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of the Environment)
여기에 실린 내용은 2008년 10월 6일자 타임(Time)에 게재된 특별기고문 ‘환경 영웅들 2008’(Heroes of the Environment 2008)의 번역물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거창하게 생각하여 국가나 공공기관 혹은 큰 단체가 주도해 나갈 문제로 여기면서, 개인은 방관자의 위치에 있어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환경운동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또 작은 국가가 환경운동을 더 잘 선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가는 환경운동가들은 작은 것을 위한 개인의 작은 노력에서 출발하여 범지구적인 환경운동가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환경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환경 운동을 어떻게 실천해나가야 하는가를 여기 ‘환경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면 녹색으로 가는 길이 분명히 보일 것입니다.
환경을 위해 우리의 모범을 보일 때 미래 세대는 꿈과 희망을 갖고 푸른 지구를 지켜나감으로써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번역 편집에 있어서 각 장의 전면 화보는 원본의 것이고, 후면의 것은 역자가 삽입하여 편집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도움 되시기를 바랍니다.
- 그린닥 -
목차
I. 소개
1. 왜 절망하지 않는가?
2. 지구 보호자들
II. 환경 영웅들
1. 케빈 콘라드(Kevin Conrad)
2. 아놀드 스왈제네거(Anold Schwarzenegger)
3. 세일라 왓 클라우티어(Sheila Watt-Cloutier)
4.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
5. 마리나 실바(Marina Silva)와 크리스티나 나르보나 루이즈(Cristina Narbona
Ruiz)
6.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
7. 테드 노르드하우스와 미첼 셀렌버거
(Ted Nordhaus and Michael Shellenberger)
8. 하비바 사라비(Habiba Sarabi)
9. 바라트 자그데오(Bharrat Jagdeo)
10. 장 프랑수아와 찰스 드코(Jean Francois and Charles Decaux)
11. 믹 브레만스(Mick Bremans)
12. 존 도엘(John Doerr)
13. 피터 헤드(Peter Head)
14. 페기 류(Peggy Liu)
15. 사이 아가시(Shai Agassi)
16. 애니 레오나르드(Ammie Leonard)
17. 왕 용첸(Wang Yongchen)
18 기돈 브롬버그(Gidon Bromberg), 나더 알 카티브(Nader Al-Khateev) 및
문게스 메야르(Mungeth Mehyar)
19. 잭 심(Jack Sim)
20. 발빌 싱 시체왈(Balbir Singh Seechewal)
21. 실라스 크파난영 시아코르(Silas Kpanan'Ayoung Siakor)
22. 크레그 솔리(Craig Sorley)
23. 마리나 리흐바노바(Marina Rikhvanova)
24. 밴 존스(Van Jones)
25. 조렌 헤르만센(Soren Hermansen)
26. 루니 톰슨(Lonnie Thompson)
27. 모하메드 딜라와르(Mohammed Dilawar)
28. 주르겐 프리마베라(Jurgenne Primavera)
29. 조아힘 루터(Joachim Luther)
30. 보 쿠이(Vo Quy)
I. 소개
1. 왜 절망하지 않는가?
-By Bryan Walsh
환경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래는 어둡고 암울하게 보일 수 있다. 온실가스배출이 가속화되어 가기만 하는 가운데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드럼 소리는 강렬해지고 있다. 늘어나는 수십억 인구로 우리는 자원과 우주 확보 경쟁을 하고 동식물을 밀어내면서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현대인의 생활을 살기 좋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 즉 에너지라는 것이 오히려 이 지구를 살기에 불편하도록 위협하고 있다. 도움을 주고 싶으나 큰 도전이 우리들을 무기력하게 느끼도록 한다.
왜 절망하지 않는가? 이것은 해결책이 분명히 있고, 우리를 해결 쪽으로 선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브라질의 우림(雨林)의 대모(代母) 마리나 실바 같은 활동가들이고, 때로는 독일의 태양열 발전의 대부(代父) 조아힘 루터 같은 과학자들이다. 또 어떤 이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왈제네거 같은 명사들이요, 어떤 이는 참새 종의 감소에 대응하는 환경운동가 모하메드 딜라왈 같은 무명인들이다. 존 도엘 같은 금융인들이 있는가 하면, 녹색 프로젝트에 금융지원을 하는 억만 장자 벤처 자본가들도 있고, 인도의 썩은 강을 정화하는 시크교도 발빌 싱 시체왈 같은 성자들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지구에 닥친 위협에 대처하는 통찰력과 수완성이다.
왜 절망하지 않는가? 이들 남녀의 존재 자체가 그들이 하는 일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 혼자서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다든가, 멸종위기에 있는 종(種)을 혼자서 지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모범적인 사례로 인하여, 또 아직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망 없는 것으로 내버려 두는 일에 자신을 기꺼이 바치는 헌신으로 인하여, 이들 환경 영웅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춰준다. 그들은 절망이 유일한 옵션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이 선택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의 산 증거인 것이다. 그들은 인간 창조성과 의지 앞에서는 어떠한 도전도 지나친 것이 없으며, 또 이기지 못하는 어떠한 싸움도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2. 지구 보호자들
-by Michael Elliott(타임 편집자)
그것은 게임의 제목, 즉 ‘도대체 브리언 월시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해야 한다. 뉴욕에 근거를 둔, 우리의 주임 환경작가는 지구 전체를 훨훨 날아다닌다. 금년 여름에는 그린란드에서 큰 이야깃거리를 찾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시간을 내어 환경 영웅에 관한 우리의 연간 특별 과제를 돕겠다고 했을 때 여니 때와는 달리 기뻐했다. 브리언은 다른 기자들과, 또 우리의 행렬에 참여하도록 초청된 초대작가들과 더불어 이 보고서에 게재할 30명의 인물 소개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2년째 발행하는 것으로 런던의 윌리엄 그린(William Green)이 능숙하게 편집한 것이다. 폴 멈비(Paul Mumby)와 세실리아 웡(Cecelia Wong)이 페이지를 디자인했고, 세실리아가 예쁜 표지를 만들었다. 마이크 빌링(Mike Bealing)과 줄리어스 도마니(Julius Domoney)는 엄청난 사진들을 정리하여 책을 살아나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로 그들 모두의 노고와 그들이 투입한 많은 시간에 대하여 감사한다.
늘 그렇듯이 기자들은 유익한 만큼이나 감동적인 스토리를 발견해냈다. 앤드류 리 버터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의 단체인 ‘지구 중동의 친구들’에 관해서 썼다. 그들은 “지속가능성으로 가는 길은 평화로 가는 길과 마찬 가지로 공동체 조직과 교육 및 신뢰 구축의, 느리고도 까다로운 인간 계획이다”고 이해한다고 앤드류는 말한다.
브리언 자신은 작년 발리의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파푸아뉴기니를 대표하는 케빈 콘라드의 부드러운 점을 보았다(노벨평화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그리츠는 이 보고서에 게재된 콘라드 소개서를 썼다). 콘라드는 인간다운 면이 있으며, 금융회사에서 근무할 수도 있는데도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환경 싸움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고 브리언은 말한다.
브리언은 지금 어디 있는가? 마다가스카르? 내가 의미하는 것을 아는가?
1. 케빈 콘라드(Kevin Conrad)
-by Joseph E. Stiglitz
그것은 고전적인 다윗과 골리앗 간의 순간이었다. 2007년 12월 발리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케빈 콘라드는 Post-2012 기후협약을 위한 계획에서 유일한 가입 보류국인 미국에 도전했다. “만약 어떤 이유로 지도자 역할을 하고 싶지 않으면 우리에게 맡겨라. 제발 길을 비켜라!”라고 그는 선언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미국은 후퇴했다. 그 결과 나온 ‘발리 행동계획’은 교토 의정서를 계승하는 국제기후협약을 위한 로드맵을 제공하고 있다. 발리협약은 파푸아 뉴기니의 기후변화 특별사절단으로 참석했던 콘라드에게는 의미심장했다. 왜냐하면 그 협약은 그가 수년 동안 싸워왔던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최초로 열대우림의 역할과 산림남벌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원인임을 인정하기로 동의했다.
이 문제는 파푸아 뉴기니의 우림지역의 깊숙한 조그만 마을에서 자란 40세의 콘라드에게는 오랫동안 중심 과제가 되어왔다. 컬럼비아대학의 대학원생으로서 그는 처음 산림남벌 문제를 제기했다. 그기에 있는 동안 그는 우림 보존을 위해 국제사회가 보상해야 할 방법에 관하여 스티그리츠의 도움을 구했다. 현 기후변화협약에서 제외되어 있지만 환경 봉사에 대한 대가 지불이 없이는 파푸아 뉴기니와 같은 나라로서는 산림만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콘라드가 이상파 지도자 파푸아 뉴기니의 수상 마이클 소마레와 코스타리카의 대통령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 두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확보한 후로 운동의 동력은 빠르게 바뀌었다. 개발도상국의 산림남벌이 온실가스배출의 20%에 달한다는 의견을 개진하면서, 소마레와 아리아스는 우림을 보존하는 국가들이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유엔기후협상 내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40여 개국의 국제 동맹체인 우림국연합체(the Coalition for Rainforest Nations: CfRN)의 사무총장으로서 콘라드는 이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우림국연합체의 요구로 세계은행은 산림탄소협력시설을 설립했는데, 이곳은 산림남벌을 줄이기 위한 분석작업 및 능력개발 지원에 1억7200만 달러를 모금했다. 훨씬 최근에는 노르웨이가 산림남벌을 막기 위해 28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콘라드와 소마레, 아리아스에 의해 점화된 이 방안들은 우림보존 지원을 위해 기록적으로 최대의 금액을 동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콘라드의 발리 주장은 단순히 허세 행동이 아니라 강력한 현상에 대한 하나의 증거이다. 이는 기후변화 앞에서 더 큰 결단을 보여주는 것은 산업 대국보다는 개발도상국의 거대 집단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긴박감에 싸여 우림국연합체는 기후변화를 의미 있게 감축할 수 있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중요한 협력관계를 대표한다. 콘라드의 무장 요구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바와 같이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정확히 이런 종류의 지도력을 말하며, 그것은 우리가 어디서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다.
2. 아놀드 스왈제네거(Anold Schwarzenegger)
-by Michael Grunwald
18세기 사무엘 존슨의 설교하는 여자와 뒷발로 걸어가는 개와의 비교를 연상시키는 아놀드 스왈제네거의 21세기 녹색운동에는 의미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주목할 점은 그것이 잘 이루어지는가가 아니라 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리우드 액션배우로,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변신한 오스트리아의 보디빌더는 5대의 허머 지프차를 갖고, 또 과시적 소비에 과시적 즐거움을 누리는, 언제나 가망 없는 생태 열광자였다. 지구온난화와 싸우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와 그의 공화당, 그리고 자신이 귀화한 미국을 5년간 강력히 밀고나간 후에야 이것이 주지사가 매우 잘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부시 대통령이 첫 임기에는 기후변화 문제를 부정하고, 또 두 번째 임기에는 회피하면서 기후변화의 열외로 앉아 있는 동안에 스왈제네거는 국내 온실가스 감축을 밀고 나가고, 한편으로는 청정기술 협조를 격려하면서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유엔과의 협약에 서명했다. 그는 최초로 주(州)차원의 탄소 배출량 제한, 최초로 주차원의 녹색건물규칙 및 최초로 주차원의 연료효율기준을 제정했다. 부시는 스왈제네거가 제안한 배기관의 배출량 제한을 거부했으나 스왈제네거는 제소했고 그가 승소하게 되면 19개 주는 캘리포니아의 선례를 따를 것이다.
