나무, 동물, 환상적인 ‘자태’만
이 아니라 여러 세기에 걸친 뛰어난 문학 예술인들에 의해 다져진 문화적
중요성의 고색창연함을 보게 된다”(1)고 지적한다.
문학적 환경론은 이와 같은 문학 및 예술작품에서 기술하는 자연이 당
시의 자연상태를 이상화하고 낭만화 시켰다는 사실을 드러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이와 더불어 문학환경론에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자연의 국가’로서의 이데올로기 형성과정에서 미국 원주민들 및 이들
의 문화적 요소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지적하고 밝혀내 줄
필요성이다.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자연문학에는 문학적 환경론이 잘
드러나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존 뮤어이다.3) 이 점에서 구성주의 입장에
서 문학적 환경론에 기초한 생태비평적 접근은 기존의 자연작가들을 무조
건 제외시키기 보다는 이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케 해준다.
3. 존 뮤어의 야생자연에 대한 문학 환경론적 읽기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시인」(“The Poet”)에서 우
주의 3자녀로서 진리를 사랑하는 ‘지자(the Knower),’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언자(the Sayer, or Poet),’ 선을 사랑하는 ‘실천가(Doer)’를 들면서 각 자녀
3) 자연의 숭고함과 장대함에서 신생국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표현했던 대표적인
그룹은 자연문학가들과 더불어 풍경화가와 엔젤 아담즈와 같은 사진가들이다. 19
세기 미국 정체성 형성에 풍경화가들이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다음
책에 잘 기술되어 있다. Angela Miller, The Empire of the Eye: Landscape
Representation and American Cultural Politics, 1825-1875 (Ithaca, N.Y.:
Cornell UP, 1996)
122 신 두 호
는 “자신 안에 다른 자녀를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 세 “자
녀”는 자연을 포함한 세상을 이해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본
질적인 요소로서 각각의 개별적인 구성체로서 보다는 이 3요소의 통합적
구성이 필요함을 피력하고 있다. 에머슨의 생각을 환경담론에 적용하자면,
이 세 가지 요소는 자연을 이해하고 환경보존을 위한 노력에 중요한 덕목
이 된다. 흔히 자연을 노래하고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많은 환경
론자 및 환경운동가, 문학가들은 위 3가지 덕목 중 2가지를 겸비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3가지를 한 번에 갖춘 경우는 드물다. 가장 대표적인 자연문학
가이자 환경운동 실천가인 뮤어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
자연에 대한 ‘지자,’ 통찰자, 실천가로서의 덕목을 갖춘 뮤어는 소로우에
서 시작된 자연문학을 구체적인 자연에 대한 실천적 과학적 지식과 자연에
서의 정신적이자 시적 고양을 접목시키는 고차원적인 장르로 정립시켰으
며, 또한 자연 및 생태계 보존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강조함으로써 미국
최초의 환경운동 단체인 시에라 클럽을 탄생시키는데 큰 역활을 했다. 이
런 점에서 뮤어는 인간과 자연, 과학과 인문학, 이론과 실천 사이에 존재하
는 보편적인 경계를 가로질렀으며, 이로 인해 자연문학 및 환경운동 분야
에서 중요하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왔으며, 뮤어에 대한 일반인의 믿음
또한 그러하다.
