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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3일 화요일

해방적 파국(Emancipatory Catastrophism): 그것은 기후변화 및 위험사회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울리히 벡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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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적 파국(Emancipatory Catastrophism): 그것은 기후변화 및 위험사회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 독일 뮌헨대 교수, 코스모폴리탄 연구소장 Ulrich Beck -
기후 변화는 전세계의 사람들 및 정부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이지만, 그것은 전세계의 사회 및 정치 질서를 변경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예상하고 상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형태일 것이다. 변화의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 있다.
우리들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정 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기후 변화의 시대에서, 근대화는 진보에 관한 것도 아니며, 대재앙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잘못된 대안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간(in-between)”에 관한 것이다. 우리들은 이것에 대한 단어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우리들은 일반적이며 과학적인 새로운 어휘를 필요로 한다. 나는 (전세계의 탈바꿈 또는 획기적인 변혁인) “탈바꿈(Verwandlung)”의 개념을 제안한다.
현재까지의 기후 변화에 관한 모든 논의는 그것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지의 여부와 우리가 그것을 중지시키거나 또는 포함시키거나 또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의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것이 시간에 매우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사실은 해결책에만 집중하였던 우리들의 방식이 우리들로 하여금 기후 변화가 이미 세상을, 세상에서 존재하는 우리들의 방법을, 세상에 관한 우리들의 사고방식을, 그리고 우리들의 상상 및 정치 행위 방법을 바꿔놓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변화에 관한 이러한 조건들 및 인식의 변화를 나는 탈바꿈(Verwandlung)이라고 정의한다. 개념적 세부 사항 및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이것을 통해서 내가 의미하고자 하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1)
첫 번째로, 기후 변화는 해수면 상승을 통해서 형성된 사회적 계층과 불평등의 근본적인 지형변경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는 세상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데 그 주요 경계선은 민족국가와 사회적 계층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가 아니라 오히려 전 세계를 개념화하는 다른 방식 그리고“삶”의 기회 그 안에서 생존의 가능성이다.
두 번째로,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받는 그러한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경우에만, 우리들은 기후 변화의 결과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들이 오늘 현재 그것을 이미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지구 온난화는 중요한 정치적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어진다.
세 번째로, 정치 및 사회과학 분야에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관점에 기후 변화가 어떻게 들어 맞는지 들여다보면, 우리들은 우리들이 “방법론적 민족주의”라고 부르고 있는 것의 한계를 알 수 있다. 각각의 문제가 계층 또는 정치에 관련되어 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들은 대부분의 모든 문제들을 국제 사회 내에 구성되어 있는 국가의 맥락에서 규정한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이것은 전혀 적합하지 않다.
네 번째로, 글로벌 위험 (이 경우에는 글로벌 기후 위험인데) 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을 우리들이 받아들이는 경우, 우리들은 이러한 개념의 논리 안에 이미 새로운 권력 구조가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위험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경우, 우리들은 가장 먼저 그것을 의사 결정 및 의사 결정자들과 관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위험을 떠안게 되는 사람들과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는 사람들 사이를 기본적으로 구분하여야 한다. 기후 변화의 경우, 이러한 그룹의 사람들은 완전히 다르며, 그들은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다.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위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관점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어떠한 구체적인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내가 조직화된 무책임(organized irresponsibilit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결정 과정과 결과는 완전히 서로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귀속되므로, 우리들은 처음부터 제국주의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들이 민족국가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문제에 관한 다른 관점을 취하는 경우에만 우리들은 이것을 관찰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코스모폴리탄 관점”(cosmopolitan perspective)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 연구 단위는 위험 공동체로서 국가적인 관점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을 포함한다. 즉 그것은 의사결정자들 그리고 그들의 의사결정이 공간과 시간 전체에 걸쳐 다른 사람들에 미치는 결과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탈바꿈(Verwandlung)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탈바꿈은 사회적 변화, 진화, 개선, 개혁, 개혁, 위기, 전쟁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의 방법을 바꾸는 방법이다. 그것은 부작용의 시대를 의미한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방법, 세상에 관한 사고방식, 그리고 상상 및 정치행위의 방법에 도전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방법론적 민족주의’에서 ‘방법론적 코스모폴리탄주의(methodological cosmopolitanism)’로의 과학적 개혁 (Thomas Kuhn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바와 같이)을 요구한다. 여기에 4가지의 주제가 있다.
첫 번째 주제: 글로벌 위험에 숨어 있는 해방적 부작용(Hidden Emancipatory Side Effects)이 있다.
두 번째 주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관한 사례 연구는 글로벌 정의(Justice)의 규범적 지평이 어떻게 지구화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세 번째 주제: 글로벌 위험은 21세기 세상에 대한 나침반을 제공한다.
네 번째 주제: 글로벌 위험은 세대의 범주적 탈바꿈을 강제한다.

1. 글로벌 위험에 숨어 있는 해방적 부작용

이 강의에서 나는 글로벌 위험에 숨어 있는 해방적 부작용이라는 탈바꿈의 한 중심적인 방법 또는 변화의 모양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글로벌 위험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공동 생산 및 공동 배분에 관한 것이다. [한상진과 심영희 2010: 동아시아를 위한 제2 근대화의 재정의 특집:British Journal of Sociology 61(3): 465-488; 한상진 2014: 동아시아에서의 제2 근대적 변혁:Ulrich Beck과의 적극적 대화, “Socio” 저널에 출간 예정인 논문 참조]. 이 강의에서, 나는 중요한 한 걸음을 더 나아가고자 한다. 나는 나쁜 것에 관한 논의가 “공통의 좋은 것”을 생산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이, 이 주장은 지금까지의 세계 위험 사회 이론의 핵심에 있던 것 이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좋은 것의 부정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나쁜 것의 긍정적인 부작용에 관한 것이다. 그것들은 공통의 좋은 것의 규범적 지평을 만들고 있다.
인류에게 미치는 글로벌 기후 위험의 영향력 기대치는, (적절한 정치적 해법 및 조치가 실패하리라는 모든 비관주의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좋다는 포스트모던적 관점에 대해서, 새로운--유토피아적이 아니라면 반유토피아적인-- 의미를 이미 부여하였다. 기후변화 또는 금융 위기와 같은 글로벌 위험들은 21세기의 세상에 대한 새로운 방향 또는 새로운 나침반을 우리들에게 제공하였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부작용으로 치부하였던 위험들에 중심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기후 변화는 단지 기후 변화만이 아니며, 그것은 동시에 더욱 중요하고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그것은 사고방식, 생활방식 및 소비자의 소비 습관, 법률, 경제, 과학 및 정치의 개혁이다. 기후 변화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능의 개혁으로, 기후 정의(Justice)(부당성-Injustice)의 문제로, 미래 세대의 권리에 관한 것으로 또는 국제 정치 및 국제 무역의 사안으로, 또는 심지어는 자멸적인 자본주의의 지표로 표현하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의도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글로벌 위험의 해방적 부작용의 극적인 위력에 관한 것이며, 이것은 세상에서의 우리들의 존재, 세계의 전망 그리고 상상 및 정치 행위를 이미 바꿔놓았다.
글로벌 기후 위험은 근대화의 재탄생을 예고할 수 있다. 기후 과학자들은 자멸적이며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개혁, 시기가 한참 늦었지만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개혁을 준비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중국이 무역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 거래의 급격한 증가를 장려하고 있는 민첩성은 오늘날 이미 반대자들과의 공진화(Co-Evolution)의 사례가 되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미국, 유럽 및 아시아에서의 서구 기후 회의론자들은 그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
아마도, 모든 핵발전소들이 일본보다 안전한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핵발전소들을 가동 중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즉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용된 연료봉의 최종 폐기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리고 이러든 저러든 태양 에너지 및 풍력 에너지의 재개는 의미 있는 근대화의 재개이다.
어쩌면 기후 변화의 상투적인 주제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지금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심지어 동원(Mobilization)의 형태로서 이는 신성한 척 하는 국가적 자폐적 세상을 대재앙이 곧 발생할 것이라는 시각으로 열어젖힌다. 글로벌 기후 위험은 지구 종말적 대재앙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서, 지금까지는 일종의 “해방적 파국(emancipatory catastrophe)”이다.
세계 위험 사회의 해악의 해방적 부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변화는 3가지의 개념적 렌즈를 통해서 파악되고 분석될 수 있다. 첫 번째로, 세계적인 대재앙의 예상은 인간의 존재 및 문명에 대한 (성문화되지 않은) 신성한 기준을 침범한다. 두 번째로, 그로 인해서 인류학적 충격을 일으키며, 세 번째로 사회적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인식 및 행동의 프레임으로서의 새로운 규범적 지평이 등장하는 방법이다.

