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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스펜서-브라운 (George Spencer-Brown)

http://textlab.tumblr.com/post/42430273256/george-spencer-brown
스펜서-브라운 (George Spencer-Brown)
 거의 반평생 은둔의 삶을 살면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다시 볼 수 있는 이론과 연구 작업을 끝없이 생산하고 있는 철학자, 사상가, 수학자, 논리학자, 엔지니어. 그러나 아마도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자인 죠지 스펜서-브라운(George Spencer-Brown).
그가 동생과 설립한 철도 운행 관리 회사에서의 기계적 장치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쓴 『형식의 법칙 Laws of Form』은, 쓰여진 후에도 5년 동안이나 출판사를 찾지 못해 돌아다니던 중, 러셀에 의해 “유클리드 이후 이런 작업은 본 적이 없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나서야 1969년, 그의 나이 46세에 출판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이 책은 마치 마르크스의 『자본』 만큼이나 지적인 불온성 덕분인지 아니면 그의 놀랍도록 간결하고 완벽한 글이 일반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서인지 오랫동안 완벽히 지적 세계로부터 무시되어 왔다.
하지만 이 책 이전까지 스펜서-브라운의 삶이 그다지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1923년 영국 출신인 그는 1940년 London Hospital Medical College에서 17세의 나이로 첫 번째 의학 학사를 받고, 이후 2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해군에서 3년간의 복무 후, Cambridge Trinity College에서 공부를 이어가 1950년에는 철학 우등 졸업, 51년에는 심리학 우등 졸업을 하고는 거기서 버트란트 러셀을 만나게 된다. 52년에서 58년까지 Oxford, Christ Church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54년 옥스퍼드와 케임브릿지 양쪽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57년 Probability and Scientific Inference를 출판한다.
이후 동생과 함께 영국 철도의 기술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현대적 엘리베이터 시스템의 기본적 통제 장치들을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이 때 영국 철도에서 사용되는 신호 방식에 대한 새로운 통제 방식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의 책에 대한 기본적 사고가 정리되었다.
이후 60년대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혁신적 정신병리학자인 R.D. Laing에게서 수련을 받고, 64년에는 러셀의 추천으로 University of London에서 형식 수학 강의를 하게 된다. 69년부터는 케임브릿지에서 순수 수학과 수리 통계 학과에 재직하면서, 70년대와 80년대에는 스탠포드 등에서 교환 교수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커리어와, 그의 기념비적인 작업 『형식의 법칙』이 지닌 강력한 영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외면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책에서 고민한 근본적 관점, 실체, 외양, 깨달음의 세 가지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상에서 불교와의 상통을 발견하고, 그를 실천하는 새로운 정신 수양 센터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77년 54살이라는 나이에 누린잠깐의 결혼 생활을 제외하고는 긴 혼자만의 생활을 보내며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근원적 사유를, 이제는 78권에 이르는 자신의 노트에 끊임 없이 적어 나가고 있다.
스펜서-브라운이 『형식의 법칙』에서 다루고 있는 근본적 주장은 기존의 참/거짓이라는 이항 구조에서 벌어지는 사유에 허구적 상태(imaginary state)와 시간의 문제를 도입함으로써, 마치 수학에서의 허수(imaginary number)가 그랬듯이 우리 사유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1계 (first-order)에서는 역설(paradox)로 배제되었던 것이, 2계(second-order)에서 모두 의미를 지니며 되돌아 온다. 그리고 이런 자기 언급적(self-reference) 명제의 가능성들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킨다. 그의 이런 혁명적 사상은 러셀과 화이트헤드에 의해 구축된 현재의 수학적 사고, 혹은 논리 수학과 부울 이후 튜링으로 이어진 0과 1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컴퓨팅 기술의 기반을 한계적 사고로 파악하고, 그 너머의 사고 운동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 혁명성을 누구보다 먼저 주목한 학자는 칠레의 반체제 생물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바렐라(F. Varela)였다. 그는 2계까지 구축된 스펜서-브라운의 『형식의 법칙』을 확장하여, ‘진동자 함수(Modulator function)’의 확장 형태인 3차 이상의 고차 방정식에서의 ‘파형 함수’를 체계화함으로써 ‘외부 입, 출력’ 없이 조작적으로 폐쇄된 상황에서, 스스로 생산하는 차이를 통해 스스로를 생산, 재생산하는 생물의 기본적 운동 형태를 증명하고, 이를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라 이름 붙이게 된다.