스왈제네거는 보디빌딩, 대작영화 그리고 본인 자신의 후원자로서 언제나 천재였다. 그는 지금 탄소 전쟁을 위한 범지구적 전도사로서 지구 지키기를 돕는데 여자 같은 남자일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그가 전통적 환경론자들을 마치 금욕주의자의 책망쯤으로 비웃는다. 이들 금욕주의자들은 우리로 하여금 뽀빠이 친구 차를 몰고 수도사처럼 살기를 원하니까. 그는 청정 환경의 미래와 번창하는 녹색기술을 전도하고 있다. 그것도 누구나 원할 만한 기즈모(역자 주: 종합적이고 자동화된) 기술로 하는 것이다. “죄의식으로는 되지 않는다”라고 지난해 그는 타임지에 말했다. 그는 바이오연료로 달리는 휴머 지프차 한 대를 뽑아냈고, 다른 한 대는 수소로 달리는 것이었다. 큰 집에 사는 것에 대하여 그는 미안해하지 않는다.
‘모두 가질 수 있다’는 식의 이러한 메시지는 언제나 그를 더 장기적인 녹색운동에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인은 집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하고, 전기차를 운행할 뿐만 아니라, 더 작은 집에서 살고,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불경스럽게도 더 적게 운전함으로써 그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사람들은 스왈제네거가 민주당이 주도하는 입법부와 함께 녹색 주(州)의 정치적 필요를 통하여 그의 녹색 색조를 획득했다고 불평한다. 그가 정치적 유명인이기 때문에 더 많은 언론을 조종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어떻다는 건가? 알 고어(Al Gore)가 녹색 삶을 위해 가장 힘 있는 미국의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면, 스왈제네거는 가장 힘 있는 공화당의 목소리를 낸다고 하겠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인으로 하여금 타이어를 부풀리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공화당 위원들이 비난했을 때 스왈제네거는 미국인들에게 바로 그렇게 하도록 권유하는 한 행사장에 나타나 있었다. 또 미국이 배출량 감축에 합의하기 전에 부시가 중국과 인도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려고 회의를 요청하자 스왈제네거는 대답하길, “충분한 회의,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선도해주길 기다리고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지도력은 행동을 의미한다”고 타임지에 말했다. 이 시대는 액션배우를 요구한다.
3. 세일라 왓 클라우티어(Sheila Watt-Cloutier)
-by Laura Blue
북 캐나다의 배핀 아일랜드(Baffin Island)에 한 국립공원이 있고, 이것의 이름은 아우잇투크(Auyuittuq)로서 이 지방의 이누 말로는 ‘결코 녹지 않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금년 여름 아우잇투크 국립공원의 영구 동토가 정말로 녹아버렸다. 또한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대홍수가 근처 촌락을 황폐시켰다. 폭우는 유난스럽게도 동토를 강바닥으로 휩쓸고 내려가 주민과 저장소 및 오물처리장을 연결하는 다리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결국 공원 직원은 통과하기에 너무 불안정한 부분을 폐쇄시켜야만 했다.
이누인 활동가인 세일라 왓 클라우티어에게는 이와 같은 사건은 기후변화의 진정한 대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극은 지구상의 어떤 다른 지역보다도 더 빠르게 더워지고 있으며, 또 변화들(예상하지 못하는 빙하 조건으로부터 동물 이동의 새 패턴에 이르기까지)로 인하여 주민들은 동요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해 이런 격변을 공론화하고 영향을 입은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왓-클라우티어만큼 많이 일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 퀘벡에서 이누 전통의 어린 시절을 보내고 교육계 경력을 쌓은 후 왓-클라우티어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1995년 이누주극회의(Inuit Circumpolar Conference: ICC) 국경지역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북극 수역에서 조성되어 왔던 일종의 독성 화학물질, 즉 지속성 유기 오염물질을 금지하는 유엔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ICC 회장으로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을 끊임없는 해왔다. 심지어는 배출량 감축에 실패함으로써 미국이 이누인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인권위원회에 청원했다.
오늘날 왓-클라우티어(54)는 한 가지 목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과 경제학, 그리고 기후변화의 기술 부문에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 부문에는 확실히 관여할 수 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열쇠는 문제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매혹적인 아우잇투크 국립공원이 녹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것이 어떻게 이누 족을 해치고 있으며 또 이누 족의 문화 동질성이 극심한 북극 산사태와의 상호작용에서 구속받고 있는지를 세상 사람들이 이해해 주기를 왓-클라우티어가 바라는 까닭이다. 그것은 그녀가 작업하고 있는 책의 중심에 있는 쟁점 사항이다. 즉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구로 인하여 이누 족의 수렵 생활방식을 불안하게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이누인의 전형인 인내, 용기 및 지혜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왓-클라우티어의 대담한 아이디어에는 머리를 돌려놓는 방법이 있고, 운이 좋으면 가슴도 돌려놓을 것이다.
4. 앨리스 워터스(Alice Waters)
-by Joel Stein
환경운동가들에게는 느리게 진행되어온 30년이었지만 앨리스 워터스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좌절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달라거나 바이오연료로 엔진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사람들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주기만 원할 뿐이었다. 또 그녀가 단지 지역의 유기농 음식이 굉장히 맛있다고 주장만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1971년에 그녀가 문을 연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 있는 레스토랑 ‘쉐파니즈(Chez Panisse)’에서 그녀는 그것을 매일 입증하고 있다. 그 식당은 매우 좋아 차림표조차 없었다. 제임스 비어드 재단은 워터스를 1992년 미국 최고의 요리사로 지명했고, 미식가들은 쉐파니즈를 2001년 미국 최고의 식당으로 지명했다. 사람들은 워터스가 그날 당장 시장에서 찾은 것을 먹고, 그것을 좋아한다. 정말로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한다.
간단히 준비한 신선하고 향토적인 재료로 구성되는 그녀의 요리 이론이 건강 연구와 농촌시장 살리기 운동의 덕분으로 이제 대세가 된 것에 대해 감동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농촌 시장에 가면 이러한 음식 철학을 훨씬 쉽게 포착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현실에 접해서 퇴비와,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를 알게 되면, 당신의 가족과 친구와 환경에 좋은 일상의 행동을 하는 데 힘을 얻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워터스의 식당과 요리책이 미국에서 향토음식운동의 효시로 평판을 얻는 동안에 그녀의 ‘식용 가능한 학교뒤뜰’ 프로젝트는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1994년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버클리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또 점심식사를 선택하는 데 도와주도록 격려하며, 또한 환경 인식뿐만 아니라 비만과의 싸움에서의 결과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지금 다른 도시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케네디가 신체적성을 학교에 적용시킨 때를 기억해보라”고 워터스는 말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네 번 운동을 해야 했고 또 모두가 그렇게 했다. 우리에게는 그런 열정이 필요하다. 공립학교에 가서 아이들이 먹는 음식의 결과가 어떤지에 대해서 가르치면 현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워터스(64)는 일반적으로 낙관적이며, 버락 오바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대통령이 음식, 영양 및 요리 일에 대해서 말해주었으면 하고, 또 나는 그렇게 되리라는 큰 희망을 갖고 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슬로우 푸드 운동’에 대해서 낙관적이다. 이 운동은 나라들이 함께 뭉쳐서 지속가능성과 영양, 그리고 맛을 위한 최고의 유산물이 될 만한 다양한 과일과 채소를 심도록 장려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워터스가 환경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5. 마리나 실바(Marina Silva)와
크리스티나 나르보나 루이즈(Cristina Narbona Ruiz)
-by Bryan Walsh
마리나 실바와 크리스티나 나르보나 루이즈를 말하자면 그들보다 더 이질적이고, 혹은 더 동질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바는 우림(雨林) 지역에서 가난하게 태어난 브라질 원주민이다. 그녀는 14살에 겨우 글을 읽을 줄 알았다. 나르보나 루이즈는 프랑코 시절의 압제로부터 망명한 스페인 언론인의 딸로 이태리에서 자랐다. 실바는 활동가 치코 멘데스와 함께 우림의 고무액 채취자 간에 무역동맹을 결성하여 젊은 시절의 경력을 쌓았다. 한편 나르보나 루이즈는 스페인 사회당 내에서 정치적 사다리를 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성장하여 각자 나라의 환경부 장관이 되자 자신들을 임명한 정부에 대하여 아주 곤혹스러울 정도로 열정을 갖고 거리낌 없이 말하곤 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실바는 무자비한 사업이해당사자들이 브라질의 생태계에 저지르는 피해손상을 보아왔다. 어린 아이로서 학교에 가는 대신 그녀는 10명의 남매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나무에서 고무액을 채취하며 숲 속에서 일했다. 불도저가 숲으로 와서 우림 지역과 브라질의 기타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땅을 개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황폐해진 것은 나무뿐만 아니라 우림에 의존하는 많은 브라질 사람들의 삶도 황폐해졌다. 멘데스와 함께 고무액 채취자 노조를 동원하여 민초(民草) 수준에서 산림남벌과 싸웠다. 그녀는 그 후 정치적 주류로 옮겨 1994년 최초 고무액 채취자 출신의 상원의원이 되었다. 인기 대통령 루이즈 이나치오 룰라 다 실바가 2002년 정권을 잡았을 때 실바는 환경장관으로 발탁될 것이 명백했다. 그러나 외부인이 입각했다.
나르보나 루이즈는 실제로 결코 외부인이 아니었다. 정치로 옮기기 전 그녀는 세빌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실바처럼 나르보나 루이즈도 대담하게 강력한 이해관계, 즉 그녀의 경우에는 지중해 연안의 여러 곳에 도로 포장 건설 산업에 뛰어들었다. 환경장관이 된 2004년 그녀는 스페인을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선도국으로 만드는 정책을 들고 밀고 나갔다. 그러나 나르보나 루이즈의 진정한 영웅적인 순간은 스페인 해안을 보다 자연스런 것으로 되돌려 놓고자 하는 시도로서 해안 건설공사를 제한하는 계획을 실행했을 때였다. 나르보나 루이즈는 환경보호자들의 칭송을 받았으나 강력한 사업 경쟁 상대자들을 얻었다. 2008년 새 사회당 내각이 구성되었을 때 자신이 일자리에서 빠져 있음을 알았다.
실바의 운명도 그와 비슷했다. 브라질 환경장관으로서 격렬했던 6년 후 그녀는 아마존 강을 어떤 비용을 치러서라도 개발하고 싶어 하는 산업계와 정치계 지도자들을 대항하여 질 것이 뻔한 싸움을 하면서 그해 5월에 항의 표시로 사직했다. 녹색주의자들은 안타까워했으나 환경을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도 상원에서 봉직하고 있다. 지금 OECD 스페인 대사인 나르보나 루이즈에게도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두 여성은 단기적인 정치 변덕의 희생자들이었지만 환경을 위한 더 장기적인 전쟁에서 끊임없는 용기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실바와 나르보나 루이즈는 더 달리 삶을 살 수는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역할, 즉 진용을 갖춘 지구 방어자로서 역할을 잘 감당해 왔다.
6.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
-by Oliver Morton
환경운동가들은 과거에 있었으나 현재는 없고, 또는 미래에 곧 있을 것이든 간에 과거에 초점을 맞춘다. 미래에 대한 불신, 즉 비록 전술적으로 기민할지라도 영적으로 죽어갈 수 있는 과정으로서 지나치는 일에 대한 의문이다. 상상력이 어떤 과거보다도 더 좋게 바랄 볼만한 미래를 제공하지 못하면 인생은 반감된다. 또한 아마도 문학적 이상세계의 최선두 실천가인 킴 스탠리 로빈슨을 아는 것이 그들을 향하여 가는 길이다.
로빈슨(56)은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지식인이며, 한 아이의 양육자이고 활동가요 과학 가치의 신봉자다(과학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녹색다운 힘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그는 역시 오늘날 과학소설을 쓰는 가장 뛰어나고 인기 있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환경 경고로 가득 찬 문장에서 로빈슨의 재능은 환경과 그것의 복잡성을 발생하는 모든 것의 초점으로 이용하는 시각이다. 이것은 단지 장엄한 무대 설치나 우화적인 덧입힘 이상의 것이다. 또한 그러한 시각은 충분한 의지만 있다면 일어날 수 있다고 낙관한다. 그는 이상세계의 창조를 그의 재능에 대한 기술적 도전으로 본다. 물론 그러한 세계는 설득력 있게, 또 재미있게 해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역시 그 세계를 상상 속에서 비어있는 하나의 생태적 틈새 공간으로도 본다. 다만 문화적 생물의 다양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라면 그는 그러한 틈새가 채워지기를 원한다.