2. 허리케인 카트리나: 기후 정의(Justice)에 대한 규범적 지평이 어떻게 지구화되고 있는가

인류학적 충격이 발생하는 때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식에 지울 수 없는 표식을 남기는 끔찍한 사건에 처해있다고 느낄 때, 그들의 기억을 영구적으로 만들 때, 취소 불가능한 방법으로 그들의 미래를 변경시키게 될 때 등이다. 인류학적 충격은 세상에서 존재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가져온 인류학적 충격은 유용한 사례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숨겨져 있는 해방적 부작용은 허리케인이 2005년 8월 29일에 루이지애나 해안을 강타하였을 때 드러났다. 이것은 그 사건에 관하여 문헌 자료가 어떻게 반영했는지에 명백히 드러난다. 카트리나에 관한 담론의 분석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분명히 보여주며, 실제로, 환경 보호의 과제 및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의 역사라는 이전의 별도의 2개의 담론이 하나로 합쳐지는 사회적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사례는 “인종의 홍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Quincy Thomas Stewart와 RashawnRay이다. 그들은 “이러한 자연 재해가 식민지 시대 이후 미국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대재앙, 즉 인종의 홍수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New Orleans(뉴올리언스) 주민들의 삶을 관통한 허리케인 및 뒤이은 홍수와 같이, 인종의 개념은 미국인들의 사회적 제도에 침투하여 인종구분이 개인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또는 견해의 폭과 삶의 기회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종은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미국인들이 그들의 사회적 세계를 보고, 경험하며 평가하는 일차적인 렌즈 중 하나이다”. [Quincy Thomas Stewart 및 Rashawn Ray 2007: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인종의 홍수 인종, 성별 및 계층 14 (1-2): 39].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전까지는, 홍수에 대한 불균형 및 난공불락을 기록한 상당한 양의 연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홍수는 환경 정의(Justice)의 문제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파괴적이지만 매우 불평등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인종적 홍수”라는 대중 및 학계 모두의 성찰을 통해서 강력한 노예제도의 인류세(Anthropocene), 제도화된 인종차별을 되불러 오고, 그것을 취약함 및 홍수와 연결시키게 되었다.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을 연결시키는 이러한 종류의 연결은 해악의 코스모폴리탄 부작용이 실제로 발생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부작용의 불가시성이 가시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미국의 환경 정의 학계 및 활동가들은 그들의 관심을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위험으로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연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학 사이의 차이점들을 연결시켜야만 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코스모폴리탄적 관점의 사회적 탄생 및 활동이며 정의의 지평이 경험적으로 파악되고 연구될 수 있는 방법이다. “작지만 점점 증가하고 있는 다수의 문헌 자료들이 현재 미국 및 다른 장소에의 홍수의 위험을 환경적 불평등 및 불공정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예, Bullard 및 Wright 2009; Dixon 및 Ramutsindela 2006; Ueland 및 Warf 2006).”[Gordon Walker 및 Kate Burningham 2011: 홍수 위험: 취약성 및 환경적 정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불평등의 증거 및 평가 31(2): 217)].다시 말해 글로벌 정의의 프레임인 새로운 규범적 지평을 등장하게 만든 것 특히 해악의 부작용으로써 공통의 좋은 것을 생산한 것은 사회적 카타르시스이었다. 카트리나는 기후적 재난과 인종적 불평등이 밀접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였다. 이것은 기후 변화와 글로벌 사회 정의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명확하게 만들었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일으킨 경험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만드는 성찰의 과정을 만들어낸다. 도시의 홍수를 글로벌 정의의 문제를 가진 인종적 불평등과 연결되어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듯이. 이것은 내가 “사회적 카타르시스” (social catharsis)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카타르시스는 자동적으로 발생하고 사건 자체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오인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함에 있어서 활동가들의 “문화적 작업”, “의미작업 (meaning-work)” 그리고 변혁 작업에 성공적으로 참여하는 담지자 집단의 산물이다.
[Fuyuki Kurasawa 2007: 글로벌 정의의 작업 ? 규범으로써의 인권 Cambridge?대학출판부;Fuyuki Kurasawa 2004: 아래로부터의 코스모폴리탄주의: 대안적 세계화 그리고 구속력이 없는 연대의 생성 유럽 사회학 기록보관소 45(2): 233-255].
이러한 의미 작업은 다음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위협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망, 건강, 경제적 파산, 도덕적 황폐함인가? 희생자들은 누구인가? 그것들은 참여하는 대중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하게는, 그것들이 현재 어디에 있든 관계없이, 글로벌 공동체 및 개인들, 공동체 및 기관들은 이에 대응하여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문화적 작업은 단순히 사건들의 표현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는 사건들이 대재앙의상상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그렇게 인식될 수 있는 상징적인 환경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적 사건 및 대중매체 사건과 밀접하게 관련된) 기후 문제에서 또는 기후 미학(climateaesthetics)에서 그리고 (만화, 블록버스터 영화, 공상 과학 영화 등) 대중 문화에서 표현되는 바와 같다, “예술 행위는 이러한 “위험한” 코스모폴리탄주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으며, 전개되고 있는 기후 문제 및 우려에 미적 음향과 “가시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코스모폴리탄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Line Marie Thorsen 2014: 예술 및 기후변화: 미학의 세계화/세계화의 미학? 미발표 논문, KiyomitsuYui 2013: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기후변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부터 “이것은 후쿠시마가 아니다”까지, FMSH-Working-Paper-2013-35, 2013년 6월;Chou Kuei Tien 2013: 대만에서의 기후 변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그 패러다임의 이동 에너지 정책 61:1252?1260 참조]
“변혁 작업”의 사례는 Gordon Walker에 의해 환경 정의 프레임이 주제, 배경 및 대륙에 걸쳐 어떻게 확산되고 분산되었는지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제공되었다. [2009: 분포상의 근접성을 넘어: 환경 정의의 다중 공간성 탐구, Antipode 41(4): 614-636]. 정의가 주장되고 있으며 정의담론이 표현되고 있는 공간-문화적 그리고 제도적 맥락은 미국을 벗어나서 지구화가 되고 있으며,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London 2003), 대만 (Fan 2006), 호주 (Hillman 2006), 영국 (Agyeman및 Evans 2003), 뉴질랜드 (Pearce 등, 2006), 스웨덴 (Chaix 등, 2006), 이스라엘 (Omer 및 Or2005) 그리고 전세계적인 배경을 (Adeola 2000; Newell 2005) 포함하고 있다.
한상진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에서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과거극복의정의 또는 어떻게 과거를 다룰 것인가에 관한 질문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일본이 명확한 사례이지만, 문제는 실제로 더 넓고 깊다. 동아시아에서는 인권의 체계적인 침해, 이념적 적대감, 그리고 민족주의에 대한 과도한 몰두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2차 근대화 변혁에 관하여 탐구할 필요가 있는 첫 번째 문제점은 체계적인 폭력의 사용, 제도적인 부와 권력의 추구, 그리고 공격적인 민족주의 동력을 통해서 역사 속에 깊이 뿌리 박힌 근대화의 원초적이며 자멸적인 경향이 통제될 수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그러한 경우, 보호 장치는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의 여부이다.” [한상진 2014: 동아시아에서의 2차 근대화: Ulrich Beck과의 적극적 대화, “Socio” 저널에 발표될 논문: 7]