뮤어의 자연에 대한 관찰 및 통찰, 실천은 국립공원지정과 같이 야생자
연에 경계를 둘러침으로써 자연을 인간문명으로 부터 보호하려는 구체적인
의도를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노력은 당시의 미국의 사회정치적 이데올로
기와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 및 생태계를 중심으로 하는 시각
및 이와 맞물린 ‘자연 국가’로서의 미국이라는 이데올로기 형성은 당시의
실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자연에 대한 실체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았
으며, 더 나아가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국립공원 지정이 원거주민인 인디언
의 운명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와 같은 연관된 문제를 고의로 배제시키
는 인위적인 개념론적 경계를 세우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뮤어의 이와 같
은 야생자연 및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세미티에 대한 낭만화
와 배제의 자연관은 󰡔시에라에서의 첫 여름󰡕(My First Summer in the
Sierra)에 잘 나타나 있다. 1869년 뮤어가 양 때를 따라 처음으로 시에라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23
산맥에서 자연을 경험하고 요세미티 밸리를 방문했던 몇 달간의 기록이자
그의 실질적인 첫 작품으로 야생자연에 대한 그의 열망 및 문명에 대한 비
판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작품에는 이후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여러
달 동안 양 때 방목에 연관된 사람들과 함께 지낸 기록이기 때문에 이들을
통한 그의 야생자연과 문명, 인디언에 대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양치기 도우미로서 이 여정을 출발할 때 뮤어는 시에라를 “홈”으로 삼기
이전으로 자신이 다시 언제 문명세계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여정에서 자신의 길이 문명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야생자연에 있음을
확신하는 경험을 한다. 하이 시에라에서 양 때 방목을 도우며 자연을 탐사
하던 중 자신의 대학시절 문학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던 버틀러 교수가 요
세미티 밸리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즉시 밸리로 내려가서 버
틀러 교수를 발견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버틀러 교수와의 만남은 뮤
어의 입장에서는 기쁨보다는 실망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 교수 및 일
행은 “마치 눈에는 반창고가 붙어있고 귀에는 귀마개로 막아진 듯, 위대하
고 전혀 새로운 이곳 대자연에 조금도 인상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263).4)
또한 자신과는 달리 이들은 문명세계의 의무에 종속되어 구속되고 있다는
생각에 동정까지 하게 된다. “이들은 시계, 달력, 명령, 의무와 같은 것들로
묶여있으며, 대자연은 갇혀서 자연의 목소리는 질식 상태에 있는 저지대의
걱정거리, 먼지와 소음을 안고 어쩔 수 없이 거주할 수밖에 없지만, 이 가
난한 보잘것없는 방랑객은 신이 내린 야생자연의 자유와 영광을 마음껏 누
리고 있다”(261). 이들의 처지를 보면서 뮤어는 시에라에서의 자신이 얼마
나 자유롭고 행복한지 느끼고, 이를 계기로 자신이 교류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임을 깨닫고 이후부터 더욱 야생자연에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야생자연에 대한 주관적 의미부여는 당시의 자연경관 및 자연환
경에 대한 객관적인 충실한 묘사보다는 당시의 정치문화적 및 국가적 이데
올로기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기술하며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거나
방해되는 요소는 배제시키거나 왜곡한다. 󰡔시에라에서의 첫 여름󰡕의 배경
4) 이후 이 작품 페이지 수는 John Muir, Muir: Nature Writing (New York: The
Library of America, 1997)에 실린 My First Summer in the Sierra에 따른다.
124 신 두 호
이 되는 1869년 뮤어가 목격한 요세미티 밸리 및 하이 시에라는 사실은 이
미 난개발과 몰려든 관광객 및 과도한 방목으로 자연은 이미 심하게 훼손
된 상태였다. 즉, 순수한 야생자연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요세미티 밸리
는 순수하고 경이로운 야생자연 경관이 아닌 거주민들의 집, 과수원, 경작
지와 방문객을 위한 호텔, 식당, 동물원, 말 축사 및 먹이를 위한 목초지,
수영장 등 온갖 인공물들이 들어선 곳이었다. 1860년대 방문객이 이미 2만
명을 넘었으며 1864에에 비해 1870년도는 방문객이 4배로 급격히 증가한
다. 거주민과 방문객의 수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이들을 실어 날으는 교통
수단인 말이 더 많아짐에 따라 밸리의 초목지는 황폐해지고 거주민들은 경
쟁적으로 울타리를 쳐서 다양한 외래종의 풀과 곡식을 경작함으로써 토착
식물과 야생화는 발길이 닿지 않는 구석에서나 발견될 수 있었다 (Runte
1990, 40-41)
하지만 뮤어가 요세미티 폭포 정상 언저리에 서서 요세미티 밸리를 내
려다보고 그 경관에 감탄하면서 남긴 기록에는 이러한 당시의 개발의 흔적
은 잘 보이지 않는다. 뮤어는 요세미티 폭포 언저리에서 요세미티 밸리 위
로 솟아오른 장대한 기암들을 보고 “이제껏 이처럼 장려한 경관과 끝없이
이어지는 장엄한 산의 아름다움은 본적이 없다. 이와 유사한 경관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내가 겨우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장대함과
이 경관을 덮고 있는 영혼의 작열하는 빛이다”(219). 이어서 뮤어는 요세미
티 밸리를 내려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감탄하고 있다.