그의 약진은 1990년대 발간된 세 권의 수상작 시리즈 소설, 즉 ‘적색 화성, 녹색 화성 그리고 청색 화성’이라는 책이었다. 그것은 풍부하고 인간다운 것으로 가공된 변모에 관한 복잡한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 이웃 행성의 역사를 개척 단계부터 전쟁과 혁명을 추적해나가고 있다. 훨씬 최근에는 더 빡빡한 궤도, 즉 워싱턴 환상도로에 얽힌 이야기를 써왔다. 거기에는 괴짜들과 과학계 관료들, 상원의 직원들이 기후 전쟁, 요구되지 않은 사랑, 육아 주선, 간혹 수수께끼 같은 호랑이들에 대처하려고 한다.
과학소설은 실제로 미래에 닥칠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일에 관한 것, 즉 오늘의 현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 건설될 미래에 현실을 투영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다. 당신은 이 ‘화성들’ 책을 지금 당장 이곳 지구에 적용하는 지구의 재형성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야기로 확실히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미래에 기다리고 있는 실제 화산, 바위, 얼음, 계곡, 그리고 실수로 거기다움에서 향기 나는 화산 분화구에 관한 이야기다. 구성은 그것이 화성처럼 고질적이든, 워싱턴의 록크리크 공원처럼 친숙하든 간에 로빈슨 작품의 한 근저이다. 그가 상상하는 변화를 처리하는 데 이용하는 사실주의는 진행 과정의 이야기를 확신적이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 데 중요하다.
또 다른 근저는 작업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떠한 작가도 당신이 보살피는 어떤 일에 매우 열심히 일하면서 만들어지는 기쁨의 콧노래를 그렇게 잘 포착할 순 없다. 그러한 경험의 교감은 그 자체가 위대한 창조적 기술의 성과다. 그러나 그 힘은 기술하는 데만 근거하는 권위 적인 감각에서 나온다.
로빈슨은 말하기를 이상세계는 일종의 역사이고, 또 이상세계의 경험은 그러한 역사를 만드는 경험이다. 즉 일하고, 믿고, 싸우고, 수용하며, 그리고 모든 일의 이전과 중간에 상상하는 것의 역사이다. 그는 그에게 의미하는 바를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보여준다.
7. 테드 노르드하우스와 미첼 셀렌버거
(Ted Nordhaus and Michael Shellenberger)
-by Bryan Walsh
여러분은 ‘환경결정론의 사망’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쉽게 벗어나길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 셀렌버거와 테드 노르드하우스가 2004년 역행의 길로 향하는 책을 발행했을 때 그들조차 주류 환경운동이 던지는 비방으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었다. 시에라클럽(역자 주: 가장 오래된 환경운동 단체의 하나로, 미국에서 금광개발로 서부의 산림지대가 훼손되자 이를 지키기 위해 1892년 미국 국내조직으로 설립한 비영리 단체)의 사무총장 칼 폽은 이 기사를 ‘싸구려 물건’이라고 불렀다. 한편 작가 빌 멕키번은 그들을 ‘환경결정론의 악당 소년들’이라고 표현했다. 환경운동의 싱크탱크를 운영해온 샌프랜시스코 만 지역 녹색운동의 두 전문가, 셀렌버거와 노르드하우스에게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이 도시에서 다시는 풍토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
그들은 놀라지 않았어야 했다. ‘환경운동의 사망’(그리고 ‘파격’이라는 후속 책)은 모든 언론과 자금 모집의 관심을 모으는 면에서 녹색운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인 기후변화에 실질적인 진전을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이 실패는 결정적으로 잘못된 개념에 기인했다. 지구온난화는 산성비나 규제, 이 경우에는 교토의정서와 같은 배출량총량 거래 계획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역 수질오염과 같은 환경적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규제에 의해서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상의 훨씬 더 규제적인 지구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모든 포괄적인 위협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보았던 거와 같이, 온실가스 배출에 제한을 가하고 기업이 탄소배출권을 사고팔고 하도록 허락하는 배출총량거래제(Cap and Trade)는 정치적 막다른 방법이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상당히 감소시키는 데 필요한 높은 탄소가격 같은 것을 수용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환경적 배신이지만 ‘파격’이 발간된 지 거의 1년 후 셀렌버거와 노르드하우스는 선견지명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미 상원이 배출총량거래법(6월 워너-리버만법)을 통과하기 위한 최초의 진정한 시도가 황당하게도 패배를 만났다. 높은 가솔린 가격이 미 대통령 선거의 결정적 이슈로 등장했고 해안바다 석유채굴에 대한 대중의 갑작스런 지지가 녹색주의자들을 수세로 몰아놓았다. 높은 에너지 가격이 장기적 기후변화를 피하는 공평한 단기 거래라는 개념을 수용하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적은 경제적 고통이 외관상으로 알 고어와 그 친구들의 업적을 취소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유럽(교토의정서 찬성 국가들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에서와 중국 및 인도(경제성장을 위축시키는 환경정책에 전혀 지지하지 않았다)에서의 이야기는 그렇게 다르다. 환경운동가들은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도록 했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지구온난화에 관하여 손에 쉽게 닿는 일을 기꺼이 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침울한 자료,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기사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셀렌버거와 노르드하우스는 낙관주의자다. 녹색운동의 실수는 기후변화를 우리의 생활양상, 우리의 에너지 사용, 우리의 경제에만 국한시켜 정의하려는 점이다. 대신 필요한 것은 "가능성의 정치"로 바꾸는 것이며, 그것은 화석연료에 대항해서 재생 가능한 것을 자체의 장점을 살려 이용하도록 하는 에너지 기술에 정부의 모험적인 투자로 키워나가야 한다. 그것은 흙탕물로 들어가는 세계 경제와 힘 드는 싸움이 될 것이나 적어도 셀렌버거와 노르드하우스는 녹색 꿈에 빠지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에 강한 현실적 긴장을 주입해 왔다.
8. 하비바 사라비(Habiba Sarabi)
-by Aryan Baker
하비바 사라비는 말 박차와 보안관 배지를 달고 다녀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가장 작은주 중의 하나인 바미얀의 작은 주지사는 법률을 펼쳐놓고 있다. 환경법, 그것이다.
문제투성인 아프가니스탄은 분명히 환경 역할모델은 아니다. 수년간의 전쟁으로 땅과 수로는 오염으로 얼룩져 왔다. 산림은 땔감으로 깎였다. 지뢰가 동물들의 이동로에 산재해 있고, 점검받지 않는 도시화는 부족한 자원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손상을 방지하기로 결심하고 사라비는 바미얀을 아프가니스탄의 환경 실천의 상징으로 돌려놓는 전쟁에 착수했다. 그녀는 그 길을 선도하면서 국가 변화를 위하여 이런 희망을 갖는다. “나는 우리 국민의 미래를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것이 왜 중요한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나, 만약 환경과 우리의 자연자원을 보존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위한 풍요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시작 단계로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최초 국립공원을 설립하고 있다. 570km2의 면적은 6개의 현란한 색조의 호수로 된 아름다운 연속성과 외경심을 일으키는 장엄함으로 유명한 그랜드 캐니언과 겨룰 만한 자연적으로 조각된 석회석 성곽을 아우르고 있다. 아는 바와 같이 반디 아미르는 전쟁 중에는 대체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상당한 평화가 이 지역에 지속되고 있어서 이곳은 다시 한 번 지역 관광객들을 위한 좋은 주말 목적지가 되고 있다. 지역 관광객들은 이곳을 죽기까지 사랑하겠다고 한다.
사라비는 발을 들여 놓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소풍객들이 취약한 제방에 차를 주차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녀는 배의 요동과 연료유가 수례한 지형을 이루는 수정 같은 호수의 발전을 방해할 것이 염려되어 호수의 한쪽에서 다른 쪽까지 관광객을 수송하는 인기 많은 동력선 서비스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논쟁거리 많게도 그녀는 연안에 즐비한, 무너질 것 같은 식당과 상점들을 헐어버렸다. 그것들은 눈꼴사나운 것이었으나, 더 불쾌한 점은 가게 주인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또 호수에서 그릇을 씻는다는 사실이었다. “정상적이라면 당신은 사람들의 생계수단을 허물기 전에 대체상점을 짓도록 허용했을 것이다.”라고 공원 만들기에 사라비와 협조해 온 야생동물보존회의 농촌 감독인 피터 스몰우드는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일을 했다.
요즘은 그 일을 혼자 할 필요는 없다. 사라비는 지역 사회로 하여금 그녀의 환경운동에 참여하라고 격려해 왔다. 즉 지금은 정책에 대하여 함께 결정하고 교육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마을 대표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 그냥 앉아 있기만 한다. 처음 그녀의 발안을 거부했던 지역 사업 측은 또한 하나의 소명을 갖게 되었다. 단지 문제는 관광객이라고 공원 감시원 압둘 와하브는 불평한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를 정한 곳에 버리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방문객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잘 모른다고 화낼 수는 없다”고 하면서.
그런 것 때문에 사라비가 멈출 사람은 아니다. 2007년 6월 신축한 방문센터의 개원을 축하하는 축하연의 종반에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국군 부대를 포함한 참가자들이 빈 물병과 음식 포장을 남기고 유유히 가버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라비는 군인들을 도로 불러 쓰레기 버리는 데 대해서 강의를 했다. “그들의 행동은 부끄러운 일이며, 그리고 나라를 깨끗이 하는 것도 국가 봉사의 일부라고 나는 말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당신은 그들의 뒷굽 소리가 찰랑찰랑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9. 바라트 자그데오(Bharrat Jagdeo)
-by Tim Padgett
가이아나(Guyana) 대통령은 값을 치를 수 없는 자원, 대부분 손대지 않은 1,600만ha의 우림을 보유하고 있는 가난한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벌목 회사는 나무를 잘라내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경제학자이며 전 재무부장관인 자그데오는 더 나은 사업 제안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찾고 있다. 그는 우림을 손대지 않은 채로 둠으로써 얻게 되는, 더 많이 손에 쥘 수 있는 혜택을 위해 국제 후원자들과 투자자들이 지불해 주기를 원한다. “만약 우리가 지구온난화와 그 결과에 대해 진지하다면 시장은 모든 온실가스 배출원을 공표해야 한다”라고 자그데오는 말한다.
산림남벌은 인간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천이다. 가이아나 영토의 75%를 차지하고 지속가능한 상품으로서의 우림 전부를 제공하겠다고 그가 작년에 선포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그 제안은 공적 및 사적 기관이 손상되지 않은 우림을 관리하는 권한에 대해 가이아나에게 지불하고, 한 편 우림에서 생기는 이익을 취득하는 것이다. 기관들은 탄소채권을 시장에서 팔 수 있고 생태관광이나 의약품 개발로 돈을 벌 수 있으며, 결국 강우 생산과 기후 규정과 같은 ‘생태계 서비스'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자그데오는 금년에 그의 첫 고객을 찾았다는데, 이때 런던에 본거지를 둔 생태 금융회사인 캐노피 캐피탈 사가 이워크라마(Iwokrama) 지역 37만ha의 우림 보존을 유지하기로 서명했다. 연구가 제시해주는 바는 그러한 모험사업이 남미의 가장 가난한 나라 가이아나로 하여금 연간 6,000만 달러, 또는 국가 GDP의 6%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이아나의 계획은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몇몇 비판자들은 빈곤 국가들이 시장의 보상 없이 벌목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제안은 생태 협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제 우리는 다시 가고, 다른 개발도상국은 무상으로 주는 물건을 찾는다'라고 말한다”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거래할 만한 것을 얻었다”라고 자그데오는 말한다. 그는 또 “교토의정서 같은 환경협약은 벌목 감축 국가에게는 보상하지만 가이아나가 했던 것처럼 좋은 우림 보존자로 있는 것에 대한 보상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개념은 배당금이 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과 같이 이해될 것이라고 자그데오는 확신하고 있다. 가이아나는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해안의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는 지대 낮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늘어져 있는 360km의 제방을 높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지구온난화는 손대지 않은 우림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 지불하는 것이 후에 더 큰 비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10. 장 프랑수아와 장 찰스 드코(Jean Francois and Charles Decaux)
-by Peter Gumbel
지난해 파리를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증명할 수 있듯이 파리는 는 놀랍고도 새로운 우량품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적은 요금으로 빌릴 수 있고, 또 시내 주위에 있는 고급자전거 보관소에 마음대로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수천 대의 회색 자전거이다. 벨리브의 셀프서비스 계획은 2007년 7월 출범 이후 3,000만 건 이상의 대여를 하여 대성황의 성공을 거뒀다. 결과적으로 자전거는 프랑스 수도에서 공공교통의 주축이요 진한 녹색운동의 한 형태가 되었다. “그것은 매우 생태적이다. 또한 그것들은 탄소배출도 하지 않고 사람의 힘으로 추진한다”라고 벨리브를 창설한 가족운영의 옥외광고회사인 JC드코 사의 공동 CEO 장 찰스 드코는 언급한다.