3. 21세기를 향한 나침반

Verwandlung 혹은 세계의 탈바꿈은 의도적이며, 목표 지향적이며, (당 또는 국가 사이의) 이념적 투쟁의 일부 및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관한 사례 연구를 통해서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과 같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의 마음의 벽의 뒤에서 잠재적으로 진행 중인 가능성이며, 그것은 (국가 및 국제) 법률과 사회과학적 지식 생산에 의해 “자연적으로” 그리고“스스로 입증되는” 것으로 구축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야기의 다른 부분은 대재앙의 인류학적 충격이
“코스모폴리탄 계기”를 생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장경섭 2010: 차 근대의 조건? 내재화된 성찰적 코스모폴리탄화로서의 압축적 근대화 특집: British Journal of Sociology61(3): 444-464 참조] 이러한 카타르시스의 순간에, 제도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부작용의 마음의 벽이 붕괴되고 있으며, 우리들은 코스모폴리탄적 지평이 어떻게 등장하고 지구화되는지 문화적 사실을 경험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나는 철학적 규범적이고 유럽 중심적인 코스모폴리탄주의의 면에서 주장을 펴지 않았다. 나는, 기후 변화가 신성한 것의 윤리적 침해라는 기본적 느낌을 경험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것은 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국 등에서의 규범적인 전통에 따라 달라지고, 법률, 기술, 도시의 변화, 국제, 도시간 협상 등 모든 종류의 규범적인 기대 및 발전에 대한 가능성을 창출한다. 이것은 규범적인 기대에 대한 코스모폴리탄적 지평을 향한 탈바꿈(Verwandlung)의 위력이며 직선적인 정치적 해답이 없다. 이것은 (사회 및 정치 지도자 그리고 사회과학적 관찰자들에게) 비판적 관점이다.
이러한 비판적 관점은 명확히 설명되어야 한다. 그것은 동시에 경험적이며 규범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적 관점의 규범성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것은 “가치 관계”의 권력에 관한 것이다 (Max Weber는 그것들을 가치 관계(Wertbeziehungen)라고 불렀다.) 이것들은 가치가 부여된 용어, 문장 및 명시적인 도덕적 언어를 사용하는 가치 판단과 혼동될 필요가 없다. 그것들의 실체는 시간-진단 이론의 프레임에서 관찰자의 관점으로부터 연구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험적이다.
기후 정의에 관한 논의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때로는 이론적으로 문제가 많은 종류의 장애물들을 드러내었다. 하나의 사례는 기후 정의의 문제가 생존하고 있지 않는 제외된 세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들이 가장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제기된다. 아직 생존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의사 결정에 있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혀 낼 수 없는 국민들의 삶의 조건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의의 지평을 어떻게 다루고 설명할 것인가? 기후 변화 위험에 의해 불공정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종종 특정하여 어느 누구 에게도 불평을 할 수 없다. 그들은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요구할 수 없다. 그들은 단지 “달 보고 짖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이것은 기존의 국가 법률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고 있으며, 제외된 사람들을 다시 제외시키고 있다.
동시에, 기후 정의에 대한 비전은 조만간 식민지의 역사적 패턴의 지속과 (법적 행위자인) “국민”과 “환경” 모두의 법적 구성과의 조밀한 연결 관계 및 역학 관계를 인정하여야 한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국제법의 식민지적 토대와 서구의 사법적 상상의 철학적 토대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음을 발견한다. 결과는, 경험적으로 그리고 따라서 규범적으로 위태로운 것들은 생존 질서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침해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은 “종속 이론”과 “코스모폴리탄화 이론” 사이의 차이점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식민지 역사의 불리한 쪽에 있었으며 고통을 당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러한 개인, 공동체 및 국가들을 지목함으로써 기후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글로벌 기후 위험에 의해 강제되는 코스모폴리탄화가 정확히 그러한 사실에 관한 규범적 지평 및 성찰을 생성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사실로서), 그 이상으로(경제, 법률 및 정치 등의) 제도의 개혁이 현재 긴급하고, 도덕적으로 필수적이며 정치적으로 가능하다는 기대치 (또는 종종 확신)을 생성한다. 비록 회담 또는 정치에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나는 이러한 비판적 관점의 경험적 세계화에 기반하여 우리들이 기후변화를 기술관료 국가적으로 (그리고 초국적으로) 길들이는 것, “녹색 경제”에 관한 탈 정치적 합의, 기술 혁신 등을 비판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것은 사건들이 정치 경제적인 사안이 되는 경우이며, 본질적으로 기후 변화와 관련되어 있는 코스모폴리탄적 관점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탈 정치적 유럽의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새로운 글로벌 지형을 포함하고 동원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국제적인 권력 관계의 탈바꿈의 핵심적인 요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Verwandlung 또는 탈바꿈도 위협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을 통해서 과거가 다시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 결정을 인도하였던 규범 및 책무가 다시 평가되고 있으며, 위협적인 미래에 대한 상상을 통해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것으로부터 자본주의, 법률, 소비자 중심주의, (예를 들어, IPCC 등의) 과학 등에 대한 대안적 아이디어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교조주의적인 방식에서 일상의 규범 생성에 대한 자기비판적인 접근도 포함하고 있다. 기술 관료적인 환경 정치의 강철 우리에서 탄소 배출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되고 있다. 수동 칫솔대신에 전동 칫솔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가? 기독교의 구원 개념에서는 낙원에 우유와 꿀이 흐르고 있지만, 지상에서 흐르는 우유는 곧장 환경적 사망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기후 살인자” 젖소는 우유 1리터 당 거의 1 킬로그램에 해당하는 수백 리터의 메탄 가스를 매일 방출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심지어 이혼도 신 앞에서뿐만 아니라 환경 앞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이유는? 기혼 가구는 독신 가구보다 더욱 환경적으로 건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바라보는 경우, 기후 변화 위험은 이산화탄소 측정치 및 공해 방출 이상의문제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기 인식의 위기를 경고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글로벌 기후위험은 세상에서 존재하고, 보고, 듣고 활동하는 새로운 방법을 생성하고 있다. 매우 모순되고 상반되며 열려 있으며 예측이 가능한 어떠한 결과도 없을 수 있지만.그 결과, 21세기에 대한 방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포스트모던적인 “무엇이든 좋다”와는 다른 것이며, 잘못된 보편주의와도 다르다.
이것은 비판 이론의 새로운 변종으로서 그 자체로는 규범의 지평을 설정하지 않지만 경험적 분석으로부터 기준을 설정한다. 따라서, 그것은 자아비판적인 세계 위험 사회의 규범적 지평에 대한 경험적 분석이다.

4. 세대의 탈바꿈

글로벌 위험 세대가 있는가? 전세계의 탈바꿈은 세대들 사이의 단절에서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가?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상을 하고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적 세대 사이에 서로 다른가? 세상의 탈바꿈은 세대 간의 서로 다른 개념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 현존하는 미래의 글로벌 위험에 직면하여 세대 간에 서로 다른 자아인식이 있는가?
Karl Mannheim (그리고 Pinter)에 의해 개발된 세대 간의 문제점 논의에 근거하여, 나는
Mannheim이 상상하고 있는 동적 역사 사회학이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적 전환이라는 생각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묻는 것이다.
Karl Mannheim은 사회적 계층화(social stratification) 양식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세대에 초점을 맞추고, 계급(class)과 대비되는 세대(generation)를 강조하고 있다. 세대에 대한 그의 인식에 관하여 특징적인 것은, 예를 들어, 그가 “동적 사회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시간의 역사 사회학 내에서 그것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강의에서 내가 개발한 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Mannheim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그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첫 번째로, 우리들은 그가 사회 계층의 탈바꿈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계급 개념을 세대의 개념으로 범주적 탈바꿈하는 데서 이것을 포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그것을 통해서Mannheim은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질서 (계급)의 재생산이론에서 그것(세대)의 변화이론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것은, 경험적 실체에서의 사회적 지식 및 제도뿐만 아니라, 흐름과 동력의 의미에서, 사회학적 개념의 이동을 찾고자 하는 그의 전략에서 명백하다.
Mannheim은 선형과 연대순의 아이디어를 벗어나는 역사적 시간의 사회학을 개발한다. 이러한 사고의 중심에는, “시간 세계(time worlds)”라고 불릴 수 있는 공존의 사상이 있다. 이것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동일한 시점(same time)”에 살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동종의 동시성(homogenous simultaneity)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Karl Mannheim은 ‘Ungleichzeitigkeit des Gleichzeitigen’ (동시적인 것의 비동시적 혼재)이라는 역사학자 Pinter의 아이디어 즉 탈바꿈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있다. Pinter는 예술과 양식의 시대개념을 반대한다. 그는 모든 시점에서 예술의 역사적 시대와 양식은 동시에 그리고 서로 근접하여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별개의 폐쇄된 역사적 단위로 잘못 인식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Pinter는, 진화 또는 진보의 논리에 따라 하나의 시대가 다른 시대에 의해 교체된다는 시간 및 역사의 아이디어를 반박하고 있다. 예술 역사학자로서, 그는 신낭만주의적인 비전의 탈바꿈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그에게 있어서는 예술적 창의성에 의해 삶과 죽음이 극복될 수 있는 신화적 아이디어인 “활력(entelechy)”의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Mannheim은 Pinter의 사고에서 특정한 요소들을 채택하여, 자신의 사회학적 세대이론을 위해 그것들을 비판적으로 사용한다. 그는 세대를 구성하는 것은 실증주의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의 패턴 또는, 이 강의의 표현으로는, 세상의 탈바꿈의 패턴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Mannheim의 경우에 있어서, 세대의 개념은 변화 및 탈바꿈에 대한 동의어이다. Mannheim의 관점에서는, 세대 간에 상당한 차이와 분열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월 스트리트 점령 운동(Occupy), 아랍의 봄(Arab Spring), 디지털 세대, 남부 유럽의 실직자 세대 및 “자생적”(home-grown) 근본주의자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서로 다른 지평 및 세계관 사이의 상호작용 및 충돌을 의미하고 있다.
Mannheim은 3가지의 개념들의 도움을 통해서 세대들이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첫 번째는 “세대 위치(generation location)” 개념이다. 이 개념은, 세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에, 사람들은 먼저 세대의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세대는 용이하게 일반화 될 수 없는 역사적인 시점에서의 실제적인 위치에 대해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개념은 “세대 연합(generation association)”이다. 이 개념은 세대의 구성원들이 그들 자신을 형성하고 그들이 공유 감각을 설명할 수 있는 공동의 운명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 개념은 “현실적인 세대(actual generation)”이다. 이것은 세대의 구성원들이 공동의 문제의식(common sense of problem)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Pinter와 함께 그리고 그와는 다르게, Mannheim이 “활력(entelechy)”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Mannheim은 공동의 문제의식이 공동의 대응을 의미하지도 않으며 이와 동일하지도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정확하게는 서로 다른 세대간의 위치 및 연합 때문이다. 이 개념은 세대의 구성원들이 사회적 행위자들이라는 점을 추가로 의미한다. 그들의 통일성은 그들의 행위로부터 발생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대는 정치적이다. 그들의 변화의 원동력은 그들이 저항에 대항하여 공유하고 있는 이상향에 근거하고 있다.
Mannheim의 세대이론에서 매혹적인 점은, 행위에서 자신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가 세대를 이해한다는 점이다. 세대에 대한 그의 생각은 공동의 문제의식이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그는 공동의 역사 합리성을 가정하고 있다. 나의 의견은-코스모폴리탄적 전환에서는, 공동의 문제의식 즉 역사적 합리성은 글로벌 위험에 의해 형성되고 변형되고 있다는 것이다.
Mannheim은 세대에 대한 변화의 원동력으로서의 이상향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차이점은, 글로벌 위험은 인류의 존재에 관한 것이므로, 글로벌 위험은 상당한 동원력을 가지고 있는 반이상향적 시각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글로벌 위험은 이념과 정치적 프로그램을 벗어나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다. 글로벌 위험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한 핵심은 나쁜 것이 공통의 좋은 것의 규범적 지평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것은 Mannheim이 주장하는 세대분열의 아이디어가 급진화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위험은 코스모폴리탄화 (cosmopolitization)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코스모폴리탄화는 세계의 대립과 적대감이 외면화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제도에서부터 개인의 삶까지 모든 사회 및 정치 차원에서 충돌한다. 그와 같이, 세대의 탈바꿈은 이러한 코스모폴리탄화, 즉 이러한 적대감의 충돌이 세대 간의 ‘Sinnhorizont’(의미의 지평)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대의 변화는 단지 정치적 견해, 사회적 불평등의 상황, 충돌 및 위기에서의 차이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상상을 하고 정치행위를 하는 것의 차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코스모폴리탄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세대를 함께 유지하는 것은 글로벌 위험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성찰 및 반성이다. 이러한 성찰 및 반성은 예를 들어, 인류의 존재위협과 같은 글로벌 위험에 직면하여 Mannheim이 “활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코스모폴리탄적 전환”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21세기에 대한 사회학을 어떻게 다시 만들 수 있는가? 사회학의 코스모폴리탄적 전환의 중심에는, 즉 글로벌 위험 및 코스모폴리탄 상황이 어떻게 사회학의 기본적 개념에서의 의미의 변화로 들어가는지에 있어서는 ?예를 들어, 계층에서부터 위험 계층, 위험 국가, 위험 지역으로, 국가로부터 코스모폴리탄적 국가로, 세대로부터 글로벌 위험세대로, 파국으로부터 해방적 파국으로, 합리적 자본주의로부터 자멸적 자본주의 등으로-- 세상의 탈바꿈 과정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북반구와 남반구의 패러다임,“서구”와 “나머지 지역”의 신 자유주의적 주장에 더 이상 매몰되어 있지 않고, 알려져 있지 않은 국경관계에서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글로벌 타자들도 동시에 포함하는 탈바꿈 과정이다. 그것들은 새로운 구조적 형태의 코스모폴리탄 연구에서 (진단적, 중간 범위의) 코스모폴리탄적 이론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 즉 나의 동료들인 Elisabeth Beck-Gernsheim 교수, AndersBlok 교수, Daniel Levy 교수, Dr Sabine Selchow, NatanSznaider 교수, Line Marie Thorsen교수, David Tyfield 교수, Ingrid Volkmer 교수, Dr Mao Zhifei 및 내가 기후 변화에 관한 ERC(유럽연구이사회) 프로젝트 에서 실행하고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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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ookilbo.com/v/367b90947bec48ea94e2fbeb2ad1c7f5