이로서 자신의 ‘지시의 산법(the calculus of indications)’이 논리 수학이라는 추상적 운동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주와 만물이 존재하는 존재와 운동의 법칙이라는 스펜서-브라운의 주장은 그 확장성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나아가 이 ‘조작적으로 폐쇄적인 오토포이에시스’를 사회적 시스템에 결합시킨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을 통해, 스펜서-브라운의 혁명적 사유는 자연적 운동을 너머, 인간 사회에서의 사회적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스펜서-브라운은 학문적으로 바렐라나 루만의 이름 밑에 묻혀 있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바렐라나 루만의 난해함은 더욱 증폭된다. 그들의 혁명적 사고의 뿌리에 있는 스펜서-브라운의 발본적 사고를 먼저 파악하지 않는다면, 바렐라나 루만이 지니는 그 발본성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겉돌 뿐이다. 그래서 더욱 스펜서-브라운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더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스펜서-브라운 (George Spencer-Brown)

거의 반평생 은둔의 삶을 살면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다시 볼 수 있는 이론과 연구 작업을 끝없이 생산하고 있는 철학자, 사상가, 수학자, 논리학자, 엔지니어. 그러나 아마도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자인 죠지 스펜서-브라운(George Spencer-Brown).
그가 동생과 설립한 철도 운행 관리 회사에서의 기계적 장치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쓴 『형식의 법칙 Laws of Form』은, 쓰여진 후에도 5년 동안이나 출판사를 찾지 못해 돌아다니던 중, 러셀에 의해 “유클리드 이후 이런 작업은 본 적이 없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나서야 1969년, 그의 나이 46세에 출판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이 책은 마치 마르크스의 『자본』 만큼이나 지적인 불온성 덕분인지 아니면 그의 놀랍도록 간결하고 완벽한 글이 일반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서인지 오랫동안 완벽히 지적 세계로부터 무시되어 왔다.
하지만 이 책 이전까지 스펜서-브라운의 삶이 그다지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1923년 영국 출신인 그는 1940년 London Hospital Medical College에서 17세의 나이로 첫 번째 의학 학사를 받고, 이후 2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해군에서 3년간의 복무 후, Cambridge Trinity College에서 공부를 이어가 1950년에는 철학 우등 졸업, 51년에는 심리학 우등 졸업을 하고는 거기서 버트란트 러셀을 만나게 된다. 52년에서 58년까지 Oxford, Christ Church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54년 옥스퍼드와 케임브릿지 양쪽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57년 Probability and Scientific Inference를 출판한다.
이후 동생과 함께 영국 철도의 기술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현대적 엘리베이터 시스템의 기본적 통제 장치들을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이 때 영국 철도에서 사용되는 신호 방식에 대한 새로운 통제 방식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의 책에 대한 기본적 사고가 정리되었다.
이후 60년대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혁신적 정신병리학자인 R.D. Laing에게서 수련을 받고, 64년에는 러셀의 추천으로 University of London에서 형식 수학 강의를 하게 된다. 69년부터는 케임브릿지에서 순수 수학과 수리 통계 학과에 재직하면서, 70년대와 80년대에는 스탠포드 등에서 교환 교수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커리어와, 그의 기념비적인 작업 『형식의 법칙』이 지닌 강력한 영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외면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책에서 고민한 근본적 관점, 실체, 외양, 깨달음의 세 가지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상에서 불교와의 상통을 발견하고, 그를 실천하는 새로운 정신 수양 센터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77년 54살이라는 나이에 누린잠깐의 결혼 생활을 제외하고는 긴 혼자만의 생활을 보내며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근원적 사유를, 이제는 78권에 이르는 자신의 노트에 끊임 없이 적어 나가고 있다.