장 찰스(39)와 공동 CEO인 그의 형 장 프랑수아(49)는 자전거를, 그들의 아버지가 창설하여 연간매출 30억 달러를 올리고 있는 회사의 중요한 사업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 회사는 2008년 말까지 49개 도시(대부분 유럽)에서 벨리브와 같은 계획을 설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견학하기 위해 지금 시카고로부터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시 당국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장 찰스 드코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표현하지만 모든 공로를 새치기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이것은 시대에 맞는 하나의 제안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르게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 계획은 회사가 2003년 비엔나에 출시하기 전 고안하고 완성하는 데에 4년이 걸렸다. 형제들은 신용카드 정보를 이용하고, 각 자전거마다 대여 및 반납의 위치와 사용 시간, 그리고 사용자를 추적하는 정교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들은 또한 작동하는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 즉 JC드코 사는 파리 주위의 주요 위치에 옥외 광고를 판매하기 위해 전속계약으로 자전거를 대신 제공한다. 프랑스의 어떤 환경운동가들은 그러한 사업 양상을 비난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납세자들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몇몇 자동차 운전자들은 새로운 자전거 길과 도로 안팎으로 드나드는 자전거 이용자들에 대해 불평하는 동안, 파리 시민들은 자전거 페달 밟기를 찬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20만 명 이상이 단지 40달러 소요되는 연회원에 가입했다. 2008년 5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벨리브 이용자의 94%가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훌륭한 조율을 위해서 형제들이 아직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날씨이다. “추위는 자전거의 적이 아니다. 비가 문제다”라고 드코는 말한다. 때때로 비에 흠뻑 적는 것은 아직도 파리의 두 바퀴 통근자들이 자신과 환경을 위해 현재 공헌하고 있는 좋은 일에 대한 작은 대가이다.
11. 믹 브레만스(Mick Bremans)
-by Leo Cendrowicz
비누는 청결하지 않은 사업이다. 그것을 생산하는 데는 너절한 화학물질과 동력에 굶주린 기계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처리해야 하는 부산물이 있고 비누를 포장해야 할 팬시 포장 재료도 있다. 또 비누를 사용할 때마다 급수에 많은 화합물을 첨가한다. 자연 식물과 광물질로써 내수 세척제를 생산하는 벨기에 회사 에코버(Ecover)의 사장 믹 브레만스를 떠올려 보자. 세척가루, 액체비누, 세척제 등의 에코 제품군은 인과 염소가 들어있지 않은 제품이고 또 재활용 폴리에틸렌 병에 담겨져 나온다. 회사는 건강식품 가게에 병 재충전소를 설치하였고 소비자들은 가끔 10년 이상 사용해 온 병을 되돌려 보내곤 한다.
에코버 社의 녹색 신용은 사업 성공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 회사는 대형 브랜드에 올라섰고, 또 독자적으로, 작지만 건강한 틈새시장을 만들어내어 지난해 9,300만 달러 매출을 일구어냈으며 약 1,500만 달러의 세전 이익으로 돌려놓았다. 전통시장에 돈을 많이 쓰지 않고 주로 구전에 의존했다.
환경 친화적인 접근은 두 번째라고 브레만스는 주장한다. 그러나 에코버에게 최우선적인 것은 사업이다. “우리 제품은 해내야 한다. 만약 사업체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확실히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환경적인 책임에 주목하고,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지속가능하게 행동하도록 애쓴다. 그것은 경제적, 생태적, 그리고 사회적 행동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의미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1980년 한 실직 비누 판매원이 뜰 안 창고에 세운 에코버 社는 인(燐)이 호수나 강에 입힌 충격으로 인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에 인이 없는 최초의 제품을 출시했다. “우리는 단지 깨끗하게 하는 생태적인 제품을 만들기를 원했다”라고 하면서 “지금 우리는 녹색이 되게 하는 세척제를 만든다”라고 1993년 이후 회사를 운영해 온 브레만스는 말한다.
에코버 사는 브레만스가 소위 말하는 세계 최초의 ‘생태 공장’이라고 하는 말리(Malle) 시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건물은 오물을 재생하고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지붕에 관목이나 풀을 심으며 중앙난방이나 냉방 장치도 없다. 브레만스는 또한 일부의 방향물질을 집 근처에서 조달함으로써 수송거리를 줄였다. 그 결과 낮은 비용과 적은 탄소배출을 보였다.
그의 회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판자들 중에는 에코버 사의 세제가 다른 경쟁사의 제품만큼 강력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부분적인 이유는 브레만스가 자신의 제품이 대부분의 다른 제품보다 잘 듣는다고 주장하면서, 직물에 첨가하면 순백의 인상을 주지만 생물분해에 수년이 걸리는 형광발광제의 사용을 피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에코버 사는 또한 동물 검사 마감일을 거부한 후 베건 협회(역자 주: Vegan Society 완전 채식주의자 협회)의 로고를 떼어버려야만 했다. 몇 번의 알레르기 검사를 위한 대안으로 자신의 혈액을 제공하겠다는 브레만스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었다. 아직도 회사는 책임과 영리를 조화시키는 강력한 본보기를 확립했다. “에코 사는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선택을 제공하고, 그 선택은 더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으로 향한 작은 걸음을 걷는 것이다”라고 브레만스는 말한다.
12. 존 도엘(John Doerr)
-by Fred Krupp
존 도엘은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파괴적 혁신’을 발견하고 각각 유년기에 놓여 있던 아마존 닷컴과 구글과 같은 스타회사에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아이디어를 발전건물 회사에 응용함으로써, 또 매우 위험성이 높아 십중팔구 실패가능성을 무릅씀으로써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벤처 자본가가 되었다.
지금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재앙을 막는 데에 비전을 두었다. 우리가 물러서기보다는 혁신과 기업정신을 무장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고 처음으로 우리 모두를 설득시킨 사람은 바로 도엘이었다. 우리는 ‘21세기 최대의 경제적 기회의 초기’에 놓여 있다. 도엘의 회사,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느 앤 바이어스(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 KPCB)’는 수억 달러를 녹색 기술 창업에 퍼부었다. 그의 투자일람표는 태양열로 운전하는 발전소를 개발하는 회사도 있고, 한편으로는 타르 종이처럼 지붕에 펼치는 값싼 태양전지를 대량생산하는 회사도 있다. 그는 고성능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에, 또 비식용 식물 재료에서 셀룰로오스 에탄올을 만들어내는 생물학자에, 그리고 사탕을 발효시켜 기름에서 얻는 것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연료로 만들기 위해 효모를 개량한 버클리 팀에 베팅했다.
그들 모든 약속을 위해 도엘은 이 과학적 혁신자들이 아마존과 구글이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새로운 회사들의 활동 무대는 허상이 아니라 실상이다. 즉 정류소와 발전소, 송전 회랑, 자동차 생산라인의 콘크리트와 철제물의 세계라는 것이다. KPCB 사는 더 많은 돈과 장기계약, 그리고 규칙적 도전에 대한 새로운 수준의 관심을 갖고 강화해 나갔다. “적절한 일을 해서 이익을 내는 법률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 “녹색화하는 것이 녹색화하지 않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적게 소요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탄소배출 총량제(cap on carbon)로 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입법자들에게 말해 왔다. 도엘은 배출량 거래제도를 주창하고, 그래서 오염 감축을 위해 가장 값싼 방법을 찾는 사람은 이 감축량을 판매할 수 있다. “우리는 정부의 엄격한 조치가 이것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단지 이들의 활동무대를 편편하게 해주고 시장이 작동하도록 길을 비켜주길 원할 뿐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해 도엘은 그의 계약을 배가했다. 그는 알 고어를 협력자로 자신의 회사로 데려왔고, 또 지속가능한 기술에 초점을 둔 공공회사에 10억 달러 자금을 투자한 고어의 ‘제너레이션 인베스트먼트 매니즈먼트Generation Investment Management)’ 社의 이사회에 참여했다. 그의 녹색기술팀은 지금 32명의 KPCB 협력자를 포함하고 있다.
도엘은 현재 그가 갖고 있는 문제의 모든 돈으로 자신의 회사에 특별히 유리하도록 법률을 만들게 압박할 수 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는 순수하게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위험한 베팅을 기꺼이 해왔지만 그래도 이 억만장자가 하고 싶지 않은 위험이 하나 있다. 딸 메리가 그녀의 세대로 향해 돌진해오는 재앙을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가를 말하면서 아버지가 무언가 해줘야만 한다고 강권했던 그날 밤 식사 시간에 대하여 그는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행동을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한다. “당신의 아들딸들을 맡길 유일한 지구에서 통제할 수 없는 실험을 하기 원하는가?”
13. 피터 헤드(Peter Head)
-by Adam Smith
금년, 역사상 처음으로 시골 지역보다 도시 내외에 더 많은 인구가 살게 된다. 균형 면을 볼 때 이 변화는 환영할 만하다. 즉 도시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더 많은 길을 제공해주고, 또 세계 경제의 엔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에 굶주린 자동차와 사무실, 집들로 가득 찬, 무질서하게 뻗쳐있는 도시들은 또한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 깔끔하고 환경 친화적인 도시 성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제를 피터 헤드보다 더 명확히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나 베이징의 ‘새의 둥지’(역자 주: 베이징의 올림픽 그린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철제 구조물. 4억2300만 달러 소요. 스위스 건축회사 디자인. 2003년 4월 설계 2008년 6월 개방)와 같은 상징적 구조물과 관련한 일을 해 온 영국의 엔지니어링 회사 아럽(Arup)의 중역이다. 헤드(61)는 회사의 기획과 종합도시계획 사업을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서 모든 지역사회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원칙을 포용하더라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다 잘 작동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헤드의 업무는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에서보다 더 중요한 곳은 없다. 약 1,800만 중국인이 매년 도시로 향하여 시골 생활을 떠나고 있다. 그래서 헤드와 같은 혁신자들이 지각변동적인 환경 충격을 감소시키도록 도울 수 있다. 이 영국 엔지니어는 맨하튼의 2/3 크기에 해당하는 상하이 부근 한 농촌 지역인 동탄(Dongtan)에 생태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지휘하고 있다. 동탄의 건물과 버스, 자동차는 재생에너지로 운영된다. 도시의 난방 및 발전소는 방앗간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도시 폐기물 의 거의 모두를 재생하여 다시 사용하고, 한편 동탄의 농장에서는 유기 식품을 공급할 것이다. 또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인도와 자전거길로 학교에서 병원에 이르는 등의 주요 목적지들은 거리를 줄이도록 지혜롭게 간격을 조정한다. 첫 단계가 완성될 계획인 2010년에는 5,000명의 인구가 이 시에 정착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2050년에는 그 수가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관리들은 희망한다.