위험사회' 울리히 벡 교수가 본 한국사회

‘위험사회’의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코스모폴리탄 연구소장)는 ‘세월호 침몰 참사’가 한국 사회에 던진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까.
벡 교수가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중민재단,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국회기후변화포럼, 기후변화센터가 여는 ‘2014 서울 국제 학술대회’에서 공개 강연에 나섰다. 벡 교수가 들고 나온 주제는 ‘해방적 파국, 기후변화와 위험사회에 던지는 함의’다.
‘해방적 파국’은 벡 교수가 지난해 독일 포츠담 워크숍에서 쓴 개념이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에 대해 “기후 변화를 둘러싼 우울한 종말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의 관심을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 전망으로 이끈다”며 “위험사회의 징후들이 너무도 깊게 만연해 삶의 안전과 더불어 일종의 해방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이 큰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벡 교수는 21세기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갖는 해방적 파국의 의미와 세월호 침몰 참사라는 전례 없는 비극을 겪는 한국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벡 교수의 강연은 오후 2시 45분부터 시작됐다.
또 그에 앞서 한상진 교수는 ‘울리히 벡 교수의 ‘해방적 파국’ 분석을 한국사회에서 해독하는 방식’이란 주제로 한국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벡 교수의 이론에 대해 강연했다. 한국일보는 온라인을 통해 해당 강연 내용을 상세히 전한다.
울리히 벡 교수
울리히 벡 교수. 연합뉴스

[오후 2시 40분부터]

◆해방적 파국: 그것은 기후변화 및 위험사회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ㆍ코스모폴리탄 연구소장
안녕하세요(한국어로, 좌중 웃음)
먼저 환대해주신 데 감사의 말씀드린다. 강의 시작하기 전에 제 강의에 대해 훌륭한 해석 해주신 한상진 교수에게도 감사의 말씀 전한다.
제가 시작하기에 앞서 셰익스피어의 한 말을 인용하려고 한다. ‘시간이 어긋났다’는 말이다. 여러분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이지? 라고 질문하면 가장 평범하고 솔직한 답은 ‘전혀 모르겠다’는 것일 것이다.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모르겠다.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질문은 ‘어떻게 세계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해할 것인가’이다. 이에 대한 제 답변은 간단하지만 강연 하게 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해 질 것이다.
현재 우리는 세상의 변화, 즉 탈바꿈을 경험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것을 잘 표현할 만한 예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제가 말씀 드린 탈바꿈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에 걸맞은 영어 표현이 없었다. 번역된 한국어 설명 보고서야 영어 표현을 찾았다. 이것이 바로 코스모폴리탄적 접근이 아닐까 한다.
제가 이 탈바꿈과 관련해 말씀 드리고 싶은 측면은 지구 종말론적인 측면이 아니라 인식적인 변화에 따라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탈바꿈 과정과 관련해 한가지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여러 가지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그 관계 중에서도 기후변화와 위험사회, 그 둘과의 관계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씀 드리겠다. ▶ 울리히 벡 강연전문 보기
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 교수가 '해방적 파국, 기후변화와 위험사회에 던지는 함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오후 3시 52분부터 자유토론]

*플로어 질문에 벡 교수가 답변
사회자: 22명에게 질문 들어왔다. 번역하기까지 시간 오래 걸릴 것이다. 토론 생동감을 통해 일문일답으로 벡 교수 반응 듣도록 하겠다. 그래서 제가 호명하는 분은 가급적 짧게 하나의 요점, 하나의 질문만 해달라. 시작하겠다.
Q.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위험 상황에서 해방적 파국이라는 희망적 전망 열어주신 것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모두가 기후변화를 해방적 파국의 기회로 삼거나 그렇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세대를 굉장히 중요한 문제 해결의 주체로 보고 있는데 해방적 파국으로서 기후변화가 작용하기 위해서는 누가 어떤 식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작용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하다.
A. 어려운 질문 감사하다. 여러가지 많은 문제를 맞고 있다. 우선순위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하고, 어두운 위험이 그나마 많은 관심 받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라는 것은 보통 핵 에너지 위험과 많이 비교되기도한다. 기후변화 해결하기 위해서 핵 에너지 이용해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이 있는데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후변화 여전히 중요한 사회 문제다. 사회 측면에서 보면 기후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 부작용에 대해서만 역점 두고 있다. 여러 정의들 간의 경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개념의 권력적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Q. 역사적 관점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ppm 초과한다. 그래서 지구 종말이 다가왔다는 우려한다. 산업혁명 전에도 지구 종말 왔다는 부정적 견해 있었지만 잘못된 주장으로 드러났다. 이런 지구의 기후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A. 저는 파국과 파국에 대한 예상과 기대 그 둘 사이 구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파국은 이미 발생한 것이고, 다시 말해 그에 대응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이 문제는 기후 과학자들에게도 어려운 문제다. 기후과학자들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파국에 대한 기대, 예상이 글로벌 위험에 대한 파국이 발생했을 때 어떤 대응도 할 수 없다고 말씀 드릴 수 있다.
8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위험사회' 저자 울리히 벡 교수의 공개강연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한 세가지 질문 한꺼번에 받고 답변]