훨씬 더 유명한 [요시미티] 밸리의 전경이 갑자기 내 앞에 펼쳐졌다. ... 평평
한 밸리 바닥은 정원처럼 잘 정돈된 듯 보인다. 햇빛이 잘 드는 초지가 여기
저기 나 있고, 소나무와 오크나무 숲이 자리 잡고 있으며, 머시드 강은 초지와
숲을 가로질러 빠르게 흐르면서 햇빛을 반사해낸다. ... 요세미티의 경관을 마
주하고 있으면, [낭떨어지에 서 있으니]조심해야 한다고 내 스스로에게 말하지
만 헛수고다. 요세미티의 마법에 걸리면 내 몸은 고삐가 풀려 지가고 싶은 대
로 가는 느낌이다. (219-20)
뮤어에게는 요세미티 밸리와 같은 신성이 깃든 자연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으로 간주하고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타
락이전의 순수한 에덴동산으로서의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뮤어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25
의 순수야생자연에 대한 찬미와 그러한 상태로 보전해야할 필요성의 강조
는 필연적으로 야생자연을 문명으로 부터 경계 짓고, 순수한 원시 상태의
자연에 백인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신생국으로서의 미국이라는 정체성은
원주민인 인디언의 문명과 역사를 자연에서 지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뮤어가 사실은 당시에 요세미티 밸리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으며,5) 그 이후에 요세미티를 국가지정공원으로
승인 받기 위해 지속적이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유도 다름 아닌 요세
미티 밸리와 메리포사, 하이 시에라에서 자행되던 파괴로부터 야생자연을
보호보전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1869년 시에라를 본격적으로 탐방했을 때
부터 이미 시에라의 원시적인 자연은 방목으로 인해 많이 부분이 훼손되고
있음을 목격했고, 특히 메리포사의 세콰이어를 비롯한 시에라의 장대한 나
무들이 무차별적인 벌목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뮤어는 요세미티의 경이로
운 경관과 특별한 자연(자원)이 훼손과 개발로 부터 보호보존되어야 한다
는 점을 요세미티가 국가공원으로 지정되어야 할 실질적인 명분으로 내세
웠으며 동시에 이러한 자연은 문명에 의해 오염된 사람들의 정신을 재생시
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정신적 명분 또한 강조한다. 뮤어에게 요세
미티 밸리와 시에라의 원시적인 자연은 정신을 고갈시키는 문명으로 부터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재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
다. 「서부의 야생 공원과 산림 보호구역」(“The Wild Parks and Forest
Reservations of the West”)에서 뮤어는 현대미국문명의 요구와 폐해는 대
단히 크지만 그 혜택은 기만적이어서 야생자연 보호는 현대문명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꼭 필요하다. 최근에 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야외
레크레이션을 찾아 나선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뮤어는 “피곤에 지치고 신
경쇠약증에 걸린 과도하게 문명화된 사람들이 산으로 떠난다는 것이 곧 집
으로 향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야생자연은 꼭 필요하며,
5) 위스콘신 대학 시절 은사였던 이제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거주하고 있던 Carr
부부, 특히 평생 뮤어의 멘터역할을 한 Jeanne Carr로 부터 서신을 퉁해 뮤어는
요세미티에 대해 자세한 소식을 자주 접했다. 뮤어가 인디아나에서 멕시코만까지
도보여행을 마치고 예정대로 멕시코로 가지 않고 요세미티로 온 것도 Carr 부부
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126 신 두 호
산림공원과 보호구역은 목재와 관개수로의 원천으로서만이 아니라 삶의 원
천이라는 점 역시도 깨닫기 시작했다”(721)고 적고 있다. 뮤어는 미국에서
이러한 야생자연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특히 공유지의 야생자연은 국립공원 지정과 같은 방법으로 국가가 나서서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
마젤(David mazel)은 “선구적인 환경론자이자 심층생태론자”인 뮤어가
󰡔시에라에서의 첫 여름󰡕에서 자신을 미국인의 완전한 전형으로 제시한다고
지적한다. 뮤어는 저지대의 혼란스러움을 피해 거대하고 텅 빈 그리고 시
간을 초월한 자연지대로 올라가면서 고독을 즐기는 “미국인 아담”으로 “인
간사회와 역사로부터 온전히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것이다. 마젤에 따르면,
뮤어의 이 작품은 타락 이전의 순수한 자연 속의 아담과 같은 환상을 불러
일으킴으로서 그의 시에라에서의 첫 여름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는 혼자
지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당시 남북전쟁 이후 캘리포니아 시에라 산맥
광산으로 자본의 유입으로 인한 광산개발 붐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는 역
사적 사실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93).6)
하지만 마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은 이 작품에서 뮤어는 요세미티 밸리
에서 오랜 기간 인간사회를 구성하고 살아왔으며 이곳이 국가공원으로 지
정된 이후 자신의 삶의 터전을 강제로 추방당해야 했던 인디언의 비극적
역사에 대해 무심하다는 사실이다. 뮤어의 순수한 야생자연에 대한 동경
및 집착은 그의 인디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뮤어가 시에라를 경험하면서 함께 방목에 참여했던 디거(Digger) 인디언
목동을 비롯하여 근처에 거주하는 인디언들과 여러 차례 마주치는데 뮤어
의 이들 인디언에 대한 평가는 “더럽고” “불결하고” “저급한” “지저분하
고,” “수다스럽고,” “미신적이고,” “치명적으로 위험하고,” “게으르고,” “도덕
적으로 타락하고,” “남의 아내 훔치는 자” 등으로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이
중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묘사는 가장 지속적이고 자주 등장한다. “내가
이들[인디언]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있다면 이들을 이 보단 더 좋아할 수
6) David Mazel, American Literary Environmentalism (Athens, GA: U of
Georgia P, 2000)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27
도 있겠지. 이들에게서 발견하는 가장 좋은 않은 점은 불결하다는 것이
다”(285).