이 계획에서 얻은 노하우는 헤드 팀이 인구 40만 명의 도시를 건설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베이징 근처의 완주앙(Wanzhuang)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 팀의 제안이 중국 전역으로 정착해 나가길 바란다. ‘동탄지속가능성 연구소(Institute of Sustainability in Dongtan)’는 지식과 업적이 빨리 전파될 수 있도록 사업체 및 정부 지도자들에게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교육할 것이라고 헤드는 말한다.
아룹(Arup) 사의 중국 계획에 열광한 나머지 런던 당국은 헤드에게 수도의 최대 규모의 제로탄소 주택개발을 위한 설계도를 초안하도록 위임했다. 회사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프로젝트에 관하여 작업하고 있다. “일상에서 그렇게 빨리 변하는 일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기회는 많지 않다. 산업혁명 중에 그랬어야만 했다”라고 헤드는 말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아마 변화가 지구에 더 친절하게 다가설 것이다.
14. 페기 류(Peggy Liu)
-by Bill Powell
3년 전 페기 류는 전형적인 과잉파일보관을 하는 MIT 졸업생이었다. 컨설팅 회사 멕킨시를 그만둔 후 남편과 함께 벤처자본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어느 날 류는 한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여 MIT 신임총장 수잔 헉필드(Susan Hockfield)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헉필드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즉 중국이 에너지 사용과 증가하는 환경 문제를 붙잡지 못하고, 또 선진국이 그런 노력을 돕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환경적 상처의 세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헉필드가 옳다는 것을 확신하고 류는 2007년 봄 MIT가 후원하는 지구온난화협의회를 조직하도록 도왔다. 부분적으로 그녀의 롤로덱스(역자 주: 명함정리기) 덕분에 미국과 중국 양국의 대량발전업체와 정부 기관이 함께하게 되었다. 그러한 논의를 형성하면서 류는 큰 문제를 위한 실질적인 해결에 초점을 둔 NGO 단체인 ‘미중 청정에너지 협력(JUCCCE: Joint U.S.-China Cooperation on Clean Energy)’을 창설했다. 류의 사업 배경은 그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관계하는 상대가 시장이든 부동산개발업체든 그들 모두가 반응하는 한 가지는 숫자이고, 무엇보다도 녹색으로 감으로써 녹색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계획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류의 중요한 임무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녹색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서구 기업체를 데리고 와서, 예컨대 베이징의 정책입안자뿐만 아니라 그녀가 알기로는 집행자, 즉 ‘실제로 일을 하는’ 선수들과 얼굴을 맞대는 것이다. 그녀의 최초 영입자의 한 사람은 롭 왓슨이었다. 그는 미국 및 기타 지역의 건물에 대하여 환경 등급 제도를 확립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다. 중국은 2030년까지 약 5만 개의 신축 고층건물이 추가될 것으로 예상되어 에너지 보존 잠재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개발자들 중에서는 건물을 에너지 효율화하는 데에 더 많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많다. 왓슨의 기준을 만족하는 개발 중의 건물 수는 지난해에 상당히 증가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페기와 JUCCCE(Joint U.S.-China Cooperation on Clean Energy)는 개발자들과 지방 관리들이 녹색 프로젝트를 쳐다보도록 하는 말을 퍼뜨리는 것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시험 프로젝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10년간 여기에 있으면서 어떤 일을 해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기록을 갖고 싶어 한다”고 류는 말한다.
15. 사이 아가시(Shai Agassi)
-by Tim McGirk
사이 아가시는 많은 판매원들이 그렇듯 일부는 과학자, 일부는 환상가다. 그는 또 큰 것을 생각한다. 2011년이 되면, 이 이스라엘 태생 기업가는 국도에 5,000대의 전기차를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5년이 되면 더 이상 가솔린차는 이스라엘에서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그는 말한다. 야간에 운전자가 차에 플러그를 꽂아 값싼 전기로 재충전하고, 일터에서 주차하는 동안에 배터리에 가득히 충전하며, 그리하여 해변 나들이를 위해 충분한 전기를 남겨서 집으로 운전해 가는 것을 그는 상상해 본다. 전기자동차 주행거리 190km를 넘는 여행길을 위해 고갈된 배터리를 무료로 교환해주는 충전소가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 아가시가 갖고 있는 모두는 아주 뻔뻔스럽긴 하지만, 르노와 공동 연구로 만든 원조 전기자동차의 장착과, 또 선진적인 계획이다. 조용하고, 스포츠맨다우며, 침착한 아가시(40)는 그의 자동차 같기도 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의 사명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를 시작하면서 자동차를 시동하여 정확히 8초 만에 0에서 60km의 속력을 낸다. “우리는 냉방차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석유 의존을 종식하려고 노력한다”라고 아가시는 말한다.
몇 년 전 그의 연설이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의 주목을 받았다. 후에 대통령은 그를 불러 말하기를, “당신은 매우 훌륭하게 연설했다. 그것을 현실화시켜야 한다”라고 했다. 기회가 왔지만 당시 소프트웨어 거인 SAP의 신동이었던 아가시는 고위직 승진에서 제외되었다. 그는 회사를 그만 두고 2007년 5월 전기자동차 초기 업체인 '더좋은장소계획(Project Better Place)' 사를 출범시켰다. 연고와 명성 덕분에 회사는 르노의 후원과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전기자동차 구매자에 대한 감세 혜택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는 또한 벤처자본 회사인 모건 스탠리 사와 이스라엘의 최대 정유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인 이단 오퍼(Idan Ofer)로부터 2억 달러의 자금지원을 확보했다. 만약 아가시의 계획이 이스라엘에서 효과가 난다면 미국과 중국 도시와 같은 타 시장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아가시는 이스라엘을 전기자동차 네트워크를 위한 완전한 시험무대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적당한 크기의 나라이고(150개의 충전소라면 이 나라를 커버할 것이다), 국경이 폐쇄되어 있으며, 또 추가적으로 유리한 점들도 있다. 즉 세계 상위 석유 생산국 중 몇몇은 이스라엘에 비우호적이다. 아가시의 혁신적인 것 중 하나는 사용자가 자동차나 배터리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소비하는 전기에 대해서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휴대폰 회사가 소비자의 통화량에서 이익을 얻는 것과 같다. 현시가로 전기자동차는 가솔린엔진보다도 운행하는 데 20% 더 저렴하고, 또 탄소 배출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아가시는 말한다. “우리 환경운동가들은 한 가지 실수를 했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녹색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지불하라고 하면서, 한편 더 적게 지불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만약 그가 실수를 떨쳐버린다면 이스라엘은 가스를 벌컥벌컥 먹어재끼는 자동차를 모두 내버리는 최초의 국가가 될지 모른다.
16. 애니 레오나르드(Annie Leonard)
-by Bryony Schwan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온 저녁을 보내고 완전히 최면에 걸릴 수 있다고 말할 때에 나의 친구들은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애니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쓰고 버리는 문화의 모순을 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수십 년 동안 쉴 새 없이 이야기해 왔다. 세세한 것에 대한 그녀의 정통함이 인상적인가 하면, 황량한 사실을 사람이 행동하도록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 그녀의 열정적인 스타일이다.
진정한 차이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야기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는 것을 레오나르드는 알았다. 그래서 2007년 ‘재화의 이야기(The Story of Stuff)’라고 하는 전염성이 강한 온라인 영화를 통해 그것을 전파했다. 6개월 만에 전 세계 30만 명 이상이 이 영화를 보았다. 재화의 이야기는 모든 물질이 어디에서 오고, 그것을 만드는 데 무슨 자원을 사용하고, 생산 중에 어떤 생물이 영향을 받으며, 그리고 그것을 버렸을 때 어디로 가는지를 효과적으로, 또는 종종 익살스럽게 설명해준다. 이 모두가 아주 친근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의 심각한 어리석음을 우리가 보도록 도와주는 것은 레오나르드의 통렬한 질문과 흥미 유발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레오나르드는 지난 20년을 보내면서 ‘전세계반소각연맹(Global Anti-Incinerator Alliance)’과 ‘위험없는 건강관리(Health Care Without Harm)’, ‘국제그린피스(Greenpeace International)’ 및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위한 후원자 작업그룹(Funders Workgroup for Sustainable Production and Consumption)과 같은 조직체와 일하는 중에 환경적 건강과 정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켜 왔다. 그것은 제조업자들이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건설하는 데 다같이 임무를 지도록 하고 있다. 그녀는 간헐적인 소비자운동의 환경적 영향과 소비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충을 살피기 위해 30개 국 이상을 여행하면서 거의 반생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불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셀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바로 레오나르드가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이 귀담아듣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17. 왕 용첸(Wang Yongchen)
-by Austin Ramzy
‘
수십 년 동안 광범위한 오염을 견딘 후 중국 시민들은 환경을 위해 일어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주민들은 화학공장의 건설을 막았던 샤먼(厦门) 해안 도시에서 시작하여, 지방정부가 저항을 받은 후 최근 대단위 쓰레기 투기장을 치우겠다고 약속한 수도 베이징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은 중국의 유독성 공기와 물의 문제로 산업계 및 정부와 더 많이 대결하려고 한다. 국가들이 더 부유해짐에 따라 사람들이 지구에 대하여 걱정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말하다간 보복을 당할 수 있는 중국에서는 그것이 왕 용첸이 용기와 끈기를 갖는 데 도움이 된다.
1996년 중국 국립라디오방송의 언론인인 왕은 중국 최초의 NGO 단체의 하나인 ‘녹색지구자원봉사단(綠家園志愿者: Green Earth Volunteers)’을 공동 창설했다. 이 그룹의 초기 프로젝트인 나무심기와 조류 지키기는 자연 유산에 관하여 사람들을, 특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환경보호와 경제계획은 장기적인 국가 정책이다. 그러나 경제계획이 실제로 잘 운영되는 반면에 환경보호는 단지 공허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내가 느끼기로는, 우리가 진실로 환경보호를 하고 싶어 한다면 환경을 배워야 한다”라고 왕은 말한다. 그 이후 5만 명의 사람이 환경 수업과 야생지역 여행과 같은 ‘녹색 지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이들이 자라서 수장(首長)이 되어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를 비교 평가해야 할 때 그들은 자연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보다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라고 왕은 말한다.
왕은 지금 정책에 영향을 주기위해 방향전환을 했다. 누 강(Nu River)을 따라 13개의 댐을 건설하는 계획은 2004년 왕과 그의 동료 활동가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후 원자바오(Wen Jiabao) 수상이 연기시켰다.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왕은 중국의 녹색운동을 더 효과적으로 하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녀는 매월 기자 모임을 결성하여 문제를 고취시키고, 또한 중국 국내법으로 더 나은 환경 및 공개열람 법을 추진하고 있다. “때로는 그 일이 매우 외롭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환경을 지지하지만 환경에 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들의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은 바로 왕이 확실한 증거다.
18. 기돈 브롬버그(Gidon Bromberg),
나데르 알 카티브(Nader Al-Khateev)
문게스 메야르(Mungeth Mehyar)
-by Andrew Lee Butters
성지는 말라 죽어가고 있다. 이스라엘,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지역은 한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으나 이 나라들의 취약하고 반쯤 사막화된 생태계는 60년간의 과잉개발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더구나 전쟁과 점령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요르단 강은 걸러지지 않은 오물로 가득 차있다. 갈릴리 바다는 기록적으로 최저 수면에 놓여 있고 사해는 말라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싸움이 격렬한 지역의 하나로서 역시 최악의 취급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 중동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 Middle East: FoEME)'은 그러한 비참한 처지를 기회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 요르단 및 팔레스타인의 합동 환경 조직이 1994년 시작되어 환경 문제를 평화 진행의 의제로 두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2000년 두 번째의 인티파데(역자 주: intifadeh, 반이스라엘 소요)의 출현으로 평화협상이 붕괴한 후 FoEME는 본부의 전략을 바꾸어 환경운동을 이용하여 평화를 촉진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 협력이 거의 없던 때에 FoEME는 요르단 강 계곡에 있는 아랍과 이스라엘 공동체 간에 협력정신을 쌓아서 물 보존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한편 오염과 과잉양수, 기타 폐수에 대하여 정부들로 하여금 행동을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좋은물이웃(Good Water Neighbors)'과 같은 FoEME 프로젝트들은 지방 지도자들을 격려하여 전선 너머로 나아가서 처음으로 상대방 의 지역 정치인과 접촉했다. 그것은 보다 광범위한 평화 목표에 도움이 되는 신뢰와 존경의 분위기로 향하는 하나의 단계였다.