Q1. 허리케인 카트리나 얘기가 나오면서 단순히 홍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국 사회 고질적인 인종차별 드러내는 결과 가져왔다고 했는데, 세월호 참사도 참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민관 유착, 시이오의 불법행위나 도덕적 해이 등이 드러났다. 이를 바꾸기 위한 탈바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문제점 바꿀 수 있는 탈바꿈의 동력은 무엇인가.
Q2.해방적 파국 이론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탈바꿈 현상이 기후 위험이 아니라 인위적인 재난 위험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 사건에 견줘서 설명 부탁한다.
Q3.세월호 참사는 조직화된 무책임을 표상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고 또 그를 수습하면서 정부의 무능, 기업의 탐욕이 드러나고 보도되면서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깨달음도 얻게 됐다. 이것이 교수가 말하는 탈바꿈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A. 세가지 질문이 모두 관련성 있다고 보니 한꺼번에 답변하겠다. 세월호 참사는 아주 특별한 재앙이기도 하고 제가 말한 상황과 깊은 관련성 있다. 참사 발생하면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먼저 국민들이 분노 했고 그 다음에는 소위 정부의 정치학인데, 이좋은 질문에 대해 나쁘게 답변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다 보니 더 나쁜 결과를 낳게 되고 정부의 무능과 무지를 드러내게 됐다.
그리고 두 번째로 국민들이 분노에 더해 깨닫는다는 거다. 실상에 더해 정치적 결정, 처리 방식, 그 결정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데 대해 국민들이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 정치와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제도와 정치인, 정치제도 자체에 대해 회의 갖게 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회의가 정치와 제도에 위협이 되고 정치와 제도의 정당성 약화하는 결과도 가져온다.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 사태 잊게 되면 조용해지게 되면 정치인은 과거의 관행으로 돌아가 과거 답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험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정치와 제도의 정당성 약화가 강해지면서 정치 경제 제도에 영향 미치게 될 것이다.
아까 질문 중에 탈바꿈의 동인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자동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지 않는다. 여러 그룹, 여러 요인에 달려있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또 시민이 이런 사태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런 사건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비슷한 사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한 번 국민들이 분노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 반복되면서 탈바꿈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Q.경제학적 관점에서 질문한다. 변화 예측할 수 없는 시대라고 정의했지만 산업계가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A.기본적이고 흥미로운 질문이지만 짧게 답하겠다.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해 계량적으로 측정할 때 기업 차원에서 실시하는 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만 하고 있다. 국가간만 비교를 하지 산업이나 기업 단위로 측정하거나 비교하지는 않는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책무성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기업이 산업단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런 글로벌 리스크를 기회로 포착해야. 새로운 시장, 기술 창출의 기회로 봐야한다. 산업이나 경제도 배운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기업이 기후변화 자체를 부인할 경우엔 성공의 기회 없다.
Q.동아시아에 대한 교수의 생각이 궁금하다. 어떤 가능성 가졌고 위험 극복에 어떤 강점 있다고 보는가.
A.동아시아 상황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왜 지금까지 아시아연합 구축하고자 하는 현실적 정치적 시도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아시아연합 구축 동인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국가가 맞고 있는 공동의 위협이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의 해답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아직 왜 그런 시도가 없었는지 이해되지 않아. 물론 어렵다는 걸 안다. 2차 세계대전 때문에 유럽연합 창출되리라는 것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쟁 아픔 극복하고 만들어졌다. 아시아연합도 이와 다른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Q.저는 한국의 20대 대학생이다. 한국사회의 현 20대는 위험 사회에 대한 개념도 잡혀있지 않고 대처능력도 부족하다. 이에 앞으로 한국의 20대가 앞으로 위험 사회를 극복할 수 있을지 고견을 듣고 싶다.
A. 20대가 위험사회에 대한 인식이 낮다고 보지 않는다. 비슷한 질문을 여러 대륙 여러 국가의 젊은 세대에게 했다. 두 가지 놀라운 사실 알았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여러 젊은 세대에 질문을 했는데, 환경에 대한 인식 가장 높다는 걸 알았다. 독일 젊은 새대들이 생각보다 낮았고 아시아 아프리카가 생각보다 환경에 대한 인식 많았다. 고무적인 건 젊은 세대의 정보행동이다. 현지뉴스에 대해 관심 갖지만 관심 있는 뉴스 3분의 1은 글로벌 문제에 대한 것이다. 세대적 문제에 대해 조사했는데 이것이 바로 젊은 세대에 대해 관심 갖는 이유다. 젊은 세대는 생태 등 글로벌 이슈에 많은 관심 갖고 이것이 종국에는 탈바꿈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Q. 한국에 대한 질문이다. 해방적 파국이라는 설명 구조에 한국사회가 얼만큼 노출 되어 있다고 보는가.
A. 한국적 상황에 대해 자세히 모르지만 답하면 해방적 파국이란 개념이 해결책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문화적 비관주의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기후 변화 과학자에 대해 말하면 이들은 기후 변화에 대해 아주 비관적 태도 갖고 있다. 이들의 비관주의가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 하지만 사회학자는 다른 접근방법 취한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 실태를 보고 해결책 모색하려고 한다. 한국서도 이런 노력과 시도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Q. 나는 바로 그런 비관주의자다. 기후 변화로 탈바꿈 일어나려면 좀더 시간 필요하지 않을까? 인류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은 현 사회 시스템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주 강력한 무기 가졌기 때문인데 중독이라는 이름의 쾌락이다. 저는 기후변화 문제에 직면한 이후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이슈에 사람들 눈 끌어오기가 힘이 든다. 기후 변화도 자극으로 받아들여서 자극적 이미지에 충격 받고 분노, 행동하려고 하지만 다른 자극이 주어지면 바로 눈길을 돌린다. 꾸준한 행동 이끌어 내기가 힘이 든다. 교수님은 스마트폰을 밤새 본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하나가 재정 러시아의 차르보다 더 많은 유희를 준다. 요즘 세대는 글로벌 이슈나 자극 마저 유희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나.
A. 공감한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쉽게 잊는 경향 있다. 기후변화 시간이 중요한 문제다. 비관적 상황 말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제도적 메커니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소비 패턴 바꾼다고 가능한 건 아니다. 법을 바꾸거나, 책무성을 저해하는 방식을 바꾸거나, 정부가 자신들 결정 책임지도록 제도적 메커니즘 변화 필요하다. 다 해봤지만 안되더라 식의 비관이 아닌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낙관주의적 경향, 태도를 갖는 게 필요하다. 질문 감사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약간 피곤하지 않을까?
Q. 우리나라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 부족하다. 인식이 있어도 그간 편의를 포기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회의도 든다. 실천까지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A. 말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 환경 뿐 아니라 가사분담도 마찬가지다. 남편들이 말만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걸 들 수 있다. 저는 하지만 개인을 변화시키는 데는 긴 시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권력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씀 드린다. 법적 과학적 측면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위험에 대해 인식해야 하느냐를 결정하는 규범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질문들이 결국 제도적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디지털뉴스부

2014년 9월 22일 월요일

『갈등을 넘어 협력사회로』 (이창언, 오수길, 유문종 신윤관 지음)

 『갈등을 넘어 협력사회로』 (이창언, 오수길, 유문종 신윤관 지음)


로컬 거버넌스 시대의 지방의제21과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갈등을 넘어 협력 사회로

이창언・오수길·유문종·신윤관 지음


신국판/280쪽/값 15,000원

지방의제21과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비전을 모색하다!
『갈등을 넘어 협력 사회로』는 국내 최초의 ‘지방의제21’ 지침서이다. 2012년 11월부터 ‘지방의제21’ 내부 워크숍과 연계하여 진행해온 기획으로서 연구자와 현장 활동가가 참여하여 만든 공동 작업의 결과물로서 기존의 연구물과 비교해서 현장의 목소리가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한국 지방 지속가능성 추진 과정의 독특한 에너지와 성과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에서 지방 지속가능성을 추진하는 과정은 국제기구, 지방정부, 시민사회, 기업, 다부문적 네트워크에서 독특한 에너지와 성과를 보였던 것 이상의 함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거버너스 개념의 등장이다. 한국에서 지방의제21의 등장과 활동은 매우 낯선 개념이었던 ‘거버넌스’를 우리 사회 주요한 화두로 대두시켰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권력 분권화, 부서 구조 개혁, 전통적인 운영 절차에서 혁신을 가져왔다. 거버넌스 논의는 여러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문화적・제도적 혁신을 이루어 공동 책임의 새로운 윤리라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균형 잡힌 경험 교환, 존중될 필요성이 있는 공유된 원칙의 발견과 이행은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한편, 지난 20년 가까이 지방의제21을 통해 다부문에서 참여가 조직됨으로써, 이는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정의, 변화의 방향과 비전을 합의하고 그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지방의제21을 통한 로컬 거버넌스 실험의 결과, 개방적・참여적・헌신적・효과적인 지자체의 관계 모형과 바람직한 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다. 또한 지방의제21은 개인의 의식과 생활양식에서 혁신을 이루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 간 신뢰에 기초를 둔 소통과 대화를 진행하며, 공공 참여 문화를 점진시킴을 통해 지방 차원의 갈등을 줄이고 분권적 협력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제 지방 지속가능성 운동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전략적 목적을 명확히 세우고, 다양한 지구-국가-지역 차원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지속가능성 관리 체계, 통합적 관리 틀을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다부문에 접근하여 참여함과 동시에 다층적 거버넌스 시스템의 기초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지방 지속가능성 행동은 지방정부의 전략,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 네트워크 간 협력과 제도화를 결합하여 새로운 비전의 구축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 로컬 거버넌스와 지방 지속가능성의 한계와 과제
현 단계에서 나타나는 지방 지속가능성의 장애 요인으로 거버넌스의 권한과 책임, 지속성 확보, 중앙 수준의 지원 부족과 정권 변화에 따른 잦은 부침(浮沈), 지방 정책 전문가와 정보의 부족, 제도화의 문제, 기타 외부 조건들이 거론된다. 이는 수단으로서의 거버넌스와 목표로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다층적 합의와 제도화가 완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방 지속가능성 비전 구축은 성공 스토리 못지않게 기회와 장애 요소를 확인하고 발전 대안을 지방적 차원 내에 마련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지방 지속가능성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엄밀하게 평가할 때에만 비로소 올바른 비전과 목표를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방의제21의 역사만큼 지방의제21에 대한 활동을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통합적 관점에서 지방 지속가능성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한 연구(단행본 포함)는 대단히 부족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 공공 참여, 사회 통합, 참여적 거버넌스를 실천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국의 지방의제21과 로컬 거버넌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비전 구축은 우리가 이 책을 기획한 두 번째 이유이다.

이 책의 세 가지 기본 관점: 인식 틀의 전환, 정책 형성 역량 개발, 민주적 재설계
지방 지속가능성은 목표, 구조(조직과 절차), 사람 모두가 변화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방 지속가능성은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첫째, 시대와 다중의 변화를 읽어내기 위한 인식 틀의 전환(rethinking)을 강조한다. 거버넌스적 문화와 행위양식은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와 이념에 대해 질문하고, 성찰하며, 개조하는 방식으로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거버넌스는 성찰과 상호 부조에 토대를 둔 지속가능한 사회의 전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유의 틀과 삶의 양식, 윤리가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 형성 역량 개발(reinventing)을 강조한다. 정책 형성의 역량 개발은 거시 구조적 사회 변동은 물론 대중의 일상의 삶에 이르는 다양한 이슈와 요구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삶의 공간으로서의 지역의 지속가능한 비전을 수립하고 제시하는 정책적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인식 틀의 전환과 정책 형성 역량 개발은 시대적 환경 변화에 따른 요구에 부응하여 통합적인 시각(사회-환경-경제-문화)과 마인드를 조성하기 위한 지역의 주요 행위자 간 관계 맺기 방식의 전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물론 ‘전환’은 자신(집단)의 기존의 특성과 문화에 대한 전면적 단절이 아닌 지속적 연관성을 가지고서 새로운 역동성을 찾는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조직문화, 행위양식의 재설계(restructuring)로 이어진다. 이 책이 세 번째로 강조하는 지역의 민주적 재설계는 심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다양한 부문과의 소통을 확장하는 한편, 지속가능 이니셔티브가 지역사회 내에서 나온다는 재발견, 지방정부의 재발견, 신뢰에 기초한 협력의 재발견과 직접 연결된다.