스펜서-브라운이 『형식의 법칙』에서 다루고 있는 근본적 주장은 기존의 참/거짓이라는 이항 구조에서 벌어지는 사유에 허구적 상태(imaginary state)와 시간의 문제를 도입함으로써, 마치 수학에서의 허수(imaginary number)가 그랬듯이 우리 사유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1계 (first-order)에서는 역설(paradox)로 배제되었던 것이, 2계(second-order)에서 모두 의미를 지니며 되돌아 온다. 그리고 이런 자기 언급적(self-reference) 명제의 가능성들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킨다. 그의 이런 혁명적 사상은 러셀과 화이트헤드에 의해 구축된 현재의 수학적 사고, 혹은 논리 수학과 부울 이후 튜링으로 이어진 0과 1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컴퓨팅 기술의 기반을 한계적 사고로 파악하고, 그 너머의 사고 운동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 혁명성을 누구보다 먼저 주목한 학자는 칠레의 반체제 생물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바렐라(F. Varela)였다. 그는 2계까지 구축된 스펜서-브라운의 『형식의 법칙』을 확장하여, ‘진동자 함수(Modulator function)’의 확장 형태인 3차 이상의 고차 방정식에서의 ‘파형 함수’를 체계화함으로써 ‘외부 입, 출력’ 없이 조작적으로 폐쇄된 상황에서, 스스로 생산하는 차이를 통해 스스로를 생산, 재생산하는 생물의 기본적 운동 형태를 증명하고, 이를 ‘오토포이에시스(autopoiesis)’라 이름 붙이게 된다.
이로서 자신의 ‘지시의 산법(the calculus of indications)’이 논리 수학이라는 추상적 운동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주와 만물이 존재하는 존재와 운동의 법칙이라는 스펜서-브라운의 주장은 그 확장성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나아가 이 ‘조작적으로 폐쇄적인 오토포이에시스’를 사회적 시스템에 결합시킨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을 통해, 스펜서-브라운의 혁명적 사유는 자연적 운동을 너머, 인간 사회에서의 사회적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스펜서-브라운은 학문적으로 바렐라나 루만의 이름 밑에 묻혀 있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바렐라나 루만의 난해함은 더욱 증폭된다. 그들의 혁명적 사고의 뿌리에 있는 스펜서-브라운의 발본적 사고를 먼저 파악하지 않는다면, 바렐라나 루만이 지니는 그 발본성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겉돌 뿐이다. 그래서 더욱 스펜서-브라운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더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2014년 9월 22일 월요일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내포된 네 가지 문제점 -허수아비 때리기, 인과관계 오인, 통계의 남용, 낡은 과학관

허수아비 때리기, 인과관계 오인, 통계의 남용, 낡은 과학관
―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내포된 네 가지 문제점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회의적 환경주의자』라는 책이 화제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정치학과의 통계학 전공 교수인 비외른 롬보르가 쓴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널리 퍼진 비관적 전망과 달리 지구환경이 결코 악화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방대한 통계자료를 통해 그는 지구환경과 인간의 생활조건이 오히려 더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1인당 평균적으로 돌아가는 식량의 양은 오히려 늘어났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의 수도 줄었으며, 지난 50년 동안 삼림의 면적은 약간 증가했고, 에너지 자원을 포함한 각종 자원들은 고갈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선진국의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크게 개선되었고, 화학약품의 위협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향후 50년간 멸종될 종의 수는 불과 0.7%에 불과할 것이고, 지구온난화가 파국적인 결과를 빚어낼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교토협약은 실속없이 천문학적 비용만 잡아먹는 형편없는 정책이다.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지구환경이 악화일로에 처해 있다는 암울한 예측이 여전히 지배적인 이유로 롬보르는 환경단체들이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선정적인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는 그동안 숱하게 반복되어 온 '뻔한 이야기'들을 넘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기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부제가 말해 주듯 '세계의 실제 상태(real state of the world)' ― 월드워치연구소에서 매년 발간하는 『지구환경보고서』의 원제목인 'State of the World'를 명백히 겨냥한 제목 ― 를 측정해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얘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숱한 통계자료에 의해 뒷받침되었다는 롬보르의 구체적인 주장들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를 가장 궁금해할 것이다. 