FoEME는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 및 요르단인에게 그들 국가의 운명이 피할 수 없도록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환경운동이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만약 자체의 물 시스템을 개발할 방법을 협의하지 못하면 미래의 어떤 팔레스타인 국가도 탄생과 더불어 죽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이스라엘이 ‘사막에 꽃을 피우기 위해’ 옛날의 시온주의자 사상을 이행하고 싶다면 그들은 전 지역 사람들이 메마르고 취약한 생태계에서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요르단으로서는 단지 서서 요르단 계곡의 부족한 급수를 보다 합리적으로 분배함으로써 이익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동일한 환경, 특히 동일한 수자원을 나눈다”라고 하면서,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환경을 누리지 못한다”라고 브롬버거는 말한다.
이러한 상호의존을 강화하기 위해 FoEME와 예일대 건축가들은 ‘요르단강 평화공원’ 계획을 개발했다. 앞으로 수년 내에 그들은 강 가운데의 한 섬에 요르단과 이스라엘인이 여권이나 비자 없이 만날 수 있는 생태학적으로 보호되는 구역을 만들려고 한다.(불행하게도 이스라엘에 의한 여행 제한으로 팔레스타인인은 그기에 가지 못한다) FoEME는 그러한 생태관광 프로젝트가 시골 지역의 농업과 같은 물을 목말라 하는 산업을 대체해 주리라고 희망한다. 제안된 공원은 국가들이 가능한 한 많은 물을 획득하고자 다툰다는 불신과 싸우는 데에 실제적인 방법이 될는지도 모른다. “전쟁은 물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평화는 만들 수 있다”라고 FoEME의 팔레스타인 임원인 나더 알카티브(Nader Al-Khateeb)는 말한다..
19. 잭 심(Jack Sim)
-by Hannah Beech
잭 심은 고물(역자 주:poop 배 뒤쪽, 여기서는 사람의 뒷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실, 이 싱가포르인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얼마나 되는지 누구든 생각해보기를 원한다. “나는 사람들이 하루에 몇 번이나 먹는지 물어본다. 모두들 알고 있다”라고 ‘세계화장실기구(World Toilet Organization)’(WTO가 중요한 조직인지 아직도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의 창설자는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화장실에 얼마나 자주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은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하다. 그러나 화장실을 둘러싼 유쾌하지 못한 선입견이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라고 그는 말한다.
적절한 위생시설의 부족은 개발도상국의 가장 긴급한 문제 중의 하나다. 약 26억 인구가 화장실을 접하지 못하고 있으며, 배설물로 인하여 오염되는 지하수는 주요 살인자이다. 매년 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종종 빈약한 위생시설로 인하여 야기되는 수인성 설사병으로 죽는다. 그러나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화장실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은 황당한 요소 때문에 어렵다. 은퇴한 건설ㆍ부동산 기업가인 심(Sim)은 2001년 비영리 WTO를 창설하여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화장실을 신분의 상징으로 홍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충분한 돈을 모으자마자 휴대폰을 산다고 지적하면서, “마치 다른 사람들이 루비 통 가방을 갖고자 열망하듯이 나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갖고자 열망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한다.
여러분의 뒤를 따뜻하게 해주고 불쾌한 소음을 클래식 음악으로 막아주는 환상적인 일본 변기에 대해서 심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10달러 정도의 적은 비용이 들고, 기본적이며 환경적으로 건전한 변소이다. 그러나 심은 가난한 마을에 화장실을 단지 선물로 주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하면서, 적절한 교육이 없으면 그 화장실은 종종 사용되지 않은 채로 버려둔다든지, 혹은 화장실 건물을 임시변통의 창고나 도살장으로 개조하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대신에 심(Sim)은 현재 50개국에서 133개의 회원 조직을 자랑하는 WTO를 통해 화장실 제조업체와 비료업체 간에 협력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이 배출한 쓰레기는 자연 작물의 성장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오물을 바이오가스로 바꾸어 취사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신기술을 권유하고 있다. 이 두 가지(비료와 바이오가스)는 지구온난화 시대에 있어서 훌륭한 아이디어이며 비료가격이 치솟을 때 좋은 사업적 의미를 갖는다. 대체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화장실에 투자하는 매 달러당 소득은 그것의 9배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화장실에 대한 심의 야심은 비위생적인 대량 쓰레기 처리를 돕는 일에 국한하지 않는다. 2005년 그는 싱가포르 정부를 설득하여 여자 화장실의 변기 수를 남자의 것보다 2배로 짓도록 했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소변기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공공화장실 설계는 여성 해방 이전에 만들어졌으므로, 우리는 여자들이 가져야 하는 수의 화장실을 줘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20. 발빌 싱 시체왈(Balbir Singh Seechewal)
-by Madhur Singh
시크 족의 성서인 ‘그란트 사히브(Granth Sahib)’에 나오는 글귀 중에 발빌 싱이 좋아하는 것의 하나는 자연력을 경외하는 구절이다. “바람은 우리의 선생님이다”라는 것은 “물은 아버지요, 지구는 어머니다”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녹색혁명이 인도의 농업생산을 극적으로 증진시키고 펀자브(Punjab)를 국가의 빵바구니로 만든 후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의 한때 풍부했던 강과 대수층(臺水層)은 증가하는 지하수 수요, 산업 및 농업 화학물질, 그리고 지방 수자원으로 흘러들어가는 폐수 덕분에 고갈되고 오염되어 있다.
인도의 다수 족 시크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160km 길이의 칼리 베인(Kali Bein) 강을 예를 들어보자. 지난 수십 년에 걸쳐 6개 도시와 40개 마을이 쓰레기를 내버리곤 했던 더러운 배수구 수준까지 강은 말라들어 갔다. 강의 일부분은 말라빠져 부근 농지를 바싹 마르게 했다. 오염된 물은 또한 땅 밑으로 스며들어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0년 시크의 성인 시체왈은 이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칼 세와(Kar Sewa: 자발적 봉사)라는 시크 전통에 호소하면서 그와 추종자들은 지역민들에게 왜 칼리베인 강을 청소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면서 육체적 노동을 할 만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장비를 위한 기금을 모았다. 이 운동의 정점에서 20여개 마을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이 작업의 규모는 굉장했고, 자원봉사들은 물 히아신스와 침니로의 강바닥을 전부 청소하고, 또 강 따라 강 제방과 도로를 만들었다. 정부와 시 단체에 호소해도 더러운 물이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을 때 시체왈은 마을 사람들이 오수를 다른 곳에 버리도록 권장하는 대중홍보전을 시작했다. 몇몇 마을은 쓰레기 처분과 처리의 전통적 방법을 되살리고 농민들은 처리된 물을 배분받기 위해 줄지어 섰다. 결국 인근 운하로부터 물줄기를 바꾸라는 정부의 명령을 얻어냈다. 강바닥이 치워지자 자연적인 샘물이 살아나고 강바닥은 물이 차기 시작했다. 이후로 강둑을 따라 나무를 심었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낚시를 금지했다.
오늘날 칼리베인 강은 번창하고 있다. 가족들은 소풍과 종교축제 기간의 헌신목욕을 위해서 그곳으로 향한다. 시체왈은 무두질공장과 정제되지 않은 강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다른 공장으로 시야를 돌렸다. 그는 또한 주민과 정부가 전국에 걸쳐 더 체계화된 방법으로 강과 지천을 깨끗이 치우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가면 우리의 강을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밝혀냈다”라고 하면서 “이제는 그것을 더 큰 규모로 할 때다”라고 시체왈은 말한다.
21. 실라스 크파난영 시아코르(Silas Kpanan'Ayoung Siakor)
-by Alex Perry
아프리카에서 보존이라는 것은 단지 환경 보호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취약한 법규와 전적으로 토지에 의존하는 수백만 인구와 함께 보존은 종종 생명을 구하고 경제개발에 취약한 많은 사람들을 지키는 일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라이베리아인 실라스 크파난영 시아코르가 공정한 개발의 승리자로 출발하여, 최종적으로 서아프리카의 최대 산림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도왔는지를 설명해준다.
라이베리아 내전(1989~1996) 기간 동안 유엔 인도주의적 보급품을 분배한 후 시아코르는 라이베리아 극빈자를 위한 공정한 개발을 요구하는 지역 압력그룹에 가입했다. 그는 소식지 쓰기를 도왔다. 그리고 그가 어떤 불명예 사건, 즉 대통령 찰스 테일러가 전쟁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벌목 이익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게 된 것은 라이베리아의 가난한 산림 마을로 취재 여행하던 중이었다. 시아코르는 또한 벌목화사들이 마을 사람들을 때리고 강간하고 무기를 밀수입한 민병대를 고용했을 뿐만 아니라 기록을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시아코르의 증거로 말미암아 유엔은 2003년 라이베리아 목재의 수출을 금지하게 되었고, 결국 테일러에 대한 일부 법적 소송사건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지금 이 사건은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Sierra Leone) 간의 전쟁에서 테일러의 역할에 대한 전범 죄목으로 헤이그에서 재판 중에 있다. 테일러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2005년 라이베리아 총선의 준비단계에서 야당 지도자 엘렌 존슨 설리프는 시아코르로부터 힌트를 얻어 주요 정책으로서 빈곤 완화와 함께 산림보호를 채택했다. 존슨 설리프는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라이베리아의 모든 벌목 면허를 취소했다. 아프리카 생태에 대한 그러한 행동의 중요성은 과대평가하기란 어렵다. 라이베리아의 산림은 서아프리카에서 최후의 중요한 처녀림이다. 그것은 480만ha를 차지하고, 아프리카 포유류의 거의 절반에게 서식처가 되며, 기후변화를 늦추는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서아프리카에서 보존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라이베리아는 당신의 첫 방문처가 될 것이다"라고 시아코르는 말한다.
시아코르(38)는 이후 '라이베리아의 지속가능한 개발 연구소(Sustainable Development Institute of Liberia)'를 창설했다. 이 두 살배기 NGO의 사명은 환경 문제를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실제로 푸른 나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지속불가능하고 파괴적인 자원개발로 인하여 영향을 받아 온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시아코르는 그것은 환경운동가인 자신에게 칼날을 맡겨준 사람들에 대한 그의 임무라고 말한다. “사람이 보듬고 살아가야 하는 박탈, 남용, 고통, 가난 등의 수준은 내가 보았던 모든 것이다. 이러한 고충을 가까이에서 목격하는 것은 당신으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아가지만, 한편 많은 것을 당신에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22. 크레그 솔리(Craig Sorley)
-by Stephan Faris
크레그 솔리가 환경주의로 전환한 것은 의사가 그의 뇌종양을 제거한 이후였다. 1989년이었고, 솔리는 미네소타 주 세인트 폴 소재 크리스천 대학의 학생이었다. 회복해감에 따라 솔리는 ‘매우 뚜렷한 부름을 감지하고’ 세계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천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동행한다는 점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한 순간이었다"라고 그는 말한다.
솔리의 계시는 특이한 것이었다. 환경운동가와 복음주의자는 아주 다른 전통에서 나온다. 많은 녹색주의자는 보수적인 크리스천의 창조주의 신앙을 거부한다. 이는 진화에 근거한 과학적 견해와는 결코 조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솔리는 지구를 살리는 공통 목표를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분계를 다리 놓아서 둘을 함께 데려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상냥하고 사려 깊은 솔리는 성경의 장과 절까지 암송하면서 그의 의도를 밀고 나가려고 하는 환경운동가이다. 케냐의 나이로비 외곽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그는 지구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의무임을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에게 확신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나님은 최초의 정원사이자 농부였다"라고 솔리는 말한다. 하나님의 정원을 가꾸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다.