등에 바구니를 메고 채집하러 가는 중에 방목 캠프가 차려진 것을 보
고 호기심에 들어온 “늙은 인디언 여인”의 모습을 뮤어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이 여인의 옷은 깨끗한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무명 넝마였다. 이 여인은
야생자연의 테두리 안에서 마찬가지로 살고 있으면서도 안타깝게도 모든 면에
서 대자연의 깔끔하게 맵시있게 차려입은 동물들과 달랐다. 인간만이 지저분
하다니 참 이상하다. 노간주나무나 때장처럼 이 여인이 이끼를 옷처럼 입었거
나 풀이나 나무껍질을 엮어서 입었더라면 적어도 순한 늑대나 아니면 곰처럼
야생자연의 적법한 일부분을 이루었을 텐데.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관점으로도
이처럼 타락한 인간은 새와 다람쥐를 놀래키는 겉만 번지르하게 옷을 차려입
은 여행객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자연에 어울리지 않는다. (186)
뮤어는 이 인디언 여인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저분한
옷차림만을 보고 야생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야생성 상실은 곧
타락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인디언은 순수한 야생자연에 적법하게 거주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인디언들은 이끼나 초목으로 엮은 옷을 입어야 자연
에 어울린다는 그의 판단은 인디언에 대한 그의 선입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뮤어의 인디언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인디언들이 야생
성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자연에서의 야생적인 삶으로 부터 벗어난 삶을
사느냐에 근거한다. 특히 인디언들의 백인 문명과의 접촉은 문명에 오염되
어 야생성을 잃었다는 것과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낫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생자연 파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무의 파괴가 아니라 야생자연에
사는 사람들, 즉 인디언들의 파괴이다. 소로우와 뮤어에게 야생성이 파괴되
어 타락한 인디언만큼 최악의 것은 없다”(25)라는 플렉(Richard Fleck)의
지적은 적절하다.
뮤어는 요세미티와 하이 시에라의 인디언들이 야생성을 상실하고 타락
한 상태만을 지적함으로서 이러한 원인이 마치 인디언 자신들에게 있는 것
처럼 기술한다. 하지만 사실은 인디언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
이 백인 및 미국 정부의 조치에 의해서라는 점은 당시에 이미 자명하게 밝
128 신 두 호
혀졌다. 우선은 하이 시에라 산맥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백인들에 의한
무차별적인 광산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 때문에 인디언들의 거주지가 침해
되고 식량원이 사라졌다. 또 다른 보다 큰 원인은 요세미티를 국가가 공원
으로 지정하면서 파견된 군대가 요세미티 밸리의 원주민들을 상대로 3차에
걸친 대규모 소탕작전을 벌이게 되고 이에 반항하는 많은 원주민들은 희생
됐으며 나머지는 강제로 보호구역에 갇히게 된다.7) 이 후 많은 인디언들은
백인 문화에 교화되어 자연에서의 삶의 방식을 잃어버리고 백인들과 마찬
가지로 물질적인 부를 추구한다. 뮤어의 󰡔시에라에서의 첫 여름󰡕에는 어느
곳에도 이러한 자명한 역사적 사실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 뮤어는 나중 작
품에서 인디언들의 야생성 상실이 백인들과의 접촉에 있었다는 점을 구체
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시에라에서의 첫 여름󰡕에서는 함께 동행했던
인디언 목동에 대해 야생성과 교화된 삶의 중간에 있는 인물로 그리면서
교화된 삶의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지만, 1901년에 출간된 󰡔미국
의 국립공원󰡕(Our National Park)에 오면, 인디언 목동의 자연성을 상실한
실태 및 원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곧 영어를 구사하는
그 양치기가 들어와서, 나는 그에게 (이 방목 여정에 참여하게 된) 목적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했다. 대부분의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나같이 돌아다니는 목적이 금을 획득하는 것 말고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금광을 발견했는지 계속해서 물어왔다. 나는 그가
나무와 야생동물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유도했지만, 불행히도 그는 툴 인디
언 보호구역 출신의 교화된 인디언으로 자신은 학교교육을 받았으며, 문명
화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야생상태의 인디언’에 대해 경멸적으로 이야기 했
다. 물론 그의 타고난 본능은 흐릿해지거나 상실했다” (586).