이 문제에 한마디로 답하기는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의 주장 속에는 옳은(그러나 별로 새롭지는 않은) 얘기, 반쯤만 옳은 얘기, 불확실한데도 그럴 거라고 우기는 얘기, 명백히 틀린 얘기 등이 마구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균질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들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가 환경론자들을 비판함에 있어 종종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적을 상정해 '허수아비 때리기'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인구증가와 식량부족 문제나 에너지 고갈 문제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1970년대 초·중반쯤에 영향력이 있었던 폴 에를리히와 같은 신(新)맬더스주의적 환경비관론자의 주장이 이후 틀린 것으로 드러났음을 되풀이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논증은 두말할 것 없이 옳다. 그러나 오늘날 전지구적 식량 생산량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거나 석유가 당장 바닥나 경제가 절단날 거라는 등 30여년 전에나 통용되었을 믿음을 여전히 고수하는 환경론자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의 비판은 과녁을 벗어나고 있다. 오히려 대다수의 환경론자들은 식량의 부족이 아니라 분배 문제가 기아를 야기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고(이는 롬보르가 찬양해 마지않는 녹색혁명과 유전자조작식품을 환경론자들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 이유가 된다), 석유나 석탄, 우라늄 같은 에너지의 '부족'이 아니라 에너지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문제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롬보르는 재생가능에너지의 의미도 엉뚱하게 파악을 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이 재생가능에너지를 시급하게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기존의 화력, 수력, 원자력이 지구온난화, 댐 건설로 인한 지역생태계 훼손, 대형사고의 가능성과 핵폐기물의 위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환경에 해를 끼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인데, 롬보르는 화석연료가 바닥을 드러내면 재생가능에너지는 기술발전과 시장논리에 의해 저절로 개발될 것이라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롬보르의 관심이 에너지의 고갈에만 맞추어져 있어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가능한 또하나의 에너지원 정도로만 이해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롬보르의 서술은 종종 인과관계를 거꾸로 파악하거나 단순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예들은 대기·수질오염, 오존층 파괴, DDT의 위험 외에도 롬보르가 제시하고 있는 사례 대부분이 포함된다. 롬보르의 주장대로 선진국에서는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이 분명히 감소했고 오존층 파괴로 인한 전지구적 위험도 경감되었으며 DDT와 같은 유해물질의 환경잔류 수준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환경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환경단체나 언론이 그간 환경문제를 과장해 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는가? 이건 본말이 전도된 이상한 논리다. 오히려 과학자들과 환경단체의 문제제기에 힘입어 이러한 오염 문제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고 그러한 인식이 일련의 논쟁을 거쳐 적절한 규제정책으로 전환됨으로써 현재와 같은 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대기 중에 방출되는 황의 농도를 일정수준 이하로 낮추도록 요구하고, 미온적인 각국 정부를 대상으로 오존층 파괴물질에 대한 전지구적 대응을 촉구하고, DDT를 비롯한 유해 살충제의 생산을 중지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야말로 환경단체들이 해온 역할이었다. 롬보르는 이렇게 '뻔한' 역사적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롬보르가 환경단체의 역할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개발도상국의 환경오염에 대한 그의 진술로부터 유추해볼 수 있다. 그는 선진국과 달리 개발도상국에서는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 이유를 개발도상국의 빈곤에서 찾고 있다. 쉽게말해, '배가 고플' 때는 그런 '사치스런' 문제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성장이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한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따져볼 여지가 많다. 이미 과거에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에서 환경문제가 낮게 나타난다는 사실 자체가 곧 '경제성장→환경문제 해결'이라는 도식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좋은 환경정책은 돈만 많으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도입된 서구식 경제성장 과정은 그 자체로 가속적인 환경파괴를 수반하며 지역간·계층간 불평등을 키운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강하게 나오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경제성장이 과연 환경문제 해결의 필수 전제조건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셋째로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통계 이용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롬보르는 총합적 수준의 통계, 특히 지구 전체나 개발도상국 전체를 평균내는 식의 통계치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포괄적 통계는 매우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평균치는 그 속에 매우 중요한 세부사항들을 감춰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전세계의 삼림 면적이 지난 50년 동안 줄어든 것이 아니라 전체 육지 면적의 30.04%에서 30.89%로 오히려 약간 증가했다는, 언론에 널리 보도된 주장을 한번 따져보자. 