솔리의 그룹인 ‘창조 관리 케냐(Care of Creation Kenya)’는 동아프리카와 미국에서 회의와 세미나를 조직했는데, 참가자 중에는 케냐의 노벨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와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 벤자민 느짐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솔리의 주요 업무는 성경을 이용하여 환경 사례를 만드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것을 기뻐했고(창 1:31), 또 사람을 동산에 보내 거기서 일하고 돌보도록 했다(창 2:15). 예수는 인간이 만든 것보다 자연의 경이로움에서 더 많은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했다(마 6:28-29).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다(골 1:16). 솔리는 자신이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있는 언어, 즉 성경의 언어'로 제시해 보였을 때 보수 복음주의자들은 환경 메시지에 훨씬 더 수용적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암과의 한판 승부 후에 솔리는 크리스천 대학(그 학교는 환경과학 수업을 하지 않았다)을 중퇴하고 미네소타대학에 등록했다. "90년대에는 우리 교회의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조류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지난해 4만5000개 미국교회의 단체인 ‘국립복음주의협회’는 '창조물 관리'를 최고 우선순위의 하나로 선언했고, 크리스천 대학은 지금 환경과학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아직은 보수 크리스천들이 보존을 신앙의 문제로 끌어안기 전에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이 화제에 대한 우리의 세계관은 성경에 의해서 정의되기보다는 아직도 더 자주 정치와 세속적 경제 사상, 우리의 물질적 문화, 그리고 극단적 환경운동의 목적을 향한 무릎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반응에 의해서 정의되고 있다"라고 솔리는 말한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그는 설교하고 있다.
23. 마리나 리흐바노바(Marina Rikhvanova)
-by Krista Mahr
길이 640km, 깊이 1.6km에 이르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는 세계 최장의 담수그릇이다. 이 호수는 1,500종 이상의 특이 동식물과 지구상 비동결 담수 보유량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1960년대 가난에 찌든 시베리아의 경제를 돕기 위해 호수 옆에 위치한 바이칼스크(역자 주: 1961년에 건설된 제지공장 마을)에 거대한 펄프 및 종이 공장이 세워졌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호수의 생태 시스템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그 공장은, 소련연방의 최초 주요 환경운동으로서, 공장폐쇄를 위하여 풀뿌리 노력을 하는 데 촉매제가 되었다. 오늘날, 그 공장은 아직도 가동되고 있으며, 그래서 마리나 리흐바노바의 큰 공로로 과거 및 현재의 위협으로부터 바이칼 호수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교육받은 과학자 리흐바노바(47)는 어릴 때부터 줄곧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시에서 바이칼 호수를 탐구해 왔다. 그 시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바이칼 호수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1990년, 그녀는 개발의 부작용으로부터 호수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둔 NGO 단체 '바이칼환경물결(Baikal Environmental Wave: BEW)을 공동 창설했다. BEW가 시위의 발판을 마련하고 서명을 받는 데 4년을 보낸 후인 2006년에 당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공개적으로 국영회사 트란스네프트(역자 주: Transneft, 러시아의 석유제품 수송 전담 국영회사)의 사장에게 명령하여 호수 주변을 지나가기로 계획된 송유관로를 변경하게 했다. 그것은 "국민이 정부 결정을 변경할 수 있다"라는 하나의 증거였다고 리흐바노바는 말한다.
더 열거할 다른 문제들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 아연과 납 채굴의 대가, 농약 유출, 공기오염 등등. 아직도 공장폐쇄를 위해 싸우면서 BEW는 역시 급속히 성장하는 호수의 관광산업의 영향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또 이 지역에 추가 방사성물질을 버리는 인근 안가르스크 핵연료공장에 있는 우라늄농축센터 개발을 중지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러시아 국가 당국자들이 BEW의 컴퓨터와 자산을 압류하면서 BEW를 괴롭혀 왔다고 리흐바노바는 말하고, 또 그의 아들의 체포는 그녀의 투쟁을 불명예스럽게 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그의 아들은 시위 현장에서 한 명이 사망한 2007년 민족주의자의 공격과 관련한 죄목으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때때로 나는 모스크바가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리흐바노바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좀 더 큰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4. 밴 존스(Van Jones)
-by Michael Elliot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와 마린이라는 두 도시는 샌프란시스코 만(灣)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나 장엄한 수역은 제쳐두더라도, 모래 많은 항구 도시이며, 신시대(역자 주: New Age, 가치관이 다른 영적 추구 시대)의 음악이 흐르고 수정 같이 맑은 이 도시(전설에 의하면 온욕조가 발명되었다는 곳)는 다른 행성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밴 존스는 이 두 도시를 끌어들이고 또 녹색경제를 새로운 방향에서 건설하는 방법에 대해 미국이 생각하는 데 도우려고 한다.
존스(39)는 오클랜드에 근거를 둔 아프리카계 미국인 활동가로서 감옥에서 갓 나온 아이들을 위한 일자리 찾기 프로그램을 수년간 운영하면서 정력을 불태우고 있을 무렵 마린 시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가 본 것은 ‘생태 차별’의 한 형태였다고 그는 말한다. 오클랜드의 이웃사람들은 찾기는 대로 겨우 먹고 살만한 일을 하면서, 천식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산업 오염물을 취급해야만 했다. 단지 몇 마일 떨어져 있는 소박한 마린 시에서는 유기농식품, 태양 전지판 설치 등을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새로운 경제가 형성되고 있었다. 만일 만(灣) 양측이 협력하면 양측의 경제는 혜택을 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존스의 통찰력이었다. 그러한 통찰력의 결과는 존스가 이끌고 있는 압력단체인 ‘모두를 위한 녹색(Green for All)’이다. 그가 지적하듯이 이 단체는 육체노동자에게 ‘번영의 길’을 제공하고, 미국이 저탄소 경제로 갱신해나갈 때(혹은 아마) 이들에게 요구될지도 모르는 직업과 기술을 위한 훈련에 이바지해 왔다. “우리는 오염과 가난을 동시에 물리칠 수 있다”라고 하면서 “기후변화와 싸우는 것이 이제까지 미국에서 보아 왔던 완전고용계획에 가장 근접한 일이다”라고 존스는 말한다.
‘모두를 위한 녹색’ 단체는 녹색운동에서 필요한 변화를 위해 존스를 선봉장으로 내세웠다. 과거 미국에서의 환경운동은 주로 사무직 근로자의 운동으로서, 노동자 계층과 소수민족 가운데서는 거의 공명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목재 노동자들은 녹색들(역자 주: 녹색화의 총칭)이 그들의 생계에는 얼룩진 올빼미의 가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화석연료를 비판하는 것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있었던 환경재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심한 타격을 줬다고 존스는 지적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하여 가장 많이 고충을 당한 사람은 뉴올리언스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고, 또 산불로 집이 탈 때 잃게 되는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라틴계 농장 노동자들이다.
녹색경제가 미국의 노동계층 일원들에게도 혜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낡은 편견은 끈질기다. 환경적 관심의 상징은 서식처를 위해서 싸우는 북극곰이 될 수 없고, 디트로이트에서 풍차 터빈을 만드는 리벳공의 상징인 로지(역자 주: Rosie, 1940년대 일하는 여성을 상징함)이어야 한다고 존스는 말한다. 그러나 존스에게는 의지할 풍부한 유산이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는 녹색 일자리를 위한 싸움을 50년대와 60년대 시민권리운동 같은 위대한 전통의 존재로 보고 있다. “당신은 20세기에 했던 방식대로 21세기에 흑색정치를 할 수는 없다. 이것은 불평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존스는 말한다. 그는 녹색경제 건설이 일생의 기회임을 미국 소수민족과 노동계층으로 확신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25. 조렌 헤르만센(Soren Hermansen)
-by Bryan Walsh
한 잔의 작은 무료 맥주가 해낼 수 있는 일은 놀랍다. 카테가트(Kattegat) 해협 에 둥지를 튼 삼소(Samso)라고 하는 이 작은 덴마크 섬은 1997년 덴마크 환경에너지부가 후원하는 경연대회에서 수상했다. 당시 목축과 돼지농장으로 알려진 삼소는 지속가능한 동력을 위한, 결국 카본프리(carbon-free)로 가기 위한 덴마크의 시범전시장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처음에 정부가 자금지원, 세금감면 또는 기술적 전문지식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동력이 석유나 석탄에서 나왔다고 전제한다면(그리고 4,300명의 섬주민은 곡물 사일로의 풍력 터빈을 몰랐다) 삼소는 괴이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조렌 헤르만센은 기회를 만났다. 가족농장에서 성장했고 부단히 활동하는 토착 태생 아들인 헤르만센은 한 지방 학교에서 환경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가 삼소의 포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났고, 그리고 재생에너지 계획이 마침내 약간의 기금을 확보할 무렵, 그는 자원하여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직원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하면서 “이것은 현실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은 그가 유일했을지도 모른다.
헤르만센은 삼소 섬사람들이 치밀하고 보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장점일 수도 있다. 일단 충분히 잠재력이 있는 행동가들을 확신시켜 행동하게만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따라간다. 그래서 헤르만센은 공동체나 클럽마다 나타나서 녹색으로 가는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바람이 세게 부는 섬이 갖고 있는 미개발된 풍력 잠재력과 삼소를 에너지 독립 섬으로 만들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지적했다. 그리고 때로는 공짜로 맥주를 갖다 주기도 했다.
효과가 있었다. 섬사람들은 석유난로를 버려진 볏짚과 나무 부스러기를 태워서 열과 온수를 만드는 중앙집중 시설로 바꿨다. 그들은 신규 풍력터빈 사업의 지분을 사서 자본을 일으키고는 섬의 전기 수요를 충분히 충족할 만한 11개의 육상용 대형 터빈을 건설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들은 자동차와 페리선에 의존하는 것을 상쇄할 만한 풍력을 공급할 수 있는 10개의 대량 해안 해상용 터빈 건설을 지원했다. 오늘날 삼소는 탄소중립일 뿐만 아니라 섬이 사용하는 것보다 실제로 10% 더 많은 청정 전기를 생산하고 여분의 전기는 이익을 보고 도로 송전선망으로 보낸다.
헤르만센은 녹색 신탁전령사가 되어 마을마다 여행하면서 삼소의 성공 이야기를 들려주고, 집에 있지 않을 때는 청정 동력 연구센터인 '에너지 아카데미(Energy Academy)'를 운영한다. 그러나 실제 공로는 섬사람들에게 있으며 환경변화는 땅에서만 솟아난다는 것이 삼소 섬의 교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고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지역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을 돌볼 것이다”라고 헤르만센은 한마디 한다.
26. 루니 톰슨(Lonnie Thompson)
-by Bryon Walsh
1970년대 초 로니 톰슨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로 왔고, 외관상으로는 석탄 지질학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으나, 그가 첫 번째로 제안 받은 중요한 자리는 극지방 연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빙하는 단지 지구의 10%만을 차지한다. 그러니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가?”라고 톰슨은 회상한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톰슨은, 아직 오하이오 주에 있고 또 세계의 가장 저명한 고대기후학자로서, 그 이유를 밝히는 데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얼음이 극지방과 세계의 산악 빙하지역에서 형성됨에 따라 많은 공기가 응결수 안에 갇힌다. 과학자들은 그린란드나 남극 같은 곳에 수천 미터 깊이까지 파 들어가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얼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얼음 핵을 분석하여 특정한 때에 지구의 대기가 얼마나 더웠는지 알아낸다. 지구의 기후 과거를 풀어내는 데는 얼음 핵이 열쇠이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지구를 어떻게 데우고 있고 또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톰슨이 오기 전에는 거의 모든 얼음 핵은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극지방에서 채취한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험하지 않았던 곳, 즉 에콰도르, 네팔 및 티베트 같은 열대산맥을 덮고 있는 빙하를 뚫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심한 도전적 작업이었고, 고도 5,670m의 퀠카야 빙봉(역자 주: Quelccaya, 페루 안데스산맥에 있는 열대지역 최대의 빙하)까지 뚫어내는 등의 매우 힘들고 악몽적인 일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톰슨은 마침내, “열대 빙하에 중요한 기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충분한 일을 했다”라고 말한다.