책의 구성과 각 장의 핵심 논의
이 책은 갈등 사회에서 협력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민주적 거버넌스’를 실현하고, 이에 맞는 지방의제를 설정, 실현하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이 책은 위의 관점에 따라 총 6개의 장과 부록으로 구성하였다.
1장 ‘협동으로 하나 되는 지역, 통치가 아닌 협치’에서는 서론 격으로서 지방 지속가능성 추진 과정의 쟁점과 제도적 틀의 설계의 의미에 대해 논한다. 동시에 기획과 연구 과정, 활용한 방법론, 독특함, 차별성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다.
2장 ‘지방의제21의 목표와 수단: 지속가능발전과 거버넌스’에서는 지구적 환경위기의 대응 차원에서 등장한 지속가능발전, 새로운 지역문제 해결 기제로서 거버넌스의 개념, 특징, 사회적 의미를 검토했다. 즉, 두 개의 주요한 개념(지속가능성, 거버넌스)의 등장과 확산 배경, 지속가능발전의 원칙, 협력적・참여적 관리 모델의 개념과 유의미성을 다루고 있다.
3장 ‘지방 지속가능발전의 역사’에서는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된 지방 지속가능성 운동의 국내외 추진 과정과 유형에 대한 소개와 함께 지방의제21을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한다. 이를 통해 지방 지속가능성 추진 과정의 지구적-한국적 일반성과 특수성, 성과와 한계, 과제를 도출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나아가 리우+20 이후 지방의제 21의 새로운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제시한다.
4장 ‘지방의제21과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에서는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의 개념과 이를 실현하는 기본적인 관점, 지속가능성 과정의 목표와 비전, 통합적 관리체계에 대해서 검토한다.
5장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추진 현황과 실천 과제’에서는 구체적인 현황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5대 정책 목표의 현황을 점검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매니페스토(공약)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나아가 참여적 거버넌스의 제도화 현황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개선 방안을 검토한다.
6장은 이 책의 결론 부분으로서 출판 기획의 의미와 지방의제21의 발전 방향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부록’은 독자들이 한국 지방의제21의 문제의식, 주요 이슈와 과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간의 결의문을 실었다.

로컬 거버넌스 시대의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비전’ 구축을 위한 실행 가이드북
실질적으로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비전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주요 행위자의 긍정적인 생활상의 변화(reorienting)와 적응 능력(reskilling)이 강화되어야 한다. 지역에서의 자율적 삶의 장이라는 우리의 이상 복원과 창조는 차이와 갈등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넘어선 관계의 재구성, 확장된 관계성(relationship)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구조와 개인 사이의 역전된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의사소통 기술을 활용하여 사회적 혁신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개발하려는 노력 가운데 이루어진다. 실질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들이 만나는 지점이 필요하고, 다양한 관점의 사고와 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주체, 인식, 수단, 방향, 방법을 연계하고 통합하는 사회적인 역량과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
『갈등을 넘어 협력 사회로: 로컬 거버넌스 시대의 지방의 제21과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의 출간이 시민, 공무원, 기업인 등 지역사회 주요 행위자가 지역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변화의 역동성에 대한 높은 반응성, 다양성에 대한 포용성, 그리고 사회적 합의 형성 및 실행에 대한 효율성과 책임성을 가진 사회적 능력social capacity을 함양하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이창언 사회운동을 연구하여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로 한국 사회운동, 거버넌스, 매니페스토,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학술 논문으로는 「한국 로컬 거버넌스(지방의제21)의 현황과 민주적 재구축」, 「한국 지방의제21의 새로운 추진 전략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그리고 『한국진보정치운동의 역사와 쟁점』(2011, 공저), 『사회문제를 보는 새로운 눈: 한국사회의 33가지 쟁점』(2013, 공저), 『시민과의 약속, 매니페스토』(2011, 공저), 『지금 여기 아나키스트』(2013, 공저) 등의 저서와 『지속가능성의 도전』(2013, 공역) 등의 역서가 있다.
오수길 지방의제21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주제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고려사이버대학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거버넌스, 지속가능발전, 행정언어를 연구하고 있으며, 『녹색당과 녹색정치』(2013, 공저), 『사회문제를 보는 새로운 눈』(2013, 공저) 등의 저서와 『지속가능성의 도전』(2013, 공역), 『세계 지방의제21 20년사』(2013, 공역) 등의 역서가 있다.
유문종 지방의제21 전국협의회 사무처장,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재단법인 수원그린트러스트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위한 지방의제21 10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2005)가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시민과의 약속, 매니페스토-한국형 매니페스토의 역사, 이론, 실천』(2011, 공저), 『마을에서 세계를 보다』(2011) 등이 있다.
신윤관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모델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온 사회운동가이다. 안산의제21, 푸른경기21 사무처장,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운영위원장, 리우+20 한국지방의제21연수단 단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 사무처장, 새로운 변화 안산내일포럼 공동대표, 안산희망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지방의제21의 절망과 희망」 등의 논문과 『한국의 협력적 거버넌스』(2009, 공저)등의 저서가 있다. 연구 보고서로는 『경기도 기후변화대응 종합계획』(2010 시민참여부문 연구) 등이 있다.

차례
1장_협동으로 하나 되는 지역, 통치가 아닌 협치
1. 문제 제기: 지방 지속가능성 과정의 쟁점과 제도적 틀의 설계 / 2. 연구 방법 / 3. 이 책의 차별성과 의미
2장_지방의제21의 목표와 수단: 지속가능발전과 거버넌스
1. 지구환경의 위기: 지속가능발전 개념의 등장과 확산 / 2. 지속가능발전의 원칙: 지속가능발전의 사다리 / 3. 전통적인 정부의 형태에서 거버넌스로의 변화: 협력적·참여적 관리 모델 / 4. 거버넌스적 사고와 생활양식으로의 전환: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거버넌스
3장_지방 지속가능발전의 역사
1. 리우+20과 지방의제21: 지방 지속가능성 운동의 국내외 추진 과정 / 2. ‘지방 지속가능성 과정’의 다섯 가지 유형 / 3. 한국 지방의제21 역사와 평가 / 4. 리우+20 이후 지방의제21의 새로운 위상과 역할
4장_지방의제21과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1.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의 개념 정의 / 2.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구축의 기본 관점과 내용 / 3. 지속가능성 과정과 이행 평가의 준거(틀) / 4. 지방 지속가능성과 통합적 관리체계
5장_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추진 현황과 실천 과제
1.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 5대 목표별 정책 현황 / 2. 참여적 거버넌스의 제도화 현황과 개선 방안 /3.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위한 지방의제21의 역할과 추진 전략 / 4.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를 위한 민선 6기 매니페스토 개발 방안
6장_마치며
부록 | 지방의제21 전국대회 선언문

<추천사>
1972년 스톡홀름 유엔인간환경회의 때로 거슬러 올라가도 세계 지속가능발전사의 절반은 1992년 이후 지방 차원의 노력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그 핵심에는 지방의제21이 있었고, 앞으로 40년 도시의 세기를 맞아 지방 지속가능성 운동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한국의 지방의제21 운동 역시 이 책을 참고하며 협력적 거버넌스를 지속해서 견인해나갈 것이다.
_이상은(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회장, 한국환경한림원 원장)
이 책은 92년 리우 정상회의 이후 확산한 지속가능성과 거버넌스 개념, 지방 지속가능성 추진 과정을 잘 정리해내면서 과제까지 제언하고 있다. 그동안 지방의 지속가능성 운동에 대한 학문·실천적 정리 작업이 공백으로 있었는데 이 책의 출간으로 그 아쉬움이 조금은 덜어진 듯하다. 이 책의 출간과 함께 시민사회 이니셔티브가 지역의 재발견, 혁신적 정책의 중요성에 대한 재발견, 네트워크 간 협력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_조희연(성공회대학교 교수,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지방 지속가능성은 교조에 얽매이지 않는 열정(passion), 비전(vision), 행동력(action)으로부터 가능하다. 지방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도전이 그 역사만큼 아직은 낯선 만남의 과정이지만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 책의 출간은 지방 차원에서 사회혁신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개발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본다.
_손혁재(수원시정연구원 원장, 정치학 박사)
지역 차원의 소통과 협력의 문화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극복할 가능성과 설계도이자 비전 추동력이 될 것이다. 로컬 거버넌스는 다양한 주체, 인식, 수단, 방향, 방법을 연계하고 통합하는 사회적인 역량과 실천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방의제21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최초의 지침서인 이 책의 출간으로 지방 차원의 지속가능성 도전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_이정옥(한국NGO학회 회장, 대구가톨릭대학 교수)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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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내포된 네 가지 문제점 -허수아비 때리기, 인과관계 오인, 통계의 남용, 낡은 과학관