여기서 인용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통계자료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많지만 일단 이 문제는 접어두겠다. 그러나 설사 전세계 삼림 면적이 약간 증가했다는 얘기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는 삼림의 위치나 수종, 연령, 질 등에 대해 거의 말해주는 바가 없다. 예컨대 같은 기간 동안 북반구의 선진국에서는 삼림의 면적이 늘어난 반면 적도 부근의 열대림은 상당부분(대략 20% 가량) 줄어들었고, 특히 아프리카나 중앙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은 삼림의 면적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는 열대림이 생물다양성과 자원의 보고라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이다. 또한 많은 삼림들이 일단 벌채된 후 단일 수종의 조림지로 대체되고 있는데, 조림지는 애초의 삼림에 비해 생물다양성이나 가치의 측면에서 상당히 떨어진다(롬보르는 이런 사실들을 언급은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본다면 전세계적으로 '가치있는' 삼림의 면적이 상당히 줄어들었으며(환경단체의 열성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빚어졌음에 유의하라), 일부 지역이나 국가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삼림의 상태에 대한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단순히 전지구적 삼림 면적이 대략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위안거리로 삼을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지적한 세 가지 문제점은 롬보르 논지의 신뢰성을 상당한 정도로 잠식하며 때로 저자의 의도를 의심하게까지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근저에는 사실 이보다 훨씬 거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는 롬보르가 「내일의 문제들」이라고 이름붙인 5부와 연관이 크다. 그는 여기서 환경호르몬, 생물의 멸종, 지구온난화 문제가 과학자들이나 환경단체의 주장과는 달리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환경호르몬이 남성의 정자 수 감소의 원인인지는 분명치 않으며(남성들의 과도한 성행위가 그 원인일 수도 있다), 대규모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줄 만한 직접 증거가 없고(멸종 추정치와는 달리 멸종이 '확인된' 종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지구온난화가 파국적인 결과를 빚어낼지 모른다는 증거도 불충분하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서 제시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며 지구온난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메커니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롬보르의 태도는 일견 '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기 전까지 어떤 쟁점에 관한 판단을 조심스럽게 유보하는 것은 과학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훌륭한 덕목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불행히도 여기서 롬보르는 과학의 성격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오늘날 이미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충분한 반복 실험을 해본 후 확신이 섰을 때 이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과거의 아카데믹한 과학과 달리, 세계 전체를 거대한 실험실로 탈바꿈시킨 현대의 (규제)과학은 그러한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 오늘날의 '탈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 국면에서는 그 속에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수많은 쟁점들에 대해 빠르고 확실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젠가 충분한 증거가 쌓일 것으로 믿고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는 것이, 그런 식의 유보적 태도는 자칫 너무나 큰 위험부담 ― 공공보건의 위기나 파국적 환경재난과 같은 ― 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과학자가 '충분한' 증거를 찾아 판단을 유보하고 위험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매우 위험부담이 큰 결정을 조속히 내려야 함을 사회 전체에 알리고 모두가 참여하는 가운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책임있는' 태도이다(그리고 바로 이것이 롬보르의 주장에 대한 환경과학자들의 반박에서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변화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과학이 확실성과 보증을 제공해 줄 것으로 믿는 낡은 패러다임에 집착하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안전하고 단순한 세계를 향한 향수의 한 흔적"일 뿐이다.