세계 인구의 70%가 거주하는 열대지역까지 연구를 확대함으로써 그가 분석한 산악 얼음 핵은 지구 기후를 이해하는 데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오래 지속되는 톰슨의 업적은 기후변화에 관한 그의 설득력 있는 현장 목격 기록일지 모른다. 즉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고산 빙하의 급속한 후퇴는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의 하나라는 것이다.
톰슨의 연구 재료가 실제적으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사람에게는 암울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명백할 때 우리는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라고 그는 말한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한때 빙산이 매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도 빙하의 구세주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다.
27. 모하메드 딜라와르(Mohammed Dilawar)
-by Madhur Singh
인도의 호랑이에 집착하는 자연보호론자 모하메드 딜라와르는 기인(奇人)이다. 환경 연구의 전직 강사는 한때 호랑이 연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참새 지키기에 자신을 바쳐 왔다. 자신의 돈을 써가며 서인도의 나시크에 있는 자기 집에서 일하면서, 딜라와르는 인도에서 가장 많이 위협 받고 있다고 믿어지는 한 조류를 보존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참새는 한때 인도 전역에 매우 널리 깔려있어서 민간설화와 노래에도 등장한다. 2005년, 우연히 영국의 참새 숫자 감소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인도도,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지역에서 같은 길로 향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딜라와르가 깨달았을 때 이 작은 새의 운명은 잠재적으로 큰 문제로 있었다. “카나리아가 광산에 해당된다면, 참새는 도시 생태계에 해당된다”라고 하면서 “참새가 죽어 간다는 것은 우리의 도시가 궁지에 빠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딜라와르는 자신의 작은 지식을 확인하기 위해 잡지사와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단지 하나만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도 농업 연구 위원회 발간한 보고서로서 남부 인도에서의 참새 숫자의 극적인 감소를 기록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소위 말하는 ‘과학적 소질의 범죄적 결여’를 고치기로 결심하고, 참새 숫자의 전국적 조사, 완성하는 데 수년이 걸릴지 모르는 야심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출발했다.
한편 그는 작은 새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하고 있다. 참새 감소에는 치명적으로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현대적 건축물과, 줄어드는 정원 및 공원은 참새에게 집 없는 신세를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구석진 곳과 좁은 틈새에서 둥지 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딜라와르는 새의 고통을 가슴에 담았다. “어느 날 나는 참새 한 마리가 전봇대 스위치 박스에 둥지를 트는 것을 보았다. 그때 거기서 나는 어렵게 사는 이 작은 생물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라고 그는 말한다. 나무 둥지 상자를 고안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집에서 실험을 하고 만들어서 비영리 차원으로 팔기 시작했다. 3년이 채 되지 않아서 1,000개 이상의 ‘둥지’와 ‘모이통’을 팔았다. “참새 새끼가 팔짝팔짝 뒤며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감동했다는 사실을 가족들로부터 듣는다는 것은 고무적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작은 발걸음이라는 것을 그는 인정한다. “우리는 정부와 과학 공동체를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우리는 울타리와 나무를 심어야 하고, 또 집 근처 화학물질 농약 사용을 중지해야 한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평범하고 별로 낭만적이지도 않은 이런 생물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인도에서, 우리는 장엄한 호랑이만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지금 행동을 취하여 참새를 구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참새에 대해서 이야기 속에서나 듣고 결코 한 마리도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28. 주르겐 프리마베라(Jurgenne Primavera)
-by William Boston
새우 칵테일을 사랑하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그래서 그게 문제다. 주르겐 프리마베라는 그녀의 고향 필리핀에서 호랑이 참새우에 관한 지각변동적인 연구로 수산양식 혁명을 자극하는 데에 도움을 줬지만 전 세계적으로 새우튀김을 금지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 선임 과학자는 필리핀 파나이 섬에 있는 동남아수산개발센터에서 육지와 해상 간의 중요한 방풍 지대로서 역할을 하는 맹그로브 숲을 보호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양어를 캠페인하고 있다.
수산양식은 우리의 먹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70년대 중반, 프리마베라가 맹그로브 숲이 수행하는 역할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그러한 양식은 수산식품 장려금의 10% 이하를 차지했다. 오늘날 우리가 섭취하는 어류와 새우의 1/3이상은 수산양식장에서 수확한 것이다. 수산양양식이 수백만 명의 생계를 제공하는 반면에 그것은 또한 지구상의 맹그로브를 황폐화시켰다. 맹그로브 산림의 약 20%는 1980년 이후에 사라졌고, 이제 수산양식은 산림훼손의 주요 범죄자 중의 하나이다.
맹그로브는 물론 해양 희생물, 예를 들어 산호초만큼이나 매혹적이지는 않다. 환초가 색깔을 머금고 터져 나올 때, 이 간조(間潮) 숲은, 드러난 뿌리와 흙탕물, 그리고 모기떼로 인해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러나 수산양식업자들이 새우 양식장이나 양어장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맹그로브를 치울 때, 육지의 침식을 가져오고, 야생 물고기의 중요한 보호실을 제거하게 되며, 그리고 커다란 스펀지(더러운 유출물을 흡수함)와 방벽(태풍과 쓰나미의 광란을 막음)의 두 가지 역할을 하는 식물 네트워크의 파괴로 이어진다. 토종 양식에 반대하는 조치로서 외래 해산물 품종을 지역 서식처로 도입하려는 성향은 역시 미묘한 생태계를 크게 손상시킬 수 있다.
그러면 새우를 사랑하는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인가? 프리마베라는 간단한 전략을 추천하고 있다. 즉 얼마간의 맹그로브를 지켜서 수산양식이 지속가능하게 번성하는 것이다. 맹그로브가 자연히 물을 걸러주므로 숲은 비싼 장비보다도 훨씬 효과적으로 양식장 쓰레기를 근절해준다. 맹그로브와 양식장의 크기를 4대 1로 유지하면 자연을 보호하면서 간헐적인 참새우 칵테일 또한 즐길 수 있다고 프리마베라는 믿는다. "사람들은 맹그로브를 단지 젖은 나무라고만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매우 많은 것을 주고 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프리마베라는 말한다.
29. 조아힘 루터(Joachim Luther)
-by William Boston
1970년대에 조아힘 루터가 올덴부르크(Oldenburg) 대학의 젊은 핵물리학 교수였을 때, 그의 사무실은 자주 반핵 깃발을 흔들고 슬로건을 외치는 학생들로 둘러싸였다. “나는 과학자다”라고 하면서,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을 시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태양광 발전에 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기 시작했다”라고 루터는 말한다.
미래가 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원에 있음을 곧 확신하고, 루터는 그런 에너지들이 누군가의 시골 오두막집뿐만 아니라 전 나라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착수했다. 그의 대학 동료들은 그를 꾸짖었다. “그건 현실 물리학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했다"라고 루터는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1993년 루터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양에너지 시스템을 위한 프라운호퍼 연구소(Fraunhofer Institute for Solar Energy Systems: ISE)의 소장이 되었다. ISE는 연구하는 회사들과 신기술을 위한 실세계 적용과 더불어 서로 손잡고 일한다. 루터의 재직 기간 동안 이 연구소는 초박막 실리콘 웨이퍼로 된 태양전지를 만들어냈고, 또한 실리콘보다 값이 싼 다중유리 물질로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루터 팀은 태양광전기로 운전하는 냉방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리고 편편한 패널을 사용하는 대신 거울과 렌즈를 합쳐 태양광 초점을 맞추는 태양광전기 모듈을 만들어내었고, 그리하여 작은 면적에서 만들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증가시켰다. 모듈은 바퀴에 장착되고, 모터는 모듈이 태양을 추적하도록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지연시키는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면 이러한 기술혁신은 중요하다. 금세기 중반이 되면 에너지의 절반은 재생에너지로부터 얻을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루터는 말한다. 문제는 지구온도 상승을 2도까지로 제한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루터는 2006년 ISE를 은퇴하여 최근에 싱가포르의 ‘태양에너지 연구소(SERIS)’의 소장이 되었다. 이것은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를 대체에너지의 지도상에 놓기 위한 것이다. 루터는 ISE와 SERIS 간에 협력적인 연구를 운영할 뿐만 아니라 초효율적인 태양 냉방 기술에 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문제는 추위이고, 아시아에서는 더위다”라고 루터는 말한다. 온도가 어떻든 루터는 과학을 이용하여 우리를 더욱 편안하게 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것도 지구온난화를 촉진시키지 않고 하는 것이다.
30. 보 쿠이(Vo Quy)
-by Hannah Beech
보 쿠이 조차도 풍자를 이해한다. 78세의 베트남 동물학자는 전쟁 중에 미국의 고엽제와 폭격 전쟁으로 인하여 손상 받은 200만ha의 숲으로부터 생명을 구해내려고 노력하면서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베트남 환경의 최대 위협은 자본주의 국가의 군인이 야기한 참상이 아니라 베트남 자체의 급성장하는 시장경제이다. 국가의 급속성장에 기여한 공장은 하늘로 독소를 뿜어대고, 농지와 건설자재에 대한 갈급한 수요는 만연된 산림훼손을 초래했다. “우리가 자연을 보존해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젊은 세대에게 말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베트남의 주요 환경운동가인 쿠이는 말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산림을 돌보기보다는 돈벌이를 더 좋아한다”라고 덧붙인다.
베트남은 이미 1962년에 처음으로 야생생물 보존을 지정했다. 그러나 쿠이가 인정하듯이 “전쟁이 발생한 이후 그 일에 집중한다는 것은 약간 어려웠다.” 1975년 공산주의자가 승리하자 그는 국립공원 및 보존 네트워크 개발을 도왔다. 보존 조치의 집행이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베트남은 지금 126곳의 보호구역을 자랑한다. 쿠이는 공동체 중심의 재조림과 농림 프로그램을 발의하기도 했고, 또 공산주의 관료의 중앙 집권적 정책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난 풀뿌리식 접근을 베트남에 도입했다. 1985년 그는 하노이대학에 국가 최초의 환경연구센터를 발족시켰다. 그것은 1956년 자신이 설립을 도왔던 연구기관이다. “그 당시에는 전문가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즉시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라고 쿠이는 회상한다.
참으로 쿠이는 혼자서 일인 환경 기계가 된 셈이다. 그의 활동 범위는 베트남에 다른 자연보호주의자들이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왕성한 호기심을 말해주기도 한다. 여분의 시간 중에는 그는 ‘베트남의 조류(Birds of Vietnam)’라는 책을 썼다. 그것은 현대 시대에 있어서 베트남인이 저술한 동물군 관련 최초의 책이다. 두 권짜리 저술은 1964년 쿠이 자신이 발견한 한 종류의 꿩도 포함하고 있다. 그는 전쟁 중에 베트남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희귀 철새 학을 보기도 했고, 그리고 조류 보호를 위해 보존지를 확립하기도 했다. 오늘날 수백만 마리의 동 큰두루미(Eastern Sarus Crane)가 베트남 습지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평균 키가 거의 1.8m로서 세계에서 가장 키 큰 나는새에 속한다.
비록 오래 전에 은퇴한 나이지만 쿠이는 재조림과 산림보존 프로젝트에 활발하게 관여하고 있다. 최근에 그는 아직도 에이전트 오렌지(역자 주: Agent Orange: 신체를 마비시키는 화학무기)와 네이팜(역자 주: 반경 30m까지 불바다를 만드는 소이탄) 폭탄의 다른 부작용에서 회복 중에 있는 한 베트남 지역을 여행했다. 도시 십대들이 최신 오토바이를 갖거나 고임금 공장의 일자리를 얻고 싶어 할지라도 그는 젊은이들에게 오염과 기타 산업화의 부작용에 관해 조언한다. 그리고 그는 1994년에야 밝혀진 울부짖는 사슴이라고 하는 자이언트 문착(Giant Muntjac) 같은 동물을 나라의 삼림에서 약탈하는 야생동물 거래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나는 꽤 늙었다. 그러나 할 일이 더 욱 많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쿠이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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