허수아비 때리기, 인과관계 오인, 통계의 남용, 낡은 과학관
―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내포된 네 가지 문제점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회의적 환경주의자』라는 책이 화제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정치학과의 통계학 전공 교수인 비외른 롬보르가 쓴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널리 퍼진 비관적 전망과 달리 지구환경이 결코 악화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방대한 통계자료를 통해 그는 지구환경과 인간의 생활조건이 오히려 더 나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1인당 평균적으로 돌아가는 식량의 양은 오히려 늘어났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의 수도 줄었으며, 지난 50년 동안 삼림의 면적은 약간 증가했고, 에너지 자원을 포함한 각종 자원들은 고갈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선진국의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크게 개선되었고, 화학약품의 위협은 근거가 없는 것이며, 향후 50년간 멸종될 종의 수는 불과 0.7%에 불과할 것이고, 지구온난화가 파국적인 결과를 빚어낼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교토협약은 실속없이 천문학적 비용만 잡아먹는 형편없는 정책이다.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지구환경이 악화일로에 처해 있다는 암울한 예측이 여전히 지배적인 이유로 롬보르는 환경단체들이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선정적인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는 그동안 숱하게 반복되어 온 '뻔한 이야기'들을 넘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기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부제가 말해 주듯 '세계의 실제 상태(real state of the world)' ― 월드워치연구소에서 매년 발간하는 『지구환경보고서』의 원제목인 'State of the World'를 명백히 겨냥한 제목 ― 를 측정해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얘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숱한 통계자료에 의해 뒷받침되었다는 롬보르의 구체적인 주장들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를 가장 궁금해할 것이다. 이 문제에 한마디로 답하기는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의 주장 속에는 옳은(그러나 별로 새롭지는 않은) 얘기, 반쯤만 옳은 얘기, 불확실한데도 그럴 거라고 우기는 얘기, 명백히 틀린 얘기 등이 마구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균질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들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가 환경론자들을 비판함에 있어 종종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적을 상정해 '허수아비 때리기'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인구증가와 식량부족 문제나 에너지 고갈 문제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1970년대 초·중반쯤에 영향력이 있었던 폴 에를리히와 같은 신(新)맬더스주의적 환경비관론자의 주장이 이후 틀린 것으로 드러났음을 되풀이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논증은 두말할 것 없이 옳다. 그러나 오늘날 전지구적 식량 생산량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거나 석유가 당장 바닥나 경제가 절단날 거라는 등 30여년 전에나 통용되었을 믿음을 여전히 고수하는 환경론자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의 비판은 과녁을 벗어나고 있다. 오히려 대다수의 환경론자들은 식량의 부족이 아니라 분배 문제가 기아를 야기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고(이는 롬보르가 찬양해 마지않는 녹색혁명과 유전자조작식품을 환경론자들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한 이유가 된다), 석유나 석탄, 우라늄 같은 에너지의 '부족'이 아니라 에너지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문제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롬보르는 재생가능에너지의 의미도 엉뚱하게 파악을 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이 재생가능에너지를 시급하게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기존의 화력, 수력, 원자력이 지구온난화, 댐 건설로 인한 지역생태계 훼손, 대형사고의 가능성과 핵폐기물의 위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환경에 해를 끼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인데, 롬보르는 화석연료가 바닥을 드러내면 재생가능에너지는 기술발전과 시장논리에 의해 저절로 개발될 것이라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롬보르의 관심이 에너지의 고갈에만 맞추어져 있어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가능한 또하나의 에너지원 정도로만 이해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롬보르의 서술은 종종 인과관계를 거꾸로 파악하거나 단순한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예들은 대기·수질오염, 오존층 파괴, DDT의 위험 외에도 롬보르가 제시하고 있는 사례 대부분이 포함된다. 롬보르의 주장대로 선진국에서는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이 분명히 감소했고 오존층 파괴로 인한 전지구적 위험도 경감되었으며 DDT와 같은 유해물질의 환경잔류 수준도 급격히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환경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환경단체나 언론이 그간 환경문제를 과장해 왔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는가? 이건 본말이 전도된 이상한 논리다. 오히려 과학자들과 환경단체의 문제제기에 힘입어 이러한 오염 문제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고 그러한 인식이 일련의 논쟁을 거쳐 적절한 규제정책으로 전환됨으로써 현재와 같은 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대기 중에 방출되는 황의 농도를 일정수준 이하로 낮추도록 요구하고, 미온적인 각국 정부를 대상으로 오존층 파괴물질에 대한 전지구적 대응을 촉구하고, DDT를 비롯한 유해 살충제의 생산을 중지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야말로 환경단체들이 해온 역할이었다. 롬보르는 이렇게 '뻔한' 역사적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롬보르가 환경단체의 역할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개발도상국의 환경오염에 대한 그의 진술로부터 유추해볼 수 있다. 그는 선진국과 달리 개발도상국에서는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 이유를 개발도상국의 빈곤에서 찾고 있다. 쉽게말해, '배가 고플' 때는 그런 '사치스런' 문제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개발도상국에서는 경제성장이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한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따져볼 여지가 많다. 이미 과거에 경제성장을 이룬 선진국들에서 환경문제가 낮게 나타난다는 사실 자체가 곧 '경제성장→환경문제 해결'이라는 도식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좋은 환경정책은 돈만 많으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 도입된 서구식 경제성장 과정은 그 자체로 가속적인 환경파괴를 수반하며 지역간·계층간 불평등을 키운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강하게 나오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경제성장이 과연 환경문제 해결의 필수 전제조건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셋째로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통계 이용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롬보르는 총합적 수준의 통계, 특히 지구 전체나 개발도상국 전체를 평균내는 식의 통계치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포괄적 통계는 매우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평균치는 그 속에 매우 중요한 세부사항들을 감춰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전세계의 삼림 면적이 지난 50년 동안 줄어든 것이 아니라 전체 육지 면적의 30.04%에서 30.89%로 오히려 약간 증가했다는, 언론에 널리 보도된 주장을 한번 따져보자. 여기서 인용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통계자료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많지만 일단 이 문제는 접어두겠다. 그러나 설사 전세계 삼림 면적이 약간 증가했다는 얘기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는 삼림의 위치나 수종, 연령, 질 등에 대해 거의 말해주는 바가 없다. 예컨대 같은 기간 동안 북반구의 선진국에서는 삼림의 면적이 늘어난 반면 적도 부근의 열대림은 상당부분(대략 20% 가량) 줄어들었고, 특히 아프리카나 중앙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은 삼림의 면적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는 열대림이 생물다양성과 자원의 보고라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이다. 또한 많은 삼림들이 일단 벌채된 후 단일 수종의 조림지로 대체되고 있는데, 조림지는 애초의 삼림에 비해 생물다양성이나 가치의 측면에서 상당히 떨어진다(롬보르는 이런 사실들을 언급은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본다면 전세계적으로 '가치있는' 삼림의 면적이 상당히 줄어들었으며(환경단체의 열성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빚어졌음에 유의하라), 일부 지역이나 국가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삼림의 상태에 대한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단순히 전지구적 삼림 면적이 대략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위안거리로 삼을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지적한 세 가지 문제점은 롬보르 논지의 신뢰성을 상당한 정도로 잠식하며 때로 저자의 의도를 의심하게까지 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근저에는 사실 이보다 훨씬 거대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는 롬보르가 「내일의 문제들」이라고 이름붙인 5부와 연관이 크다. 그는 여기서 환경호르몬, 생물의 멸종, 지구온난화 문제가 과학자들이나 환경단체의 주장과는 달리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입증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환경호르몬이 남성의 정자 수 감소의 원인인지는 분명치 않으며(남성들의 과도한 성행위가 그 원인일 수도 있다), 대규모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줄 만한 직접 증거가 없고(멸종 추정치와는 달리 멸종이 '확인된' 종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지구온난화가 파국적인 결과를 빚어낼지 모른다는 증거도 불충분하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에서 제시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며 지구온난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메커니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롬보르의 태도는 일견 '과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기 전까지 어떤 쟁점에 관한 판단을 조심스럽게 유보하는 것은 과학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훌륭한 덕목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불행히도 여기서 롬보르는 과학의 성격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오늘날 이미 다른 국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충분한 반복 실험을 해본 후 확신이 섰을 때 이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과거의 아카데믹한 과학과 달리, 세계 전체를 거대한 실험실로 탈바꿈시킨 현대의 (규제)과학은 그러한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 오늘날의 '탈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 국면에서는 그 속에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수많은 쟁점들에 대해 빠르고 확실한 답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젠가 충분한 증거가 쌓일 것으로 믿고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는 것이, 그런 식의 유보적 태도는 자칫 너무나 큰 위험부담 ― 공공보건의 위기나 파국적 환경재난과 같은 ― 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과학자가 '충분한' 증거를 찾아 판단을 유보하고 위험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매우 위험부담이 큰 결정을 조속히 내려야 함을 사회 전체에 알리고 모두가 참여하는 가운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책임있는' 태도이다(그리고 바로 이것이 롬보르의 주장에 대한 환경과학자들의 반박에서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변화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과학이 확실성과 보증을 제공해 줄 것으로 믿는 낡은 패러다임에 집착하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안전하고 단순한 세계를 향한 향수의 한 흔적"일 뿐이다.