출전: 『창비웹진』 28호 (2003. 10)

2014년 9월 2일 화요일

“과학과 기술의 분리부터 시작하자”

“과학과 기술의 분리부터 시작하자”
문화 속에서 과학 짚어낸 오세정 서울대 교수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8577
2014년 03월 17일 (월) 13:21:32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석학들의 문화강좌 ‘문화의 안과 밖’이 지난 8일 두 번째 주제 ‘공적 영역의 구성’으로 접어들었다. 첫 발표는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천문학부, 전 기초과학연구원장)가「과학과 문화-문화에 있어서의 과학의 위상」으로 시작했다. 오 교수는 한국사회가 과학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 인식하고 ‘기술’개발에 치중했다고 말했다. 과학은 문화이며, 그 출발점은 예술이나 종교와 같다고 주장하는 오 교수의 발표 일부를 소개한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천문학부, 전 기초과학연구원장) 
우리에게 과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과학은 주로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라는 인식이 강했다. 과학(science) 과 기술 (technology)이 합쳐진 ‘과학기술’이란 용어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한 단어인 듯 쓰이는 것이 대표적인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즉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과학과 기술’을 ‘Science and Technology’와 같이 병렬적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에서만은 ‘과학’이 마치 ‘기술’을 형용하는 단어 같이 쓰이는 것이다.
그러나‘과학’과‘기술’은 엄연히 다르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學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과학을 이른다’라고 정의돼 있고, ‘기술’은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이라고 정의돼 있다. 즉 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기술은 (과학적) 지식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주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쓰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는 마치 ‘과학 지식을 이용한 기술’이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과학 지식의 획득 자체는 목적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는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과학 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예산의 비중도 지금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주로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필요성 때문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예로, 보통 연구개발의 성격을 기초, 응용, 개발의 3단계로 구분하는데, 한국의 과학기술 투자는 주로 응용 및 개발연구에 집중돼 왔던 것이다.
과학은 기초연구의 성과물이고, 응용연구나 개발연구의 목표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OECD 국가들이 연구개발에 대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국제적인 기준인 프레스카티 매뉴얼에서는 기초연구를 ‘특정한 응용을 염두에 두지 않는 연구’라고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 즉 과학연구를 할 때는 특정한 응용을 목표로 삼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연구를 위한 연구’,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연구’인 것이다.
그러면 이런‘연구를 위한 연구’를 왜 국가는 세금을 써서 지원하는 것일까? 사실 먹고사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기초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오직 미래 과학기술 인력 양성에 필요한 만큼만 투자하는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도 얼마 전까지 마찬가지였고, 일본도 경제성장에 매진할 당시에는 비슷한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일본은 선진국들이 투자해서 얻은 기초연구의 과실만 따 먹는다는 의미로 한동안 국제사회에서‘기초연구 무임승차론’의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경제 동물(economic animal)’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커다란 혁신을 초래하는 획기적인 원천기술은 주로 기초연구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정보혁명을 통해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과 산업을 바꾼 인터넷 기술은 유럽과 미국의 소립자 기초연구의 산물이다. 또한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빵이나 수프가 부패하는 이유를 연구하다가 세균을 발견했고, 이 연구는 전염병 차단과 음식의 살균법으로 연결됐다.
기초연구는 그 정의대로 ‘특정한 연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연현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연구’로서, 주로 과학자들의 호기심이 연구의 동기가 된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낮과 밤은 왜 생길까’, ‘하늘이 파란 이유는 무엇일까’ 등 주위의 삼라만상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이 있고, 성장한 후에도 ‘우주는 어떻게 생성됐을까’, ‘생명의 근원은 무엇일까’등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계속 갖고 산다.
이러한 호기심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답을 추구하는 것이 과학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호기심은 문학이나 예술, 종교에서 갖는 호기심과 다를 바가 없고, 극히 문화적인 활동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기초과학 연구는 문학이나 예술과 별로 다르지 않게 소규모 독지가들의 지원을 받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과학 기술의 힘을 경험한 세계 각국 정부가 戰後에 과학기술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과학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고, 점점 전문화되면서 대중과 유리돼 마치 일부 전문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통해 과학에 의해 알려진 자연에 대한 진실들은 일반 대중들의 인식을 크게 바꿔 놓았고, 아마 앞으로도 과학은 이러한 역할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