󰡔시에라에서의 첫 여름󰡕에 기록된 뮤어의 시에라에서의 초기 삶에서 드
러나는 야생자연에 대한 집착과 인디언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그의 개인적
이며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의 신천지로서의 오염되지 않은 수순한 야생
7) 요세미티의 국가공원 지정 및 인디언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다름과 같은 책에서
잘 다루고 있다. Alfred Runte, National Parks: The American Experience.
1979. Rev. ed. (Lincoln: U of Nebraska P), 1987; Alfred Runte, Yosemite: The
Embattled Wilderness (Lincoln: U of Nebraska P, 1990).
자연의 정치학 ― 존 뮤어의 문학적 환경론 129
자연으로서의 새로운 미국이라는 열망 및 소원을 담고 있다. 뮤어에게 순
수한 야생자연이란 인간문명에 의해 변형되지 않은 신이 창조한 원형을 그
대로 간직한 경탄할 만한 자연장소를 의미하며 그에게 요세미티 밸리의 장
엄한 경관 및 고봉준령의 하이 시에라는 신이 빚은 대표적인 야생자연이
다. 따라서 뮤어는 신생국 미국의 신천지를 대표하는 이곳 야생자연에서
인디언 문명과 같은 인간문명의 존재 및 흔적을 고의로 외면하거나 축소하
고, 또한 이곳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야생자연성을 상실한 부정적인 모
습만을 부각시킴으로써 더 이상 인디언들은 순수한 이곳의 거주민으로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당시의 미국 국립공
원의 설립과 존재 명분을 지지하는 애국적 내러티브에 일조한다.
4. 결 론
그동안 뮤어와 같은 자연문학 작가에 대한 연구가 사회적 맥락을 배제
한 채 자연의 실체 및 인간-자연의 개인적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어 오다
가, 자연을 사회구성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이들에 대한 논의가 생태비
평에서 급격히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전통자연작가들에 대한 논의는 사회
구성주의 관점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논의
한 것처럼 대표적인 자연작가인 뮤어 역시 사회구성주의 입장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생태비평이 전통자연문학과 작가에 대해 사회구성주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즉, 그동안 생태비평의 자연
에 대한 기본 전제에 적합한 작가만을 주어진 틀 안에서 논의해 오면서 이
들에 대한 찬양 일변도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실, 전통자연작가들을
사회구성주의 입장에서 접근하게 되면 이들의 자연관에 담긴 한계점과 배
제의 논리가 드러나게 되고, 이러한 한계점과 배제의 논리를 드러내는 것
역시 생태비평의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은 자연문학 전통에 대한 일방적 매도나 전통과의 단절이
아니다. “자연문학 장르에서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이 장르를 폄하하기 위
130 신 두 호
한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와는 정반대로 자연문학은 미국 전통에서 지
속적으로 특별하고도 예언적인 목소리를 드려줄 것이며 미국 정신을 지속
적으로 위협하는 물질주의에 대항하는 주된 역할을 계속 할 것이다"(xviii)
라는 엘더의 지적처럼, 전통 자연문학은 여전히 그 유구한 뿌리를 견지한
채 생태의식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전통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동시에 전통 자연문학이 현대의 환경론을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에 스스로를 노출시킴으로써 또 다른 차원에서 현대
환경담론에 여전히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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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호
강원대학교 영미언어문화학과
Tel: 033-570-6626
email: shindh@kangwon.ac.kr
논문접수일: 2010. 09. 24
심사완료일: 2010. 10. 15
게재확정일: 2010. 11. 12

http://www.mesk.or.kr/est/downfile.php?filename=11054820864.pdf&filename02=%C3%D6-06%BD%C5%B5%CE%C8%A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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