출전: 『창비웹진』 28호 (2003. 10)

2014년 9월 21일 일요일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 안병옥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




저자안병옥 지음출판사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4.06.23

책소개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안병옥의『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 이 책은 우리의 사회·정치적 선택과 일상생활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지구 생존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급한 생사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있다. 마치 영생할 것처럼 미래의 풍요를 계획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인류의 운명은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소개

저자 : 안병옥
저자 안병옥은 198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환경문제와 맞서 싸워온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첫 세대에 속한다. 1991년 독일로 건너가 에센-뒤스부르크대학에서 생태학을 전공, 200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과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국내 기후, 환경, 생태 분야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학자이자 운동가로서 대학 강의, 칼럼 기고, 토론과 운동 기획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제1회 기후변화 그랜드 리더스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역서와 저서로는 『기후의 문화사』, 『코펜하겐에서 칸쿤까지』, 『우리는 지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등이 있다.[교보문고 제공]

목차


PART 1. 지구와 공존하며 살아가기
01 기후변화에 맞서는 축구선수들
02 동물을 가두고 구경할 권리?
03 맹그로브 숲 파괴하는 수입 새우
04 세상의 지배자는 인간 아닌 풀과 나무
05 온난화, 새와 나비의 운명
06 탐욕이 만든 ‘물고기 잔혹사’
07 은어들의 시위 “더러워서 간다”
08 우리는 고래의 친구인가
09 당신의 혈액은 안녕하십니까?
10 아내의 여행과 ‘자연주의 청소’
11 자동차 문명의 그늘
12 서해로 가는 아름다운 행렬
13 낙동강의 경고음
14 다슬기와 모래톱의 추억
15 바다가 육지라면
16 강은 강이요 늪은 늪이다
17 ‘나 홀로 웰빙’ 가능한가
18 녹색 도시의 꿈

PART 2.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19 기후변화 시대의 육식
20 다모클레스의 검과 카산드라의 예언
21 과학과 미신 사이
22 ‘인간’을 도외시한 불산 누출사고 대응
23 야노마미족 학살의 방조자들
24 가뭄은 곧 ‘밥’의 문제다
25 다시 생각하는 ‘성장의 한계’
26 기상이변 ‘땜질식 처방’은 이제 그만
27 가난한 사람 지갑 터는 대기오염
28 ‘화학물질 칵테일’은 맛이 좋다
29 수도꼭지로 돌아가자
30 옥수수에 얽힌 네 편의 드라마
31 영양과잉시대의 ‘윤리적 소비’
32 지구의 날과 ‘신화시대’의 기억
33 황사와 환경 ‘리바운드 효과’
34 물은 ‘정상적으로’ 흘러야 한다
35 ‘산업화의 비극’ 환경호르몬
36 골프장 건설경기 부양론?
37 간이역은 더 이상 없다
38 서울대 교수들의 위험한 제안

PART 3.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
39 ‘사케와 원전’을 읽으며
40 우린 늦게 출발해도 되나?
41 국가 에너지 정책, 밑그림부터 잘 그려야
42 지구촌, ‘탄소 다이어트’ 하자
43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
44 ‘녹조 라떼’의 창조자들
45 독일은 거대한 ‘에너지 실험실’
46 지구온난화 재촉하는 댐
47 원전이 필요악이라는 미신
48 한파에 무너진 원자력 신화
49 재생가능에너지 ‘빅뱅시대’
50 방사능 공포와 정부의 ‘안전 주술’
51 생매장 구제역 가축들의 역습
52 태풍과 홍수에 무력한 ‘토건’ 대책 언제까지?
53 코펜하겐의 좌절된 희망, 타이타닉호는 침몰하는가?
54 30년 후에 재앙 부를 ‘석면 불감증’
55 녹색성장과 ‘에코 파시즘’
56 무시당하는 시장의 생태적 진실
57 에너지 위기가 곧 식량위기
58 장난감에 투영된 카나리아의 노래
59 핵산업에도 봄은 오는가
60 경제야, 환경과 만나자

시인은 “자작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다가 인간을 한 그루씩 옮겨 심는다면 지구가, 푸른 지구가 온통 공동묘지 되고 말겠지”라고 노래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착각은 식물이 동물보다 열등하다는 믿음이다. 바다보다 거친 육지의 삶에 뿌리를 먼저 내린 것은 식물이었다. 식물은 동물이 잠시도 살 수 없는 극한 생태계에서도 번성할 수 있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정한 지배자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풀과 나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5~26쪽)

옷장에 드라이클리닝한 옷들을 그대로 걸어둔다면 옷장을 화학물질의 창고로 만드는 셈이 된다. 만일 비닐 커버를 벗기자마자 그 옷을 입고 나선다면? 옷을 입는 것과 동시에 혈관 속으로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지구상에서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은 대략 8만 가지다. 매년 2,000개 이상의 신종 화학물질이 목록에 추가되고 있다. 화학물질로 뒤범벅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몸에 닿는 것과 입에 넣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아동용 의류는 세심한 감시와 규제가 필요하다. 아이가 옷이나 옷을 만진 손을 입에 넣는 등 유해 물질의 체내 유입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48~49쪽)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기술진보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18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는 ‘기술이 발전해 효율이 높아지면 에너지 소비가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사실은 도리어 소비가 증가한다’고 썼다. ‘제번스의 역설’로 불리는 이 현상의 비밀은 욕망의 무한증식에 있다. 서머타임제를 도입하면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다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낮에 아낀 에너지는 저녁 활동이 늘어나면서 상쇄된다. 자동차 연비가 좋아진다 해서 시간과 연료를 저절로 아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효율 자동차 덕분에 마음이 놓인 사람들은 더 자주 더 멀리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118쪽)

원자력이 값싼 에너지라는 거짓이다. 정부 발표로만 보면 원자력은 화석에너지나 재생가능에너지에 비해 발전단가가 낮다. 이는 원전을 포기하게 되면 전기요금이 폭등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원자로 폐기와 핵 폐기장 건설에 들어갈 비용을 포함시키고 턱없이 낮게 책정된 손해배상 책임보험료를 현실화하는 순간, 원전의 실제 발전단가는 치솟게 되어 있다. 이런 사실은 지난해 11월 일본 정부가 ‘비용 등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추산한 전원별 발전비용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원전은 화력발전보다 비싸다.
(213쪽)

오늘날 환경과 경제의 불화는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된다. 환경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혁신과 새로운 투자를 선도한다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많은 나라들이 ‘환경보호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정책슬로건을 채택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낡은 경제구조로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우리 모두는 태생적으로 지구주의자!

당신의 미래는 안전하십니까?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있다. 그의 몸에는 고열이 오르고 이곳저곳으로 통증이 번지는 중이다. 하루빨리 근본적인 치료를 받고 식이요법을 하며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 미래를 위해 한참 더 벌어야 한다. 지금 수술대에 누울 수는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진통제를 요구했다. 진통제는 그런대로 잘 듣는다. 눈앞에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좀 불안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여긴다. 그는 여전히 풍요로운 미래를 꿈꾼다.
과연 이 환자가 계획한 미래는 찾아올 수 있을까? 지금 인류의 모습은 이 암 환자와 다르지 않다. 다행히 치료할 시간과 기회가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애써 포기하고 있다. 병증은 이미 나타났다.
지구는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3년 유럽의 불볕더위는 7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2005년 미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도시의 절반을 수장시켰다. 2010년 파키스탄의 홍수는 2,000만 명의 이재민을 만들었다. 2012년 호주의 대홍수는 프랑스와 독일을 합친 것과 맞먹는 광활한 면적을 물로 채웠다. 이런 기상이변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비정상이 일상화의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더욱이 이런 재해는 병든 지구의 증상 중 하나이다. 환부에 약을 바른다고 해도 병이 낫지는 않는다. 이 속에서 우리는 안전한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까?
기후변화는 지구 생존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급한 생사의 문제를 뒤로 미루고 있다. 마치 영생할 것처럼 미래의 풍요를 계획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인류의 운명은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성찰의 계기와 방향을 제공하는 책이 나왔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안병옥의『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21세기북스)이 그것이다.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의 근본적 변화가 해답

이 책은 우리의 사회·정치적 선택과 일상생활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화학물질로 뒤범벅된 삶을 산다. 사방에서 화학물질을 뿜어내는 집에서 살며 유독한 화학물질로 코팅된 옷을 입고 농약 칵테일을 먹고 마신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것을 일부 피할 수 있다. 개인적 웰빙을 추구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이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만의 도피처는 금방 무너지고 만다. 이웃과 함께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회 전체의 웰빙을 추구해야만 한다.
녹색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연비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주행량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기술 진보와 인간 욕망의 함수관계를 풀지 않는 한 대안은 없다.
우리의 생산양식과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희망이 있다. 토목공사 위주의 개발과 대량 에너지 소비를 위한 원자력 의존, 이익 극대화를 위한 화학제품 사용이 무한정 허용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부터 정치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지구 환경과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우리가 값싸고 맛있지만 나쁜 식품을 고를 때마다, 식품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적 흐름을 거슬러 가축을 살찌우고 유전자 조작을 감행하고 농약 칵테일을 들이붓는 파괴자들의 동지가 된다.
반대로 우리는 일주일에 햄버거를 한 번만 덜 먹을 때, 서울에서 전주까지 자가용을 왕복 운행했을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만큼 줄일 수 있다. 또한,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사는 삶에 익숙해짐으로써 자동차 문명이 만들어낸 그늘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다. 화학 세제 대신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등을 이용해 설거지나 청소를 함으로써 맑은 물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가 될 수 있다. 반부패에 역점을 두어도 좋다. 그러나 인류와 지구의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주의’을 내려놓고 ‘지구주의자’의 길을 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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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태신학자 존 캅은 경제주의(ecomomism)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지구주의(earthism)를 언급했다. 경제주의보다 지구주의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구주의자는 어떤 사람일까. 생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최근 저서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에서 “인간은 지구의 일부이며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 그러므로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임을 자각하는 사람, 우주선 지구호의 적재량을 무한대로 늘릴 수 없다는 생태학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구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주선 지구호가 평형수까지 빼내고 과적 상태로 위험한 항해를 떠난 세월호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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